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네가 사는 이야기

과민성 혈관 확장증이라고요

야야선미 2009. 10. 7. 20:38

의사가 손목을 잡아보고, 눈을 들여다보고 몇 마디 물어쌓더니 한숨을 푹 쉰다.

“허어참, 이거를 뭐라 해야 되나?”

목걸이며 반지며 쇠붙이 있는 건 다 빼고 저 위에 올라가 누우란다. 턱으로 좁다란 침대를 가리키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자석인지 뭔지를 내 팔에, 다리에 여기 저기 붙이더니 자기 손가락을 동그랗게 고리 모양으로 만들고 다른 손은 내 몸에 여기 저기 대 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오랜만에 보는 진지한 모습이다. 이 사람은 딱 요 때만 진지하단 말야. 이걸 할 때 마다 궁금한데, 어떻게 이래 해 가지고 내 몸을 알아보는지.

“내려오이소.” 하더니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또 조금 전 얼굴로 돌아와 버렸다. 도저히 의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와예? 뭔데예? 죽을병이라도 돼요?”

“거어 참, 큰병이라면 큰병이고, 별 거 아이라면 별 거 아이고.”

또 돌팔이겉은 소리를 한다. 저러니 내가 돌팔이라 하지. 나도 입을 꾹 다물고 뭔 말이 떨어지기만 기다린다. 진료카드를 꺼내놓고 글인지 그림인지 쓱쓱 끄적거리더니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제수씨는, 그러니까 제수씨 속에 꽉 찬 화부터 풀어줘야 되겠는데요.”

뭐라 말을 할라는데 기다리지도 않고,

“제수씨는 뭔 홧덩어리를 속에 품고 사요? 허기사 이 세상만사 홧덩어리로 보면 홧덩어리 아닌 게 없지요?”

얼굴 반쪽이 퉁퉁 부은 거 하고 속에 홧덩어리하고 뭔 상관이란 말이고. 하긴 영 아니란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나는 얼굴 반쪽이 며칠째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볼쌍사나운 이기 뭐 어떻고 어쩌다는 말이 듣고 싶다.

“그 홧덩어리 땜에 이래 부었다는 말입니꺼?”

“내가 제수씨하고 데이트를 좀더 해 봐야 확실하이 말할 수 있겠지만, 제수씨 사는 거를 미루어 보면 그기 맞지 싶네요.”

이 사람은 애들 아빠하고 친구지만 그다지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우리 사는 걸 시시콜콜 다 이야기 하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홧덩어리를 품고 산다고? 저 자석겉은 거를 붙이고 몇 번 짚어보고 홧덩어리까지 잡아낸단 말이가? 놀랍다. 맨날 돌팔이라고 놀렸더마는.

“인자 화 삭히고 마음 편안히 가지거라, 내 몸을 내가 소중하게 여기거라. 뭐어 그런 신호를 보내는 거지요.”

“이거는 약도 필요 없고 침뜸도 다 필요 없어요. 그냥 내하고 술 한 잔 하고 데이트 몇 번만 하면 괘안아지겠는데 뭐.”

그러면서 진료카드에 커다랗게 싸인을 하더니 옆에 작은 책상으로 던져버린다. 밖에 다른 환자들도 많이 기다리고, 환한 대낮부터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옷섶을 대충 만지면서 일어난다. 뒤꼭지에 대고 또 그란다.

“서방님한테 드라이브하자고 불러내소. 서방님한테 몬할 욕이 어데 있노. 욕하고 싶은 거 팍팍하고, 좀 풀고 나서 몸을 좀 푹 쉬게 하이소. 서방님 늙어 불쌍한 홀애비 만들지 말고, 제수씨 몸을 살려주이소. 지금 몸이 내 살려 주소 하고 아우성치는 거거든.”

돌팔이라고 놀려대면서도 이 사람한테 좀 믿음이 가는 까닭은 웬만해선 약을 잘 권하지 않는다는 것, 침이나 뭔 시술같은 걸 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이 사람 처방은 집에 가서 무얼 달여 먹어보라는 둥, 냉찜질하고 푹 쉬어보라는 둥, 안전하게 놓을 수 있는 사혈침을 가르쳐주든지 대충 그런 식이다.

돈은 언제 버냐고 했더니,

“돌팔이가 돈 많이 벌면 안 되지요. 그래도 돈 많은 척 하는 사람들한테는 돈 마이 받거든. 그러이 집도 사고 병원도 새로 단장하고 그라지요.” 하면서 웃었지. 하긴 영 못미더운 사람이면 내가 또 여길 찾아 왔겠나.

병원을 나서서 그냥 하염없이 걷는다. 오르막길이 다리가 아프면 내리막길로 들었다가, 차가 많이 다니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고. 막 걷다보니까 은주 저거 아파트 끄터머리에 있다.

‘은주 저거 학교도 여기 어데 있을낀데, 한번 올라가볼까?’ 그러다가 내려가는 길로 접어든다. 쭈욱 내려가니 옛날에 많이 걷던 길이 나온다. 교대에서 여기가 어데라고, 그때는 이 길이 먼 줄 모르고 걷던 날이 많았다.

문득 오래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된 선배가 떠오른다. 그때는 그 선배하고 걸으면 서울 가는 길도 먼 줄 몰랐을 거다. 교대 앞에서 만나 범어사 입구까지 걸어 다녔으니까. 통금 시간이 다 되어 가면 그 길을 막 달렸지.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힘든 내색 안 할라고 한 발짝 뒤에 서서 몰래몰래 숨을 몰아쉬곤 했지. 걷다가 어쩌다 손이라도 스치면 손끝에서 머리카락 끝까지 열이 나는 것 같았어. 손을 확 뺐다가는 다시 손길이 스치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어. 한 두어 번 집 앞에서 통금에 걸렸는데, 그런 날은 선배는 어떻게 했을까? 다음날 물어도 그 대답은 한 번도 해 주지 않았던 것 같아. 세상을 버리는 날까지 통금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못 들었어.

어찌어찌 걷다보니 금사동 넘어가는 고갯길 들머리다. 다시 발길을 돌려 옛날 도랑가를 찾는다. 도랑은 다듬어지고 그 위로 전철이 다니니 그 때 그 분위기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 길이 좋다. 군데군데 수양버들이 늘어져 바람에 일렁이던 것도 좋았고, 냄새는 조금 나지만 그래도 둘씩 셋씩 어깨붙이고 앉아 이야기 하던 사람들이 있어서 그 그림도 참 좋았거든. 그리고. 알아들을 듯, 못 알아들을 듯한 EDPS를 들려주던 좀 능글맞던 선배도 참 좋아했지. 부끄럽고 쑥스러워하면서 듣던, 그 때 좀 수줍어할 줄 알던 그때의 내 모습도 그립다.

혼자서 히죽이 웃다가 문득 누가 봤으면 뭐라 하겠노 싶으면 고개를 들고 들키지 않게 웃다가 그러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국시가 앞이다. 추어탕에 국시 말아먹으면 좋겠다 싶어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돌아선다. 얼굴 반쪽이 퉁퉁 부은 게 생각이 났거든. 아아, 천국은 여기서 끝이 나 버렸다. 얼굴 부은 게 생각나면서 꿈이 확 깨 버렸다. 다시 이 세상으로 열불나는 세상으로 돌아와 버린 거야.

나는 내가 참 속이 넓고, 아량도 깊고, 배려할 줄 알고, 마음도 따뜻하고, 욕심도 잘 부릴 줄 모르고, 남들처럼 속물근성도 좀 없는 편이라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속아지 비좁고, 욕심도 디룩디룩하고, 넘들이야 어찌됐던 내 생각부텀 하고, 뭐어 그런 세상에 널린 사람인 거야.

진작 에 나는 그렇다하고 살았으면 이래 애터지게 살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괜히 속 넓은 척하고, 착한 척하고, 욕심겉은 거 없는 척하고, 남들 위하는 척하면서, 마음 여린 척하면서 살다보니 안 해도 될 생고생을 한 거지. 나는 왜 이때까지 내 옷도 아닌 걸 입고 우아한 척 살았을까? 어쩌다 나는 그런 옷을 입고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돈에 연연해하는 사람 아닌 척 하면서 우리 것 잘 못 챙기고, 그런 뒤에 일이 터지면 속을 달달 볶고 살았지. 속 너르게 다 이해하는 척 하면서 또 일이 다급해지면 얼마나 애를 태웠냐 말이지. 그러다 괜히 옆에 있는 사람이나 들들 볶다가 마음 상하고. 제일 아끼고 위로해 줘야할 사람한테 오히려 상처주고 할퀴고 그랬다. 그 때문에 부부간에 의 상해서 까딱하면 남이 될 뻔도 했지. 애들 아빠가 잠시 정신 나가 술 마시고 게임에 빠지고 사기꾼 같은 부부한테 걸려 들어 돈 깨지고 그랬던 것도 어찌 보면 우리끼리 너무 상처를 주고받았던 탓이지 싶다. 집에서 마음이 편해야 집에 마음을 붙이지. 나는 나와 남편한테만 가장 인간답게 화내고 욕하고 그랬던 것이다. 그게 그 사람을 질리게 했을 거다.

내 병은 내가 안다. 겉으로 쿨 한 척 넘어갔으면서 혼자서, 그것도 꼭 잘 밤에 자리에 누워서 내 속을 내가 할퀴고 지나간 일까지 자꾸 떠오르는 것. 그것이 병인 것을. 잘 자리에서 한번 서러운 생각이 들면 이십년도 더 된 케케묵은 일까지 다 살아나서 속을 후벼 파는 거다. 이제 그만 잊어먹어도 될 섭섭한 일은 이제 그만 잊어버리면 될 것을.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고 병을 만드는 것을 돌팔이 한의사도 알았던 거지.

이번 개학을 앞두고도 그렇다. 개학날이 다가오면서 처음에는 가볍게

‘아이 가기 싫네. 기간제 교사라는 거 쫌 뻘쭘하네.’ 그랬던 것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가기 싫은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

‘아니, 내가 왜 그 좋아하던 일을 그만 두고 이래 넘으 학교 기간제가 됐느냐 말야.’ 싶어. 그러면서부터 몇일동안 시달렸어.

내가 왜 빚을 져야 했느냐, 그때 어머니 아버님만 모시고 살지 않았어도 그 태풍 속에 휘말리진 않았을 텐데, 아니 형님들은 자기들은 온갖 효성지극한 척 다하면서 왜 우리한테 부모님 맡겨놓고 그 태풍에서도 쏙 빠지느냐 말이지, 그러면서 우리한테 부모님 생활비하나 안 보태주면서. 생활비가 다 뭐꼬 신혼 여행 갔다 와서 며칠이나 됐다고, 너거 사는 그 방 전세 내 줄 때 빌려서 내 줬으니 너거가 갚으라고? 아니 빚부터 덜렁 안겨주면서 부모님까지 턱 맡기고, 그랬으면 생활비라도 보태주든가, 그때부터 빚으로 시작한 것이 그 세월이 얼마냐.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살고 나니 그 집은 또 큰 조카 몫이라고? 그래도 젊은 우리가 겁날 거 뭐있냐고 빈  손으로 나왔지. 둘이 벌면서 십년이나 살았는데도 당감동 그 쪼껜한 아파트로 나올 때 내 돈 하나 없이 빌려서 나왔잖아. 그래놓고 지금은 또 뭐꼬? 제사 안 모신다고 형제끼리 싸우다가 우리가 맡겠다고 나서니까 서로 핑계대면서 제수거리 사라고 돈도 안 보내주면서.

그러고 말이지, 내가 그런 일 때문이 아니면 왜 그렇게 친하던 사람들한테 돈 빌려서 고개도 못 들고 살았느냔 말이야.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돈 빌려주던 사람들한테 나는 지금도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사는데. 사표내고 퇴직금으로 빚 갚고, 인자 기간제로 학교 가면 사람들한테 또 얼마나 쪽 팔리냐고. 학교 가기 싫은 거 생각하다가 또 온갖 잡스런 생각이 들면서 원망이 쌓여. 그게 결국은 눈이 붓더니 나중에는 얼굴 반쪽이 퉁퉁 부어오른 거야.

발바닥이 화끈거려서 정신차리고 보니 서면까지 걸어왔다. 세상에나. 그래도 걸으면서 생각하는 건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는 것 보다 좀 나은 것 같다. 속이 덜 상하는 걸 보면. 버스를 타고 집에까지 오면서는 창밖에 지나가는 가게들을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나는 내 맘을 먼저 다스려야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걸 우찌 풀어야할지. 가만 보면 이 병은 꽤나 오래 됐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게 또 있다. 이제 이런 집안 일 뿐 아니라 다른 일에 까지 병이 들었다는 걸 떨칠 수가 없다. 작년인가 일기라고 끄적거려 놓은 걸 보면 그 때도 내 이런 병을 걱정하고 있어.

<내가 요새 좀 이상하다. 한 가지 작은 일에 삘이 꽂히면 그걸 둘러싼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자꾸 그것에 열이 뻗친다. 어제도 그렇다. 승희하고 일소, 또 글쓰기 식구들하고 차타고 가면서 대운하 이야기를 했잖아. 거기서 며칠 전에 잠깐 떠올랐던 수인성전염병도 문제라고 싶었던 거, 그게 더 크게 다가와. 마구 흥분해서 전염병이 어떻고 대운하가 뚫리면 하루이틀에 전국에 퍼지느니 우야느니 막 떠들어쌓고. 근본을 떠나 그 순간에 반짝 떠오른 작은 거에 매달려 흥분하게 되고, 나중에 쪽팔린다고 혼자서 얼굴이며 가슴이 화끈거리고.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순간순간 흥분하고 화내고 그런 버릇 때문인 것 같은데. 사람이 좀 느긋해지고 차분해지면 이렇지 않을 텐데. 아 참 문제야. 걱정이야.>

이렇게 써 놓고는 나는 지금도 자꾸 작은 일을 크게 만들어 흥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꾸 번지수를 잘못 찾는 것처럼 되는 거지.

밤에 돌팔이 한의사가 전화를 했다. 집에 잘 들어갔느냐, 안 들어가고 방황하는 줄 알았다, 미루지 말고 빨리 만나자고, 내가 마약같다나? 한번 보면 자꾸 보고 싶은 중독성 미모라나? 그렇게 너스레를 떨면서 또 한 마디 한다.

“전교조한다고 학교가 바뀌던가요? 우리 운동 해봤잖아요. 그거 안 바뀌지요? 이래 말하면 우리가 너무 무력해 보이지만 그래도 안 바뀌는 걸 보고 자꾸 속 태우면 병만 남아요. 더러븐 세상, 더러븐 인간사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방법을 알려 주께. 한번 보자요.”

이 사람 말에 가끔 전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고마운 사람 중에 하나다. 내를 높이 평가해 줄라고 노력을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전부를 부정하지 않을려고 노력해 주는 모습이 고맙거든.

“그건 그렇고 서방님한테는 뭐라고 하라고요? 갔다왔다하면 왜 그런지 물어볼낀데.”

“병명? 그런 거 작명이야 잘 하지. 함 보자, 그럴 듯한 거로 작명 해 보께요.”

잠깐 있더니 아주 근엄한 목소리로 그란다.

“과민성 혈관 확장증이라카소. 의사들이 잘 하는 기 딱 한 가지 있는데, 그거이 작명이라고나할까?”

둘이서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 웃는다. 킬킬킬킬. 그래서 내 병명은 ‘과민성 혈관 확장증’이다.

이런 이야기를 써 놓고 살아가는 이야기에 올렸다가 지웠다가 여러 번 했어.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자료실에도 올려 보았다가 그것도 안 되겠다 싶어 지우고. 이런 내 사는 이야기를 보여주기 싫은 것이 아니고, 왔다갔다하는 내 마음 상태, 그러니까 병이 든 것 같은 내를 보이기가 겁났던 거지.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무들, 또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들어줄 동무들이 여기밖에 없다 싶어서 여기 올린다. 사실은 올렸다가 지울지 몰라서 미리 올린다고 공개부터 했어. 약속부터 해야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