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열이튿날 수연재 공부 정리 - 아이들 글 이야기
잘라꼬 누워서 아무리 용을 써도 잠이 안 온다.
잠도 들지 않는 걸 누워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보이
괜히 옆에 누운 사람한테 눈만 꼴치다가 그래도 얄미워서 이불을 확 끌어다 덮고 일나 앉았다.
마누라는 잠도 못 들어 이 고생인데 그것도 모르고 지만 드렁드렁 코골고 자는 거 보이 부럽다가 고마 밉네.
수연재 못 왔던 사람들한테 모임 이야기나 들려줘야겠다.
다함께 갈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낀데.
함게 못해서 아쉽고 아까운 자리였어요.
아픈 영자샘은 좀 나았어요?
옥진이랑 느티나무도 일 잘 봤나요?
인숙이가 먼 데 거제에서 달려와서 함께 공부했어요.
<함께 했던 사람들>
숙미, 태희, 소눈, 일하는 소, 경해, 정희, 인숙, 야야, 샘돌, 구민, 특별회원 영은이
<첫째마당, 아이들 글 이야기>
교육실습 나간다고 남부민초등학교에 갔다던 구민이 빼고는 모두 숙제를 열심히 했더라고요.
구민이는 아직 학생이니 데리고 글쓰기 지도할 아이들도 없고,
글모음이나 시집에서 뽑아 써보려고 했는데 어렵더라고.
실습 나갈 때 마음쓰였던 거 생각하니, 구민이 숙제 못한 그 마음 알만해요.
아이들 글과 선생님들이 본 글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좋은 공부를 했어요.
저마다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글 이야기
오랫동안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교실에서 아이들 글을 늘 보면서도 막상 이렇게 글로 내 생각을 써 보려니 참 어렵데요.
글을 가운데 두고 여럿이 둘러앉아 이야기할 때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으면 바로 고칠 수 있었는데,
혼자 생각을 쓰려니 이기 맞게 보는 건가 싶어 참 쓰기가 어렵더라.
공부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아주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태희가 하던 말,
'문집 내고 나서, 선생님들한테 드릴 때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사실은 혼자서 보면서 그렇게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했거든예. 그런데 아이들 글보기 공부하면서 문집을 보이 마이 부족하구나 싶데예'
그 말이 아직도 떠올라요.
그 말 할 때 태희 얼굴도 떠오르고.
맞아,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어렵고 부족하다는 걸 느꼈지.
경해네 반 아이들 시 보면서 우리 모두 웃으면서 '의식화' 시켰다고 했지만
수구보수꼴통들이 사는 동네에서, 그런 동네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사는 경해,
참 대단하다. 장하다 싶어요.
말로는 맨날
'저는 하는 거 없어예, 발표할 거 하나도 없어예'
그라면서 발표할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더마는
수구보수꼴통들 한테 흔들리지 않고, 중심 잃지 않고
끈질기게 통일을, 북녘아이들을, 또 경해 저거반 아이들의 힘든 삶을 붙잡고 늘어지는 경해가 보였어요.
일학년 아이들데리고 시 공부를 하는 숙미,
방송통신고 늦깍이 여학생들하고 공부하는 구자행,
늘 생각많고 해 볼 것도 많은 정희,
이렇게 쓰는 거야를 보여준 승희
모두다 내 한테 좋은 공부를 시켜줬어요.
부족하다, 자신없다면서 겨우 숙제했다 말만 할라꼬 한 바닥 어렵게 만들어간 내한테는
그 자리가 참 고마웠지.
공부하고 있는데,
밤늦은 시각에 샘돌하고 저거 영은이가 암말없이 들이닥쳤어.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가스나 못 온다더마는....^^
참, 소눈이 저거반 아이들하고 농사지은 땅콩을 삶아줬는데 그것도 맛있고
또 우리 줄라꼬 밤나무 아래 돌면서 소눈이 주워모은 밤도 참 맛있었어.
까먹은 껍질이 두 소쿠리나 되더라고요.
소눈 고마버~~
<둘째마당, 노래>
경해가 전자오르간 반주를 하고,
모두 열심히 노래 불렀지요. 내만 빼고.
나는 목이 꽉 잠겨서 소리도 못 내고 립싱크만 했거든요.
전에는 목도 안 아픈 것이 눈치 봐 가면서 입만 벙긋거렸거든. 노래에 자신이 없어서.
이번에는 대놓고 입만 달싹달싹했지 뭐.
그래도 노래는 참 좋습디다.
옥진이 시집간다 할 때
이래 늙은 우리가 뭔 노래는 노래고, 노래 선물 말고 다른 거 하자
그러고 꽁지를 빼기도 많이 뺐는데
하자 마음먹고 노래 시작하이 즐겁고 재미있었어.
언니 오빠들 노래 선물을 들을 옥진이도 행복하겠지만
우리끼리 밤깊은 시각, 맷돼지가 저거하고 동무하자고 오는 거 아이가 하고
떠들면서 노래하는 수연재의 그 밤도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세째마당, 황토방에서>
황토방에서 이야기도 더 하고 깊어가는 수연재의 밤을 즐길라했는데
눈 뜨니 고마 아침이데요.
누워서 이야기한다 해놓고 언제 잠이 들었던지.
뜨뜻한 황토방에 누우니 온몸이 노골노골 풀리더마는
그깟 감기를 못 이기고 그냥 잠에 빠져들었던 모양이야요.
아침에는 목소리 큰 일소 땜에 깨긴 깼는데, 끝까지 밍기적거리면서
늘어져 누웠던 그 아침 시간도 참 행복했답니다.
일소가 열어주는 창문 밖으로 차츰차츰 또렷하게 나타나는 앞산 봉우리들을 내다보고 누웠으니
세상 시름 없는 거이 하루 종일 그렇게 있었으면 싶더라고요.
밤새 노골노골 풀린 몸도 기분좋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나는 아마 수도를 하면 아주 높은 의식수준까지 갈 거라,
아침잠 많은 소눈은 아매도 내 보다 의식수준이 낮을거로"
그러는 '*하는 *'라는 동무가 옆에서 뭐라뭐라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것도 좋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일소네 감도 따고,
소눈네 수돗가 바르는 것도 도와주지 못하고 고마 와 버려서 미안했어요.
부산에 일이 있기도 했지만,
온몸이 아삭아삭 으스러지는 듯 한 거이 남아 있어도 일은 못 하겠더라고요.
뒤에 남은 식구들이 내 대신 일 많이 했제?
<마무리, 공부할 때 주고받은 말, 그때 떠올랐던 생각들 가운데 아직도 생각나는 말들>
- 이렇게 작은 풀꽃을 붙잡아 글로 쓰는 그 마음이 참 귀하다.
-선생(교사)보다 옆에 동무가 더 좋은 선생이 된다는 걸 이런 공부를 해 보면 알 수 있다. 같은반 동무들이 쓴 글, 이래 좋을 글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는 다른 아이들도 작은 것들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주고 글을 쓸 수 있거든. 그래서 글쓰기는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다.
- 둘레 작은 것에 눈길을 주고 관심을 갖게 되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 통일을 해야하는 까닭이나 믿음, 그런 생각을 하게하는 절실한 경험이 없는 요즘 어린 아이들이니 통일에 대한 글들이 관념으로 흐르거나 어른들한테 들은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글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나누면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영글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많아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집에가면 늦게 들어오는 부모들, 한자리에 앉을 시간이 없는 식구들이니 언제 제 이야기를 풀어놓겠나. 비디오보고, 텔레비전보는 것 , 끝없이 듣고 보고 받아들이기만 하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정작 풀어놓을 기회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학교에 오면 끝없이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이런 아이들에게 말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주는 것, 글이라도 써서 풀어놓게 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우리는 어떤 선생이 될까 하는 고민도 늘 해야겠지만, 한 사람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삶을 어떻게 바로 세워나갈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바르게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른 바르게 세워 살면 좋은 선생이 되는 길도 보이지 않을까
-그밖에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왜 이것밖에 생각이 안나지?? 감기쯤 이겨보자하고 버텼는데 아프긴 아팠던 모양네요.
잠안오니 모임이야기나 쓰자하고 시작했는데, 눈은 머들머들 따갑고 시려운데 아직도 잠이 안온다. 이젠 뭐하지?
놀 사람도 없고. 아아~~~ (2007. 10. 15. 부산글쓰기회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