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권정생 님의 유언장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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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이웃 블로거를 방문했다가 대뜸 시작되는 스캐닝 받은 편지지의 글을 약간 힘들게 읽어내려갔다. '어쩌면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이겠군' 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유언장을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은 한글 문화권에서는 권정생 선생 이외에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정보로는 그렇다.
외람되지만 나는 권·정·생으로 표기하겠다. '선생'이나 '선생님' 같은 존칭보다 권정생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명사이자 삶의 태도에 관한 하나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권정생은 특별하다
권·정·생.
생각과 실제 삶을 일치시킨 보기 드문 사람이다. 2007년 5월 17일 선생은 이 세상을 떠났다. 서가에 권정생의 책뿐만 아니라 소로의 <윌든>으로 시작해서 니어링 부부의 책 등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암묵적인 방향의 책들로 장식된 집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은 책이고 현실에서의 우리 삶은 그 수준의 실천을 감당하기 힘들다. '실천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표현은 사실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이다. 현실에서는 책에서 공감했던 내용과 정반대의 논리로 작동할 때가 많을 것이다. 왜냐면 '나의 이익'과 '나의 소유'가 증가하는 경우 엄정한 잣대는 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나의 재산을 나쁜 곳에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니까'라는 비교 우위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래서 권·정·생이다. 그래서 권·정·생은 특별하다. 생각과 실제 삶을 일치시킨 보기 드문 사람.
권정생의 삶엔 '세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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