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랑 서인이랑

서인이와 동무

야야선미 2009. 10. 21. 11:57

 

그저께 월요일.

서인이가 학교 갔다오더니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엄마 있잖아요~” 하고 시작하는 거야.

뭔 일 땜에 한 며칠 입술이 헐도록 속을 끓이고 겨우 추스리고 있는 터라 서인이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와.

머리가 깨지도록, 가슴이 부풀대로 부풀어 터질 것처럼 부아를 끓였더니

그날은 온몸에 힘도 없고 다리며 팔이며 안 뭉친 데가 없이 아프더라고.

속을 끓이면 그렇게도 몸살이 나더라고.

몸을 써서 고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어디 높은 산을 타고 온 것도 아닌데 말이지.

양쪽 입가가 헐더니 아직도 입을 벌릴 때마다 따가워.

머리속은 아직 정리가 안 돼 어수선하지, 몸은 그렇게 아프지,

서인이가 뭔 말을 시작하려는데 귀가 잘 안 열려.

늘 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저거 동무들하고 있었던 이야기겠거니 하면서 귀 밖으로 흘려들었지.

“엄마, 우리 옆반에 내하고 친한 친구 있거든요. 어제부터 아팠는데 오늘 신종플루 확진이라는 거야.~~”

어어, 조금 듣다 보니 맨날 하는 수다스런 이야기가 아니야.

“엄머야, 우짜노? 그래 그 아아는 그럼 병원에 입원했나? 오늘 학교에도 못 왔겠네?”

“아니, 아침에 왔다가 확진이라는 말 듣고 집에 갔어요. 근데 진짜로 소심하고 생각도 많고 그런 아이거든요. 막 울었어.”

신종플루 이야기를 자꾸 듣다 보니 나도 그만 만성이 되었던가?

내 아픔에만 너무 지쳐 있어 그랬을까?

서인이 말을 들으면서도 아주 심각하게, 깊이 생각이 안 되는 거라.

“갈 때 등이라도 좀 토탁토닥 해주지. 한 며칠 치료하면 다 낫는다카던데 뭐. 니도 손 잘 씻고, 아무거나 만지고 그라지 마라. 얼굴 쪽으로는 자꾸 만지지 말고. 비비지 말고.”

그러고 나는 도로 누웠지. 나중에 오빠랑 다 오면 밥 먹자 하고.

그러고 그 다음날, 어제.

시간이 약이 되었던지 하루 더 지났을 뿐인데 내 맘도 좀 가라앉고, 문득 어제 서인이 동무가 생각나는 거야.

학원 갔다 와서 밥 먹고 있는 서인이한테 물었어.

“너거 동무, 아픈 아아. 쫌 어떻다카더노?”

“병문안도 못 가니까 잘 몰라요.”

“전화라도 좀 해 주지. 학교도 못 오고 억수로 심심할낀데.”

“엄마는 ~~”

그러면서 갑자기 서인이 목소리가 떨려.

“엄마는 인자서 그 친구 걱정이 돼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하는데 서인이 눈은 이미 붉어졌어.

그 동무가 심각한가? 가슴이 덜컥해. 서인이 손을 잡으면서

“와아~? 마이 아푸다카더나?”

손을 잡으니까 서인이는 내를 막 밀어내면서 눈을 닦네.

“와아? 무슨 일이라도 있나?”

서인이는 제법 멀찌감치 물러나 앉더니 내를 흘기는 눈으로 보면서 그러는 거야.

“어제 그 친구가 얼마나 울었다고. 우리가 달래도 억수로 울고.”

“......”

“내가 괘안타고 아무리 그래도 막 무섭다고 울었는데. 으으으. 우리가 위로해 줘도 울고. 평소에 건강한 사람은 다 낫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래도 무섭다고 얼마나 울었다고오오.”

아아아, 나는 아이들이 무섭다고 생각할 거라는 걸 미처 몰랐어.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참 무심하게 말했구나 싶어.

신종플루라는 것이 심하면 죽는다는데, 뉴스에서 시시때때로 몇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느니, 오늘 하루 확진 환자가 몇 명이 생겼다느니, 얼마나 떠들어 대냐고.

이게 남의 일이라 싶을 때는 자꾸 들으면 들을수록 무감각해지고 무심해진다는 거지.

그런데 그게 바로 자기가 그 병이라는데.

그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서인이가 울어대니까 이제야 그 아이가 무서웠을 걸 깨닫다니. 남의 등창보다 제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더니.

죽음의 공포 앞에 떨었을 그 아이를 나는 벌로 생각했던 거라.

서인이를 끌어당겨서 안아주니까 서인이는 그때부터 어깨를 들썩들썩 한참을 울어.

“엄마가 그렇게 냉정한 사람인 줄 몰랐어. 어엉엉어어어.”

“밤에 잘라고 하는데 나도 얼마나 무서웠다고. 그 친구가 학교 안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오오오”

텔레비전 뉴스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식이 아니라 바로 옆에, 친하게 지내는 동무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서인이도 아주 무서웠던 모양이야.

겨우 끌어안고 토닥거리면서 달래고 사과하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어.

미안하다, 잘못했다, 엄마가 한 며칠 너무 힘들게 아파서 미처 마음을 못 썼어, 정말 잘못했다. 그 말만 자꾸자꾸 하면서.

겨우겨우 잦아드는 서인이를 안고 참 숱한 생각이 들더라. 다른 사람의 마음자리에 가서 느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힘드는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그 입장에서 받아들여주는 게 참 어려워. 내가 한 며칠 내 속을 후벼 파고 갉아먹으며 괴로웠던 것도 사실 그렇게 보면 좀 이겨내기 쉽기도 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