삶을 가꾸는 글쓰기

<향나무 철사줄을 풀어내며>

야야선미 2003. 7. 27. 13:11


지난해 봄.  어느 절집 뒤에서 향나무 분재 하나를 주워왔다. 죽었다고 거기다 버렸겠지. '볕 잘 드는 데 가져다 놓고 물만 잘 주면 살겠는데.' 정말 서너달이 지나니 죽은듯한 가지에서 제법 푸른빛이 돌았다. 조금씩 푸른빛이 돌더니 아침 다르고 저녁이 다르게 짙어졌다. 손만 살짝 대어도 투두둑 떨어지는 마른 잎자루. 그 자리를 밀고 나오는 고운 새 잎. 고것들을 들여다 보노라면 젖먹이를 키울 때처럼 가슴이 부풀었다. 죽어 버려지는 걸 살렸다는 기쁨이 이런 것일까.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내다보고,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새잎이 제법 자라고 이젠 살았다 싶을 때부터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철사다. 그림속에 나오는 나무처럼 만들고 싶었던지 가늘고 굵은 철사를 가지마다 친친 감아 가지를 억지로 비틀고 꼬아 놓았다. 연필보다 조금 가늘어 보이는 굵은 철사에서부터 아주 가는 철사까지 감겨진 철사도 가지가지다. 굵은 가지 가는 가지 할 것없이 구석구석 옭아매어 놓았다. 사실은 처음 주워 왔을 때부터 철사가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감은 지 얼마나 오래 됐던지 나무에 너무나 깊숙이 파고 들어간 것이 철사를 풀어내려다가 오히려 가지를 부러뜨려 향나무를 아주 망쳐버릴까봐 겁이 났던 거다. 그리고 너무나 촘촘하고 단단하게 감겨져 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실마리를 찾지도 못했다.
먼저 살려놓고 보자 하고 물을 주고, 아주 죽은 가지를 잘라내면서 보살핀 것이 그렇게 한 해가 지났다. 제법 푸르게 자라는 향나무를 보면서 언제고 저 철사를 풀어줘야 향나무를 제대로 살려내는 것인데 싶으니 마음 한 구석에는 꼭 해야할 숙제를 미루고 있는 아이들처럼 편칠 않았다. 어쩌다 철사에 눈길이 가는 날은 그 철사가 마치 나를 옥죄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철사 끄트머리를 찾아 낼려고 들여다 보고 있으면 아이들 아버지도 "이것만 풀어내고 나면 더 기펴고 잘 살낀데" "장모님 향나무 하고 색깔이 다른 기, 분명히 이 철사 때문일 끼다" 하면서 옆에 와 앉곤 했다. 정말 그랬다. 시골 엄마가 키우는 향나무는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서 초록이 얼마나 짙고 예쁜지 모른다. 우리집 이 향나무는 가만히 보면 초록이 아니라 조금 바랜듯한 허연 빛이 돈다. 온몸을 철사줄에 친친 감긴 채 기를 못 펴고 살아서 그럴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선뜻 철사 풀 엄두를 못 내고 세월만 갔다.
방학을 했다.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늘 쫒기듯이 바쁘다가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침에는 좀 느긋하게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창가에 화분을 들여다 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제보니 이사왔을 때 몇 되지 않던 화분이 서너배는 늘었다. 하나씩 사다 모은 것이 아니라 줄기를 잘라서 늘리고, 포기를 나누어서 늘린 것이다. 그렇게 화분을 하나둘 늘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가운데 스승의 날 지나고 학교 쓰레기장 앞에 버려놓은 꽃바구니들을 주워다 비닐을 둘러깔고 흙을 채워서 만든 화분이 참 맘에 든다. 버리는 걸 주워다 남들이 안 가진 특별한 화분으로 만들었다 싶으니 내 스스로 참 기특한 것이다.
오늘 아침. 점심 먹고 글쓰기 모임에 간다고 생각하니 아침나절이 더 한가하다. 아침도 느긋하게 챙겨주고, 시간이 많다 싶으니 창가에 앉아서 또 이것저것 들여다 본다. 마른 가지를 잘라내고, 꽃이 다 진 꽃대도 잘라주고,  여남은 개나 만든 바구니 가운데 두 개를 따로 챙긴다. 연수자료집 만들 때마다 북적대는 이데레사 선생님집에 하나 갖다 주고, 얼마 전에 이사한 이상석 선생님 댁에도 하나 갖다 드려야지. 꽃집에서 사면 삼사천원 밖에 안하겠지만, 내가 만든 것이니 귀하게 받아주겠지. 끝으로 화분에 물을 듬뿍 주고 돌아서다 향나무 철사를 보고 되돌아섰다. 오늘 한번 해보자.
아주 가는 철사가 감긴 가지부터 살펴본다. 아무래도 가는 것이 만지기가 만만하다. 가지 끝 쪽으로 손가락을 대고 더듬으니 까칠한 것이 만져진다. 철사 끝이다. 손톱을 세워서 끄트머리를 살살 밀어올리니 이젠 손가락으로 들어올려질 만큼 끝이 선다. 손가락을 넣고 살살 풀어내니 됐다, 풀린다. 굵은 무명실쯤 되어보이는 철사가 한 줄 풀려 나왔다. 겨우 가느다란 가지 하나를 풀어냈는데 벌써 가슴 한 쪽이 시원해진다. 그옆 가지를, 또 그 옆 가지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천천히 조심조심. 쪼그리고 앉았다가 아예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퍼질러 앉았다. 가는 철사를 다 풀고, 이젠 그것보다 조금 굵은 철사를 시작했다. 하나하나 풀어갈수록 손가락이 달달 떨린다. 철사에 꽁꽁 묶인 채로 자라던 이 가여운 향나무는 철사를 풀어내고 나니 힘없이 추욱 늘어져 버리는 것이다. 철사에 묶인 채로 자라면서 어느새 자기를 옭아맨 그 철사의 힘으로 버텨오고 있었던 게다. 
퍼질고 앉아 그렇게 철사를 하나하나 풀어내는데  아이들 생각이 난다. 사람들이 저희들 보기 좋자고 이렇게 가위로 다듬어 모양을 내고 철사로 꽁꽁 옭아매어 모양을 만드는 것이나, 어른들 욕심대로 번듯한 아이로 만들겠다고 어른들 마음대로 아이들을 끌고 가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 아이들을 못 믿고 학교에서 정해준 규칙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렇게 어른들 마음대로 길들여놓고 어느날 갑자기 요즘 아이들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나무라기만 하지. 
생각이 거기까지 가니, 방학 보충수업 안한다고 내리 사흘 아침을 전화 해대던 아들놈 담임 생각도 난다.
"영우 어머니 아무래도 잘못 생각하신 것 아닙니꺼? 방학 마치고 나면 잘못했다 싶을 낍니더."
"고 3이면 어려운 것도 이겨내야지예. 힘든다고 수업 안하면 그대로 도태되는 사회 아입니꺼? 어머니도 잘 아실만한 분이."
"지 스스로 계획짜서 공부한다고예? 그래 안하던 아아가 그기 잘 되겠습니꺼? 학교 보충수업이 영우한테 안 맞아서 못한다면,  아무래도 개학하면 또 학교에 맞춰서 해야되는데 그때는 우얄 낍니꺼?  방학때도 호흡을 맞차서 같이 하는 기 영우가 덜 혼란스러운낀데요."
"보충 안 할라카면 반편성 하기 전에 말해야 되는데, 이래 반편성까지 다 해놨는데 덜컥 안 한다고 학교 안 오니 제가 참 기분이 그렇네예. 어머니가 따로 전화라도 한번 주시든가예. 다른 어머니들은 거의 다 한번씩 오시던가 해서 상담도 다 했는데 어머니는 그래도 안하시고."
"학원에 보내실 모양인데, 학원에도 어차피 개인수준에 맞춰서 수업 안하기는 마찬가진데, 어머니 잘 생각해 보이소. 학원이나 학교나 똑같습니더."
사흘을 좋게, 담임 기분 상하지 않게 점잖게 거절하다가 이 대목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선생님. 학교 수업이나 학원 수업이나 다르게 없다고예? 우예 그런 말씀을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꺼? 그 말씀 들어보이 더 못 보내겠네예. 학교나 학원이나 수업 똑같을 바에사, 영우 지가 부족하다 하는 과목만 골라 들을 수 있는 학원 쪽이 낫겠네예. 학교는 안듣고 싶은 과목까지 전과목 다 들어야된다면서예. 그기 뭔 보충 수업입니꺼?"
나도 모르게 그렇게 화를 내고 끊고 나니 맘이 편칠 않았다. 다음날 전화오면 좀 미안했다는 말을 해야지 했는데 그 다음날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게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손가락이 빨리 움직여진다. 철사를 밀어올리고 돌려 푸느라 손톱끝이 갈라지고 깨어져서 깜짝깜짝 놀라게 시큰거려도 참는다. 정말이지 오늘은 꼭 다 풀고 말겠다. 우리반 아이들도, 우리집에 아이들도 다 그렇게 길들여지고 틀에 박힌 듯이 길러지고 있다 싶으니, 향나무를 옭아맨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도 든다. 
풀어낸 철사가 굵어질수록 그 자리는 잘록잘록 패여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지 하나라도 부러질까, 철사따라 잘려져 나올까 손을 함부로 놀릴 수가 없다. 이젠 가장 굵은 철사만 남았다. 연필보다는 조금 가늘지 싶다. 끝이 나뭇가지에 푹패여 들어가 있어 풀기가 쉽지 않다. 가위 끝을 철사 밑으로 겨우 밀어넣고 힘껏 밀어올리니 뿌리 쪽까지 다 휘청한다. 잘못하다간 아예 죽이겠다 싶어 손을 뗐다. 다른 가지에 것들을 풀었으니 이건 그냥 둘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깊이 박힌 걸 풀어내다가 그만 죽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니다. 이렇게 철사가 깊숙이 박힌 채로 기도 제대로 못 펴고 살아가는 것 보다는, 가지가 부러져 나가고 모양이 엉망이 되더라도 꼭 풀어내고 제 힘으로 버티면서 사는 것같이 살아야지.
그러나 아무리 철사를 벌려봐도 틈이 도저히 벌어지지 않고 손가락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꽃가위를 억지로 밀어넣어 지렛대처럼 힘을 주는데 철사는 꼼짝않고 자꾸 나뭇가지에 상채기만 난다. 손을 잠깐 멈추고 다시 살펴본다. 철사가 깊이 들어간 가지를 만져본다. 이젠 정말 한 몸처럼 깊숙이 박혀버린 철사를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빼겠노. 이 정도 상처는 언젠가 낫겠지. 다시 가위를 끼워넣고 힘을 준다. 얼마나 했을까, 화분 밑에는 가위 때문에 벗겨진 나무 껍질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됐다, 끝이 빠져나왔다. 깊이 박혀있던 끄터머리를 빼내고 나니 제법 쉽게 풀린다. 철사를 살살 풀어내는데, 가지도 따라서 잘려질 것 같다. 위쪽의 가느다란 가지는 스스로 반듯하게 서질 못한다. 그렇지만 끝까지 다 풀어냈다. 나는 어느새 향나무에 감긴 철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옭아맨 그 무거운 것들을 풀어내는 것처럼 땀을 흘리며 대들었다.
벗겨져 나온 나무껍질을 쓸어담고, 풀어 던져두었던 철사 토막을 주우면서 나는 오늘 큰 일 하나를 해내었다 싶어 정말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힘겨운 것들도 이렇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을 온갖 올가미에서 풀어줄 수 있을까, 할 수 있겠다. 정말 오늘 아침은 자신이 생긴다. 한 해나 망설이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도 마음먹고 달려드니 한 시간 남짓 땀흘려 해내지 않았나.
그렇다. 나를 옥죄고 있는 어려움도,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는 올해 학교생활도, 우리 아이들도, 내가 몸을 던져 뛰어들면 실마리를 훨씬 더 쉽게 찾을 게다. 밖에서 들여다만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난 해부터 지금까지 정말 뿌연 안개 속을 헤매고 돌아다닌 것같던 답답한 가슴이 오늘 환하게 열리고 있다. 오늘 아침의 이 땀과, 기쁨과 자신감을 오래오래 가지고 가고 싶다.
그러고 보니 철사를 풀어내면서 나는 향나무가 자유로와진 것보다 내가 훨씬 더 편안해졌다. 잘록잘록 패인 저 철사 자국에도 언젠가 새 살이 돋겠지. 이제는 지 자라고 싶은대로 맘껏 활개펴고 살 수 있겠지. 향나무를 생각하니 저절로 내 어깨가 펴진다. 참 고맙다.  (2003. 7. 27. 부산글쓰기회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