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대경이가 노래를 한다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보리/박선미)>에서

야야선미 2007. 2. 9. 13:24

<우리 대경이, 기억하지요?>

우리 대경이하고 눈물나게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자랑 좀 하께요.

우리학교는 몇 해 전부터 2월에 학예회를 합니다.

다른 학교에서 거창하게 하는 그런 학예회하고는 달라요.

그냥 제각기 자기반 마무리잔치 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교장, 교감 샘은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좀 정선된(당신들 눈에) 프로그램으로 정선된 아이들을 뽑아 그럴싸한 발표회를 하고 싶겠지만,

그러다보면 몇몇 아이들만 무대에 올라가야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 걸 고개를 쭉 뽑아가며 지겹게 앉아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 마무리 잔치는 그냥 반에서

저거들이 준비한 거 소박하게, 모두가 참여해서 하는 거랍니다.

그런데 올해는 말이 마무리 잔치라 해놓고 이걸 어떡합니까?

수요일에 개학해서 목, 금 이틀 나오고 토요휴업일이라 이틀을 쉬고 12일 하루 나오고 13일에 잔치를 합니다.

아무리 한 해 동안 배운 것 가운데 뽑아서 연습 없이 한다지만,

일학년인데, 긴긴 방학 마치고, 학교 사흘 나와서 뭣 좀 맞춰보고

나흘째 되는 날 잔치를 할라니 이거 마음은 바쁘고, 준비할 것은 많고, 갈 길은 멀고......

정말 코를 베어가도 모르겠단 말이예요.

오늘 아침에 학교에 오니 그래도 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우리반 아기들.

실로폰, 리코더, 오카리나, 하모니커, 탬버린, 소고 이런 것 들고 몇몇씩 앉아 연습을 하고 있어요.

소리도 하나도 안 맞고, 어떤 녀석은 계이름도 못 외워서 더듬거리고 있습니다.

여느 잘 사는 동네하고 달라서 아이들이 연습하는 악기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좀 고급스러운 악기라고 겨우 바이올린 하는 아이가 둘 있는데, 그나마 한 아이만 중고를 사긴 해도 자기 바이올린이고, 한 아이는 교회 초등부에서 바이올린 빌려주면서 가르쳐 주는 건데 그걸 빌려와서 하고 있답니다.

악기는 비록 소박하지만 끼리끼리 모여서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뒤쪽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모여서 예쁜 아기 곰을 부르면서 춤을 맞추느라 분주하고,

남자 아이들 여섯은 복도에서 이루의 까만 안경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을 맞추어 오른쪽 왼쪽 한 걸음씩 옮기면서 리듬을 타면서 노래하기로 한 모양인데 어찌나 뻣뻣하고 웃기는지.

우리 옛날에 교련 사열 받을 때, 기합 너무 받으면 아이들이 얼어서 오른팔하고 오른쪽 다리, 왼팔하고 왼쪽 다리가 함께 나가잖아요.

다들 넘어가게 웃는데 지는 그게 틀린 줄도 모르고 바짝 긴장해서 척척척 걸어가잖아요? 딱 그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아기티를 못 벗은 이 녀석들이 뭔 맛을 아는 것처럼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싸랑해요 나아~~ 그대....." 할 때는 웃지도 못하겠어요.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는데 우리 아이들 이러고 있는 모습 보니까, 진짜로 가슴이 울컥합니다.

아아, 이 아이들이 이래 커서,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하고 맞춰보고 있는 거를 보니까 이 아이들이 진짜 일학년 맞나 싶데요.

우리반 마무리잔치는 어떻게 할까요? 궁금하지요?

뭣 좀 그럴 듯 해 보이게 발표하려면, 학원 다니는 아이는 학원에서 연습해 와야 하고, 학교에서도 달달 볶아야하고, 집에서도 엄마들한테 부탁해서 밤낮으로 연습을 해야잖아요?

그기 뭔 잔치고? 잔치는 잔치다와야 잔치지. 즐겁고 재미있게 신명나게.

그래 우리는 지가 일학년 들어와서 제일 재미있고, 신나게 배운 것 가운데 두어개 뽑아 보라고 했거든요.

겨울 방학 전에는 방학 때 꾸준히 연습해서 발표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방학동안 좀 해 보라고 하긴 했지만, 긴긴 방학 동안에 그걸 새겨두고 꾸준히 연습할 아이가 몇이나 있겠어요? 그것도 이제 겨우 일학년이.

개학하고 거의 새로 준비하는 셈인데, 어렵고 거창한 거 못하잖아요?

그래 저거들보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 제일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골라라 했더니 실로폰, 리코오더, 탬버린, 줄넘기, 노래....

두 녀석은 웅변을 한다네요. 학원에서 배운 것 있다고.

태권도 하겠다는 녀석이 둘, 선하는 수화로 노래하겠다하고.

그리고 우리 대경이.

여름방학 마치고 왔을 때는 한 이틀 낯을 가리고 울어서 엄마 애를 태우더니, 이번 방학 마치고는 늠름하게 혼자 교실에 쓰윽 들어왔거든요.

그것만 해도 얼마나 대견스럽던지.

개학 첫날, 마무리 잔치한다고 제각기 자기 하고 싶은 걸 정하고, 끼리끼리 모여서 편을 짜니까 대경이가 옆에 와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뭐라 그래요.

먼저 나온 아이들 몇몇을 데리고 편짜는 걸 돕고 있던 터라 제대로 못 듣고 으응 하고만

하던 말을 이어서 하는데 이번에는 아주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대경이도 노래 할 수 있는데.” 그럽니다.

옆에 있던 민지가

“선생님 대경이도 노래한대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앞에 나와 노래는 커녕 ‘안녕하세요.’ 인사 한마디 하는 것도 무섭다고

십분 쯤을 망설여야 겨우 입을 여는 아이 대경이가 노래를 하겠다는 거예요.

“엉? 우리 대경이도 노래해야지 그럼. 무슨 노래하고 싶어?”

“대경이 노래할 수 있어요.”

“그래, 대경이도 노래 잘하지. 무슨 노래할까?”

“아아, 대경이도 노래할 수 있다니까요.”

여기까지. 내가 또 대경이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겁니다.

대경이가 노래한다면 그냥 하면 되지, 무슨 노래할 건지 자꾸 물을 건 뭐냐고요.

대경이 한테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춘다는 것이 이렇게 잘 안되니다.

“그래, 우리 대경이도 노래하자. 지금 해 볼까?”

“아니, 안 해요. 무섭단 말예요.”

“대경이 좋아하는 동무들 이렇게 많은데도 무서워?”

“싫어 싫어 무섭단 말이야.”

노래할 수 있다는 한마디 말에 내 맘대로 흥분했다가 다시 스르르 힘이 빠지는 내가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아이들이 편짜고, 노래하고, 악기 두드려대는 걸 보고 ‘대경이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만도 얼마나 기뻐할 일인데.

그래 오늘은 이 정도로만 기뻐하자 그러면서도 나는 그래도 엄마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노래하나 불러주면 힘들게 뒷바라지하는 대경이 엄마가 얼마나 기운이 날까 싶습니다. 이번 잔치에 대경이 노래를 꼭 부르게 하고 싶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대경이는 다른 아이들이 나와서 연습하면 저도 노래하겠다고 나왔다가는

내 손을 꼭 쥐고 섰다가 결국 그냥 자리로 들어가고 맙니다.

노래해보겠다 마음먹고 제 스스로 이 앞에 나와 서기까지 한 해 가까이 걸렸어요.

내 손을 잡고 바들바들 떨리도록 힘을 꼭 주는 손이 축축하게 땀이 차지만 이것만도 우리 대경이가 많이 좋아졌잖아요?

그래도 또 욕심이 앞서는 걸 억지로 누르면서 어떻게 시작을 하게 할까, 시작이 어렵지 한번 해보면 할 수 있을 텐데 그러구 마음속으로 바쁘게 재어보고 있는데,

“우리 대경이 노래 잘 하잖아요?”

“대경아, 마법의 성 부를래? 학원에서 잘 부르데?”

“대경아, 노래 잘하지? 함 해봐.”

“대경이 텔레비전 틀어주면 잘 하는데. 우리 대경이 텔레비전 틀고 따라 부르까?”

입술도 겨우 달싹거리는 대경이한테 아이들이 힘을 주고 있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엄마가 따뜻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아기를 달래는 것처럼.

옆에 아이가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짜증내고, 일러주고 징징거리는 아이들이 대경이한테 하는 걸 보면 천사 아닌 아이가 없습니다.

자기보다 모자라고 부족한 동무를 업수이 여기지 않고 따돌리지 않고 함게 데리고 가는 이 아이들이 천사지요.

이 아이들한테 대경이는 '정신지체장애 2급' 뭐어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우리반 대경이입니다.

오늘은 한 시간만 차례로 나와서 자기 연습한 것 해보고, 둘째시간에는 동무들에게 주는 상장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반 마무리 잔치 때 자기가 만든 상을 동무에게 줄 거거든요.

한 해 동안 함께 지내면서 도움을 받았거나 함께 어울려 행복했던 시간을 돌아보고

자기의 마음을 담은 상을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노는 시간 종이 쳐도 ‘안 놀아요?’ 하는 아이도 없이 쏙 빠져들었습니다.

발레를 하지 않아도, 피아노 연주나 풀룻 연주 하나 없이 소고하고 탬버린만 있지만

이 아이들이 삐둘삐뚤 적은 저 상장이 잔치를 얼마나 빛내줄까?

머리를 푹 박고 상장을 적고 그리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환상에 젖어 있는데 아이들 몇몇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옵니다.

“선생님, 대경이 노래해요.”

“진짜로 인자 잘해요.”

“우리하고 같이 하면 진짜로 잘해요.”

대경이 손을 잡고 들어온 아이들이 흥분해서 목소리가 교실천정을 뚫을 듯 합니다.

꿈동산에 간다고 나가더니 대경이를 얼마나 달래고 구슬렀는가? 싶은데

대경이가 커다랗게 눈을 뜨고 우렁차게 말합니다.

“대경이 지금 노래하께요.”

“대경이 민지하고 예진이하고 노래하께요.”

그래 불러봐라 할 틈도 없이 한 손은 민지가, 한 손은 예진이가 잡고 교실 가운데 턱 섰습니다.

“크고 작은 은빛 동그라미~~”

대경이가 노래를 합니다.

대경이가 앞에 서서 노래를 합니다.

나도 못 시켰던 노래를 아이들이 데리고 노래를 합니다.

아아 그런데 그것만이 감격스러운 게 아니어요.

대경이 손을 잡고 함께 부르기 시작했던 민지랑 예진이가 저희들 목소리를 아주 낮게 아니 거의 입만 벙긋거리는 수준이예요.

그렇게 대경이 노래를 살려주고 있는 거에요.

아아 이 아이들이 진짜 일학년 아이들 맞습니까? 내 혼자 막 그랬어요.

소란스럽게 들어오는 이 아이들 때문에 덩달아 둘러섰던 아이들, 그때까지 상장을 만든다고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던 아이들이 여기저기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기 시작해요.

대경이 손도 잡아 주고 대경이 앞에도 서고, 뒤에도 서고 대경이를 빙 둘러섰어요.

대경이가 어려운 창작동요제 노래를 끝까지 다 부를 때까지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입만 움직이는 금붕어 노래로 함께 따라 불러주고.

노래를 낭랑하게 부르는 대경이, 그 아이가 오늘 그렇게 빛날 수가 없어요.

대경이를 둘러싸고 노래 끝날 때까지 입을 벙긋거리면서 한편으로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한편으론 힘을 주는 따뜻한 눈으로 함께 노래해 주는 우리반 이 아이들은 또 얼마나 빛납니까?

나는 맨날 맨날 이렇게 이 조그만 아기들한테서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대경이를 챙기고 거두면 그때서야

"사반 동무들 모두 모두 고맙대이. 너거들이 내 보다 훨씬 낫네. 이래 따뜻한 너거들하고 한 반이 되어서 나는 너무 고마워. 아이참, 나는 너거들 보다 맨날 늦는다, 그치?"

뒤늦게 이런 말로 아이들한테 고마워하면서 한 해를 살았어요.

되돌아보니 대경이 일 뿐만 아니예요.

저거끼리 싸우고 일러주면 저는 소리부터 지르고 나서 아이들이 좀 겁먹었다 싶으면

"미안 미안, 소리 질러서."

또 사과나 하고 그러는데 그럴 때 마다 옆에서

"그런데요, 석우 말도 좀 들어보지요?"

"나도 쌤처럼 화 날 때 있어요."

해서 정신이 번적 들게 해 주는 것도 이 아이들이었네요.

내일모레 마무리 잔치에서는 이 아이들이 만들어 서로를 칭찬하고 북돋워 주는 상장이 잔치마당을 한껏 빛낼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이 아이들이 내한테 가슴 가득 빛을 안겨 주네요.

“바람개비 뱅그르르~~”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눈물도 나고 목도 메이고....

그렇지만 오늘 너무나 아름답고 귀한 우리 아이들이 있어서 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자랑합니다.

지금부터 마술사 모자도 만들고, 꼬깔도 만들고 까만 안경도 여섯개나 만들어야하는데, 할 일은 엄청 많은데 가슴이 가득 차서 그저 행복합니다.

아아, 우리 사반 일마들을 우예 보내지?

아니 이 아아들 놔두고 내 우예 다른 학교로 가지요?

아아, 행복하고 아름다운 하루! 인자 집에 가서 밥해 먹어야지. 오늘은 밥 안 먹어도 배고프지는 않을 것 같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