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우리마을 탐구

야야선미 2005. 3. 21. 13:25

삼학년 사회 첫 단원은 우리 고장의 모습을 알아보고 그림지도도 그려 보고 하는 단원이다.
이 단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2학년까지 배우던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을 조금 넘어서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와 이웃에게도 눈을 돌리게 하는 첫 단원이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그림지도를 그리고, 지도 기호를 익히고 그런 것만 익히게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둘째 주부터 모둠끼리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알아보자고 했다.
<<첫째 시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디지요?"
- 신평요?
이미 사회책을 보고 있던 녀석들, 학원에 가서 우리보다 먼저 진도 나간 녀석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 지구요, 부산요. 요 녀석들은 내하고 해 볼만하다. 지금 사회 진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암 것도 모르는 녀석들.
군대 조교같은 목소리로
"오늘은 우리 마을 탐사대를 조직 한다. 한 모둠에 넷, 다섯씩 해서 모두 일곱 모둠으로 짜고, 이 일곱 모둠이 우리 학교 둘레부터 시작해서 신평을 구석구석, 이 잡듯이 샅샅이 파헤쳐 볼 것이다. 이 탐사대의 이름은 <신평탐사대>라고 한다. 낙오자가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아니 되며, 또 거저 먹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갑자기 달라진 말투가 재미있는지 아이들은 킥킥거리고 웃는다.
"혼자서 다 해도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 떠 넘겨도 안된다. 한 번 조직은 영원히 한 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늘 같이 행동할 것이며, 무슨 일이든 다 같이 참여한다. 신평탐사대 활동이 끝날 때 까지 이 말을 명심한다. 다같이 한 번 외쳐 본다. 우리는 한 몸이다."
- 우리는 한 몸이다.
"무엇이든 같이 한다"
- 무엇이든 같이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신평탐사대>의 계획을 짜기로 하겠습니다. 계획을 꼼꼼하게 잘 짜야 다음 탐사활동이 잘 될 것입니다.

학교 둘레부터 해서 탐구하고 싶은 곳,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시간은 언제 낼 것인지, 특별히 탐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곳은 어디인지 정해 보라고 했더니 한 시간내내 싸우기만(?) 한다.
저렇게 싸우기만하고 무엇 하나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끼어들어야 하나?
한 시간 수업, 사십분 동안 참 고민스러웠다.
그래도 참아보자. 해 내겠지. 남들이 흔히 말하는, 허벅지를 꾹꾹 찔러가며 참았다.
나중에 <신평탐사대 - 우리 마을 탐구 계획표>를 내라고 했더니 두 모둠이 겨우 장소만 정했다.
나머지 다섯 모둠은 한 시간 내내 장소도 못 정하고 말았다. 그냥 맨 종이를 냈다.
" 내일 모레 다음 사회 시간 들었으니까 그 때까지 틈틈이 의논해서 정해 보세요."
했더니 어느 녀석이 그런다.
"고마 선생님이 정해 주지요."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다음 사회는 내일 모레 들었어요"하고 한 번 더 소리치고 마쳤다.

두번째 시간, 이틀 뒤에 다시 사회 시간.
"지난 시간에는 우리 마을 탐구 계획표를 짜 보기로 했지요?"
- 예에
"잘 짰어요?"
- 잠잠. 여기저기서 "못했어요" "우리는 안 했어요" 하고 자수한다.
"왜 못했지요?"
- 도경이가 지 맘대로만 갈라고 했어요.
- 경률이는 안 하고 그냥 놀아요.
- 병욱이는 남자들끼리만 한다고 우리는 안 비야줘요
여기저기서 원망이 쏟아진다.
"아아, 아까운 시간만 사십분이 흘렀지요? 그 날 계획 잘 세웠으면 오늘은 신평탐사대 출발을 할텐데. 아깝다."
- 그러면 탐사활동 안 가요?
"아무 계획도 없이 어째 가겠노? 그냥 우르르 놀러만 다니까?"
- 지금 짜면 안되요?
"뭘, 또 지난 번처럼 시간만 갈낀데."
- 이번 시간에 계획 잘 짤께요.
"또 싸우기만 할라꼬?"
- 인자 안 싸워요.
- 인자는 진짜로 잘 하께요.
"어짜면 잘 짜게 되는데?"
- 안 싸우고 하면 돼요.
- 다른 사람 의견 잘 들으면 돼요.
- 안 놀고 같이 의논할께요.
- 남자 여자 편 안 가르고 할께요.
- 양보하면 돼요.
이 녀석들, 답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실컷 애를 닳게 해놓고 다시 계획표를 나눠 주었다. 이번에는 제법 의논을 한다. 동네로 직접 탐사활동을 간다는 것이 아이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다. 열심히 하느라고 해도 또 다 짜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다. 저희들끼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가?
"오늘 못 짠 것은 점심 시간하고 오후에 공부 마치고 남아서 모둠끼리 다 마치도록 합니다."
한 번 실패하더니 이번에는 늦게까지라도 다 하고 갈 모양이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렸는데도 제법 진지하다.
그런데 오후에 다 마치고 계획서를 가지고 온 걸 보니, 도움 받을 사람에 모두 박선미를 대문짝만하게 썼다. 일곱 모둠이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교실에서 뭔 말하다가는 늘 "어려울 때 나를 찾으라! " 해쌓더마는 당연히 이게 답인 줄 아나? 그래 찾으면 도와주지 뭐.
<다음에 계속>  2005.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