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랑 서인이랑

뒤늦게 쓰는 육아일기 - 서인이

야야선미 2008. 4. 4. 09:21

집에 놀면서 시간이 있으니 늘 같이 살던 아이인데 새로운 걸 많이 봐.

내가 집에 놀면서, 마침 서인이가 중학교 입학하니

아이가 들뜨고 설레면서 새 생활하는 걸 제대로 본다.

 

입학해서 첫주에는 별별 안내장을 들고 오더구먼.

학년초에 나눠주는 것들......많잖아.

하루는 가정환경조사서를 꺼내더니 지 방에 들어가 열심히 써왔어.

"아, 인자 엄마 직업칸에 주부라꼬 적었대이. 주부, 좋네에."

싱글거리면서 들고 나와서 척 건네줘요.

"니는 중학생 글씨가 이래가 우야노? 초등학교 3학년짜리 동생이 적은 줄 알겠다."

"아아 그기 중요한 기 아이고요. 엄마 직업에 주부라고 적었다고요오오."

"나는 내가 주부인지 아닌지 그기 중요한 기 아이고, 니 글씨가 초등3학년보다 못하다는 거, 그기 중요하거든."

"아아~ 이런거 뭐라더라? 사자성어 있던데."

"딴데로 빠지지 마라. 잘 모르는 사자성어 끌고 오지말고. 니이 이 글씨 우짤래?"

"괘안아 괘안아. 엄마, 우리는 참 걱정되는 모녀 아니예요?"

"뭐가?"

"왜 종이 한 장을 놓고 이래 다르냐 이거지요."

이까지 말하는데, 내가 혼이 빠져 사는 동안 늦둥이 서인이가 이래 많이 자랐구나 싶어 찡해오는 거 있지요.

아이들은 지 혼자서 이래 조금조금 자라 왔는거라.

저녁을 먹고 학교 가져갈 수저를 챙겨 가방에 넣고, 스타킹 찾아 놓고,

학교가져갈 쪽지 꼬깃고깃 접어서 필통에 넣더니

가방을 현관앞에 쿡 던져 놓아.

저러면 학교갈 준비 다 했다고 잘 때까지 놀거든.

초등학교 입학해서 부터 늘 저렇게 해 왔는데도

요즘 들어 저 모습이 가끔 짠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기도 그래요.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가방 챙기는 거 한번 제대로 봐 준 적이 없는 것 같아.

"너그들도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되거든.

엄마도 맨날 바쁘니까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된대이."

그렇게 해 놓고 영우, 서인이 둘다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어.

준비물 못 챙겨가서 혼났다는 이야기,

숙제 했는데 방에 놓고 가서 괜히 혼났다거나

그러면서 엄청 억울해 하더니 그런 것도 차츰 없어지더라고.

엄마 믿고 있다가 지만 손해라는 걸 알게 된 거지.

바빠 정신없는 것도 그런 거지만,

내가 원래 행동이 굼뜬데다 아이들 학교 챙겨가는 걸 예사로 생각해서 그런지

나는 그게 거렇게 대단타 싶지도 않고, 또 그런 거 일일이 다 내가 우예 챙겨주노 싶더라고.

지가 스스로 중요하다 싶으면 빠릿빠릿하이 챙겨 갈 거고, 또 스스로 챙겨가면 그것 또한  다행이고,

지가 헐렁해서 못 챙기면 그런대로 그것도 지 몫이라 싶었거든.

사실 이것도 내가 아이들 제대로 못 챙겨주고 키운 변명일지도 모르지 뭐.

영우나 서인이나 둘다 엄마한테 기대는 걸 포기한 건지,

원래 애살이 없는 건지 뭘 그렇게 애닯아 하지도 않고, 크게 불평도 안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엉성한 엄마한테서 자란 덕에 지꺼는 지가 안 챙기면 안된다는 걸 알았는지

쪼끄만할 때부터 지 가방 챙기는 건 잘해.

학교 갈 것 챙기는 것 뿐만 아니야.

글자를 알고나서부터는 뭔 안내장을 들고 오면 지가 적을 수 있는 거는 지들이 다 적어.

밑에 보호자 이름쓰고 싸인 하는것만 해 달라는 거지.

뭔 수련활동이다, 캠프다 가는 것도 그랬어.

저거들이 생각해도 엄마가 밤에 오면 뭘 챙길 시간도 없다 싶었던지

준비물 종이 들고 저거들 힘으로 챙겼어.

유치원이든 청소년단체든 학원이든 요새는 어디 갈 데도 많잖아요.

영우나 서인이는 집에 지 또래 아이들이 없이 자라서

또래끼리 어울려 놀 수 있는 곳이다 싶으면 거의 다 보내줬거든.

그러다 보니 유치원 때부터 하루씩 이틀씩 자고 오는 데를 많이 갔지.

그럴 때마다 준비물 종이 펴 들고, 여기 저기 온 집을 헤집어 놓고 가져갈 물건들을 챙겨.

지들 하는 양을 보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마룻바닥에다가 하나씩 찾아서 한 줄로 쭈욱 늘어놓아.

 

처음에는 뭐가 어디있는지 어찌나 물어대는지 귀찮아 죽겠더라고.

차라리 내가 빨리빨리 다 챙겨주는 게 속편하겠다 싶어서 고마 내가 할까 하다가,

내 없을 때도 어차피 저거들이 챙겨야 할끼고,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닌데 지가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라 싶어 그냥 내삐리 뒀거든.

그렇게 한 몇 년 하니까 잘하더라고.

처음에는 저거들이 준비물 표에 동그라미를 해 가면서 찾아서 한 줄로 그렇게 쭈욱 늘어놓으면

끝에 내가 봐 주고, 저거가 못 찾은 거 찾아 주고, 없는 건 사라고 돈 주고 그랬거든.

삼학년 쯤 되니까 그것도 저거들이 다 해.

물건 찾을 때마다 힘드니까 시키지 않아도

놀러갈 때 가져가는 것들은 저거들이 아는 곳에 따로 딱 갖다 놓았다가 다음에 바로 찾아내더라고.

내가 늦게 들어오면 다음날 어디 간다고 가방 챙겨놓고, 그 가방 위에다가

 "다 챙겼는데 도시락은 못 쌌어요. 내일 아침에 도시락 사 주세요."

이렇게 쪽지 써 놓고 자고 있을 때도 있어.

한 두어번, "냉장고에 도시락 살 게 정말 없다, 우야노?" 고민하다가

김치만 썰어서 김치 볶음밥해서 넣어 줬더니

다음에는 아예, 유부를 사다놓고 자는 거야.

수퍼에서 파는 거 있잖아요, 양념해 놓은 유부 껍데기. 그거.

"엄마, 인스턴트 사는 거 안좋다고 했지만, 냉장고에 도시락 쌀 거 없는 것 같아서요.

낼 아침에 유부초밥해서 넣어주세요.

삼각김밥 사놓을라다가 그래도 이게 괜찮지 싶어서요.

다음에는 이런 거 안 살게요."

밤 늦게 오는 엄마 생각해서 이렇게 까지 준비해 놓고 자면서도

야단 들을 까봐 구구절절 쪽지 써 놓고 자던 아이.

하여튼 서인이랑 영우는 이렇게 저거들끼리 팍팍 컸더라고요.

 

이렇게만 이야기 하니까 진짜로 저거들끼리 억수로 잘 큰 것 같지요?

요새 내가 시간이 많아서 저거들 방을 들여다 보면,

얼마나 엉망으로 팍팍 자랐는지 속이 다 디비지는 거야.

발 끝을 들고 요리조리 피해다녀야 할 정도로 마구 어질러 놨어.

옷 벗으면 바닥에 그냥 던져두고,

양말 벗으면 아무데나

숙제하던 건 그냥 여기저기, 보던 책도 그냥 휙,

저거들 혼자 잘 컸다고 하다가 이런 걸 보면 속도 디비지다가.

"방 하나 지대로 못 치우고 우짤래?" 하고 소리지르고 야단치다가

그냥 내를 돌아보면 또 그래요.

정말 엄마 손길이 필요했던 건 이런 거 아닐까 싶어.

엄마가 데리고 앉아 하나씩 치우고 정리하는 걸 가르치고 보여줘야 하는데.

"니 할 일은 니가 알아서" 그 말만 하면서

제대로 가르쳐야할 건 못 가르친 것 같아.

속을 부글부글 끓이면서 씩식거리고 있으면 옆에서 저거 아바이가 또 그란다.

"저거도 때가 되면 다아 치운다. 지 방 더러운 거 짜증난다 싶으면 치우겠지 뭐.

문 딱 닫아놓고 안보면 되니까 그래 열내지 마라."

그래, 이것도 때가 되면 잘 할라나?

 

뒤늦게 육아일기를 쓴다고 시작한 것이 반성문이 될라카네.

집에서 심심할 때마다 나는 그동안 못 쓴 육아일기나 쓸란다.

안녕~~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