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꾸는 글쓰기

잊고 있었던 말 하나- 살사리꽃

야야선미 2006. 5. 24. 13:08

감기가 근 한달을 끌더니 인자는 기관지까지 탈이 났는지
수업하느라 서너마디만 달아서 하고 나면 가슴이 콱콱 찌르듯이 아프네요.
어제 오늘은 수업만 겨우 하는둥 마는둥 하고 집에와서 쉬는데,
낮에 오자마자 누울자리 밖에 안 보여서
아무데나 옷 벗어던지고 가방 던져놓고
해질 때까지 잤더마는 지금은 인자 잠이 안 와요.
두시 반입니다.
책을 볼라니 눈은 따갑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볼라해도 볼 만한 것이 없고
컴퓨터를 켜놓고 뭘 좀 쓸려고 하니 눈이 시려서 더는 못버티겠는데.....
문득 떠오른 말 하나가 있어요.

<하나> 잊고 있었던 말
"국민학교" 때 뭔 글짓기 대회에 나간다고
지금 생각하니 그게 뭐어 요새 부산에서하는 학생예능대회 그런 거 아닌가 싶은데
하여튼 무슨 글짓기 대회에 나가게 되어서 학교에 남아서 "글짓기" 공부를 했어요.
선생님이 제목 주면 내가 알아서 글을 지어 가고, 그러면 선생님이 고쳐주고, 나는 또 그 고쳐준 걸 원고지에 옮겨 쓰면서 외워라 해서 외우고 그랬어요.
대회에 나갔을 때 같은 제목이 나오면 그렇게 써라고 해서.
날마다 두 세편씩 썼던 거 같아. 무슨 제목이 나올지 모르니 선생님은 수없이 많은 제목을 던져 주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니까 선생님은 주로 내가 쓴 낱말을 표준말로 고쳐주는 일을 했어요.
다른 걸 지도해준 기억은 안나고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그으면서 내가 잘 들어보지 못한 표준말로 고쳐주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요.
뭐어, 주로 이런 거.
'풀을 망태에 꾹꾹 눌러 놓고' 해놓으면 망태에 빨간 물결무늬를 그려놓고는 '삼태기'라 고쳐주고
'콩이 다 익지 않아서 살강거리는데도 우리는 맛만 좋았다' 고 써 놓으면 선생님은 살강에다 물결무늬를 그리고 그 밑에다가 '아삭거린다'로 고쳐주었어요.
뭐어 선생님 말이니까 고치긴 했지만 나한테는 낯선 말이어서 다음에 쓸 때는 그 말을 외웠다가 다시 생각해 내서 쓰느라 애먹었던 게 기억나요.
그런데 잠을 청하느라 이리뒤척저리뒤척 하다가 또 하나 억울하게 고쳤던 것이 있어요.
그 때 한창이던 새마을 운동 '꽃길가꾸기' 하느라
우리동네서 수산까지 그 십리길을 우리 학교 육학년 아이들 백명쯤 되는 아이들이 꽃 모종을 심은 일이 있어요.
그 일을 글로 썼는데,
"십리길에 한들한들 핀 살사리꽃을 생각하면서 더운 걸 꾹 참고 모종을 심었다."
이래 적었더니 선생님이 코스모스꽃으로 딱 고쳐주데요. 나는 대회에 나가서 그 낯선말 코스모스를 외워쓰느라 힘이 좀 들었던 게 아니예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말로 된 걸 잘 못 외우는 병이 있어요.
지금도 그 흔한 외국배우 이름이나 외국도시 이름을 잘 못 외우거든요.
그런데 그 시골에서, 텔레비젼도, 잡지도 그런 거 하나 모르고 촌년으로 자란 내가 외국말로 된 코스모스란 말을 외울 때 까지는 한참이나 걸렸지요.
지금이야 코스모스 그것을 뭐 따로 외울 것 까지 있겠냐 싶지만, 그 때 나는 "코~" 뭐더라 하고 한참을 머리를 굴려야 겨우 떠오르고 그랬거든.
그때는 선생님이 코스모스라 고쳐 주어서 막 외울라고 애썼는데
오늘, 지금 생각하니 코스모스를 버리고 살사리꽃을 살려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요.
살사리꽃! 말만 들어도 가을바람에 살살거리는 가녀린 꽃이 떠오르지 않나요?
인자부터 나는 살사리꽃을 되찾고 싶답니다. (2006. 5. 24. 부산글쓰기회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