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온몸으로 배우는 아이들>

야야선미 2007. 12. 17. 09:16

째시간, 슬기로운 생활. 이번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재어보기 놀이를 한다. 어제까지 나뭇잎도 신발도 재어보고 교실에서 여러 가지 재어보기 놀이를 했다. 이제 운동장에서 재어보기 놀이를 하고, 내일은 이 단원을 정리할 셈이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분다. 해 뜨는 동산을 등지고 앉은 학교 건물이 운동장에 길게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햇살이 얇은 아침나절인데, 그림자에 바람까지 세어서 운동장 바닥이 꽁꽁 언 듯 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필통이다 줄넘기 줄이다 뭐다 껴안고 그 높은 층층대를 내리뛴다.

“아까 교실에서 모두 들었지요? 지금부터 여러 가지 물건으로 재어보고 여기 활동지에 적어보세요. 교실에 가서 옆에 모둠이 잰 거랑 견주어 봅시다.”

기창이가 날 힐끗 보더니 곧바로 허리를 굽혀 잰다. 끝없이 뭘 만지작거리고 분해하고 부수고 또 고치고 하는 기창이. 이렇게 몸을 움직여 하는 일에는 늘 시원시원하게 움직인다. 둘둘 감은 줄넘기 줄을 길게 풀면서 교문을 보고 미끄럼틀을 돌아보고 하더니 교문에다 줄넘기 줄을 갖다 댄다.

‘교문에서 미끄럼틀까지 먼저 잴 모양이지?’

한쪽 끝을 놓고 미끄럼틀 쪽으로 걸어간다. 줄이 반듯하게 펴지자 그 자리에 두고 교문으로 온다. 먼저 놓아두었던 한쪽 끝을 잡고 간다.

‘저거 모둠 아아들은 다 어데로 가고 혼자 저래 하노?’

나눔이 모둠 아이들을 눈으로 찾는데 기창이가 먼저 “정운이!”한다. 남주랑 정운이가 달려온다.

“정운이, 니이 이거 잡아라. 내가 온나 하면 오면 된다.”

정운이한테 한쪽 끝을 맡기더니 저도 한쪽 끝을 잡고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간다. 그 자리에 앉아서 바닥에 표시를 하더니

“됐다. 인자 이까지 온나.”

그러고 저는 또 줄이 팽팽해 질 때까지 간다. 다시 쪼그리고 앉더니 바닥에 표시를 한다. 기창이 얼굴이 ‘이래 하이 좋네.’ 하는 듯하다. 두어번 더 그러더니 또 “남주야”하고 부른다.

“니이 이것 갖고 내가 대라 하면 대라이.”

필통을 쥐어 주면서 제가 발로 가리키는 자리에 필통을 갖다 대라고 시킨다. 줄이 팽팽해지자 기창이는 제가 들고 있는 끝을 땅바닥에 대더니 발로 바닥을 찍어준다. 남주는 발로 찍은 자리에 필통을 갖다 대고, 정운이는 달려와서 남주가 대고 있는 데다 줄넘기 줄을 갖다 놓는다. 이런 일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남주는 제 할일이 생겨서 아주 신이 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귀찮기도 하련만 팔딱팔딱 몸을 재게 움직인다. 가끔 기창이 발끝은 안 보고 아무데나 놓아서 “야아, 잘 보고 대라.” 하고 퉁박을 듣기도 하지만. 셋이 손 맞춰 하는 걸 보니 아까 보다 수월해 보인다.

‘이 셋은 됐고! 어디 또 보자아.’

저쪽에 민지랑 진희가 줄넘기 줄로 재고 있다. 민지가 한쪽을 잡고 앉으니 진희가 미끄럼틀 쪽으로 간다. 민지가 진희가 섰던 자리까지 다가가자 진희가 또 앞으로 간다.

‘어어 그런데 저래 하면 우야지?’

민지가 진희 섰던 자리까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진희는 또 앞으로 가는 것이다. 반쯤 밖에 나가지 않는 셈이다. 둘은 미처 알지 못하고 열심히 재미나게 간다.

바로 옆에 상욱이가 혼자서 재고 있다. 줄넘기 줄을 바닥에 길게 펴 놓고 눈짐작으로 대충 보더니 줄을 줄줄 당겨서 간다. 끝이 제가 봐둔 자리까지 왔다 싶은지 또 줄을 쭈욱 펴고 “열 두울” 하더니 줄을 끌고 간다. 이번엔 눈짐작했던 곳보다 더 많이 가서 줄이 줄줄 딸려가는 데도 자꾸 간다. 그러더니 “열세엣”하고 센다.

아이들마다 줄넘기 줄로 재는 모양이 이래 다르다.

‘아아 이거이거 재미있는데. 이거 한번 찍어볼까?’

교실에 가서 캠코더를 들고 나온다. 아이들 재어보는 모습을 하나씩 찍어서 나중에 보면 절로 공부가 되겠다.

“뭐예요?”

“우리 찍을 거예요?”

“우리도 보여줄 거예요?”

캠코더를 들고 나오자 그만 아이들 활동이 멈춰버렸다. 이거 이러다 잘하고 있는 공부 망치는 꼴이 되겠다.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한다.

“어어 너거들 찍을라고 들고 왔는데 뭐가 잘 안되네. 고쳐야겠어. 다 고쳐지면 말하께. 너거들은 아까 하던 거 더해. 끝까지 재어 봐야지.”

고쳐야한다는 말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한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찍을려면 이 방법밖엔 없겠다. 교실에서 재는 방법을 설명하느라 했는데도 아이들은 제 생각대로, 제 편한 방법대로 하고 있다.

줄넘기 줄로는 다 재었는지 이젠 발로 재는 아이들이 더 많이 보인다. 기창이네 나눔이 모둠도 이젠 발로 재고 있다. 기창이는 역시나 시원시원하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 왼발을 놓고 오른발을 끌어다 왼발 끝에 대고, 또 오른발을 갖다 대고. 조금 비틀거리기는 하지만 균형을 잃지 않고 앞으로 잘 나간다.

조금 뒤에 정운이가 따라가고 있다. 비틀비틀 하는 모습이 처음 외줄을 타는 아이처럼 불안해 보인다. 몸 움직여 노는 것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놀기를 더 좋아하는 정운이는 아무래도 몸놀림이 재빠르지 못하다.

‘어어 그런데 쟈가 쟈가 어데로 가노?’

교문에서 미끄럼틀까지 재는 모양인데 아주 엉뚱한 데로 가고 있다. 그저 바닥만 보고 비틀비틀 기우뚱하면서 열심히 발자국을 세면서 걷는다. 한참 가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더니 잠깐 멈춘다. 이제 알았나보다. 미끄럼틀로 몸을 돌리더니 다시 걷기 시작한다. 걸어간 길을 보니 아주 기역자로 가고 있다.

‘흐흠, 저러면 발로 잰 수가 엄청 많이 나올낀데. 나중에 어짜는가 함 보자.’

정운이 재는 걸 그대로 두고 운동장을 한 바퀴 휘이 돌며 찍는데 상욱이가 발자국으로 재는 모습이 들어온다.

상욱이 하는 건 또 다르다. 한발을 성큼 내딛더니 뒷발을 앞발 끝으로 끌어다 대고 “스물 둘”한다. 뒷발을 빼서 성큼 놓더니 다른 발을 끌어다 발꿈치에 끌어당기더니 “스물셋”한다. 성질 급한 상욱이 모습이 여기서도 나온다.

‘저러면 저게 발로 재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으로 재는 꼴인데. 그래도 발끝에 뒤꿈치를 갖다 대면서 잰다는 말을 듣긴 들었네.’

상욱이를 두고 이제 또 카메라를 돌린다. 주난이, 주은이, 민영이, 셋이서 손을 잡은 모습이 들어온다. 소리 맞춰서 세는데 아주 신났다.

‘그런데 저 아아들은 우야노?’

백 육, 백칠, 백팔, 백구 하더니 “이백”하고 넘어가 버렸다. 아이고, 저러면 나중에 몇 천도 될 텐데.소리가 잘 녹음되나 보고 이 아이들을 더 찍는다. 아니나 다를까 이백팔, 이백구, 삼백 하면서도 저희들은 잘 모르고 있다.

줄넘기 줄로 재는 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줄넘기 줄로 재는 아이들이 있다. 세윤이는 줄넘기 줄을 좌악 펴 놓더니 앞으로 가서 발로 진하게 표시를 한다. 돌아와서 줄을 걷어가서 표시 한 곳에 끝을 맞춰 줄을 펴놓고 표시한다. 또 와서 줄을 가져다 놓고, 발로 표시를 하고. 여태 혼자서 저러고 있었으니 시간이 걸려도 많이 걸리겠다.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 하는 좀 보고 섰더니 다시 제 할 일을 한다. 저 혼자 늦든 말든 동무들이 나가놀든 말든 언제나 제 할일을 끝까지 하는 세윤이 모습이 여기서도 보인다.

미진이도 줄넘기 줄을 재고 있더니 주난이랑 민영이 손잡고 소리 맞춰 발자국 세는 걸 보고는 줄넘기 줄이고 필통이고 그 자리에 팽개치고 쪼르르 달려가 옆에 선다. 지금까지 혼자 재어본다고 끙끙대고 버틴 것도 장하다.

이번엔 카메라에 민석이가 들어온다. ‘어디 보자아~’다른 동무들이 한 걸 웬만해서는 믿지 못하는 민석이. 역시 이번에도 혼자 따로 떨어져 앉아 재고 있다. 다른 건 다 했는지 필통으로 재기를 하는 모양이다.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필통을 땅바닥에 대더니 필통 끝에다 연필로 싹하고 줄을 긋는다. 필통을 떼어서 그어놓은 줄에 갖다 대고 다시 연필로 줄을 싹 긋고는 또 필통을 옮겨 놓는다. 저 먼 길을 혼자 쪼그리고 하면 다리도 아프련만 지치지도 않고 재고 또 잰다. 연필로 그은 줄에 꼬옥 맞추어서 갖다 대는 것 하며, 처음 쪼그린 그 자세로 끈질기게 하는 모습에서 평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이고, 정운아. 니를 우짜야 겠노?’

카메라를 돌리는데 정운이가 잡힌다. 좀 전에 길을 잘못 잡아 기역자 모양으로 재고 있더니 이번에 또 옆으로 빠졌던 모양이다. 아주 갈짓자로 가고 있다.

아이들 나름대로 재는 걸 보다가, 카메라로 찍다가 시간가는 줄 몰랐더니 어느새 다른 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 우리들만의 조용한 시간은 끝이 났다. 저렇게 쏟아져 나오면 제대로 잴 수도, 찍을 수도 없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미처 다하지 못한 아이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뒤에 남는다. 자기들은 남아서 다 재고 들어오겠단다.

둘째 시간에는 재어본 것을 모둠별로 발표하고 어떻게 다른지 같은지 맞춰보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시끌벅적하다. 둘째시간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기록지를 꺼내들고 다른 모둠이랑 맞춰본다. 언제나 조용히 물러나서 혼자 앉던 정운이도 이번에는 끼어들었다. 기창이랑 남주랑 줄넘기 줄로 재었던 걸 보더니 상욱이한테 묻는다.

“근데 상욱이, 니는 왜 우리보다 숫자가 이래 작은데?”

상욱이가 보고 제 생각에도 이상한지

“내 줄넘기 줄이 더 긴가?”

하고 줄넘기 줄 두 개를 갖다 대 본다. 그러나 줄은 길이가 똑같다.

“나도 분명히 똑바로 쟀는데.”

상욱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다른 모둠을 찾아 나선다. 저랑 비슷하게 나온 모둠 있나 보려는 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상욱이가 돌아와서 이번에는 다른 칸을 본다.

“정운이, 이거 쫌 이상하다. 나도 분명히 교문에서 미끄럼틀까지 쟀는데, 니 발로 잰 거 하고 내 발로 잰 거 하고 너무 다르다. 나는 백팔십칠인데, 니는 오백십구다.”

다른 모둠을 기웃거리던 정운이가 달려온다. 나도 정운이가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아까 정운이가 갈짓자로 걸으면서 재는 것 다 봤으니까. 정운이가 기록지 두 장을 번갈아 보더니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내 발이 너무 작나?” 한다.

그 진지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정운이 보다 키가 작은 상욱이가 “발 한번 맞춰보자.”

하더니 신발을 벗어들고 대어본다. 정운이 신발이 손톱 하나만큼 더 크다. 정운이는 또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중에 카메라로 찍은 걸 보여주면 뭐라고 할까?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 죽겠다.

쉬는 시간도 끝이 나고 둘째 시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밖에 남았던 아이들이 다 들어왔다.

“야아, 다 쟀나? 우리하고 맞춰 볼래?”

“우리는 벌써 다 맞춰봤는데.”

조금 잠잠해지던 교실이 다시 시끄러워진다. 민영이 주은이도 앉자마자 다른 모둠이랑 맞춰보느라 내 쪽은 보지도 않는다.

“어어, 너거는 왜 발로 잰 거 이렇게 밖에 안 되는데? 우리는 천 사백팔인데.”

엄청나게 많은 숫자에 다른 아이들도 모두 놀란다.

“자아, 모두 앉았으면 기록지 한번 봅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저희들끼리 다 맞춰본 뒤다. 줄넘기 줄로 잰 것부터 발표하는데 기창이네 68, 상욱이 27, 진희 96이다. 세 모둠 줄넘기 줄을 갖다대보니 줄 길이는 모두 같다.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 말 않고 이번에는 발로 잰 걸 발표한다. 그 중 가장 바르게 잰 기창이 236 , 정운이 519, 상욱이 187, 민영이 1408. 아이들이 또 시끌시끌해진다.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 세 사람 신발을 재어본다. 정운이랑 민영이 신발이 비슷하고 상욱이 신발이 가장 작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 야아, 너거들 엉터리로 잰 거다. 똑바로 재면 그렇게 많이 차이 안 난다.”

이때다. 이때 카메라로 찍은 걸 보여주는 거다. 나는 슬며시 웃으면서 텔레비전을 켠다.

“자아, 여기를 보세요.”

아이들이 별안간 뭔 일이냐는 듯 텔레비전을 올려다본다.

“어어 기창이다. 남주하고 정운이도 있다.”

“내가 몰래 찍었지롱”

“와아, 거짓말쟁이. 고장났다 해놓고.”

“이게 바로 몰래카메라라는 거지롱”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자아, 지금부터 보면서 누가 어떻게 재는지, 재는 방법을 잘 살펴보세요.”

기창이랑 정운이 남주, 셋이서 줄넘기줄로 재는 걸 보다가 상욱이가 재는 모습이 나오니 아니들이 와그르르 웃는다. 저희들 눈에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겠지. 진희랑  민지가 재는 걸 보고 또 웃는다. 진희 얼굴이 빨개졌다.

주난이, 민영이, 주은이가 세는 모습이 나온다. 이번에는 소리를 조금 크게 올렸다.

“백육, 백칠, 백팔, 백구, 이백”

아이들 서넛이 웃는다. 다른 아이들은 눈치도 못 채고.

드디어 정운이 차례. 정운이가 미끄럼틀을 보고 가다가 왼쪽 정글짐으로 간다. 다시 고개들어 살펴보더니 기역자로 틀어 미끄럼틀로 가는 모습이 다 잡혔다. 민석이 필통으로 재는 모습이 나오다가 다시 정운이가 조례대 가까이 가서 미끄럼틀 쪽으로 걸음을 돌리는게 나온다.

“정운이! 그러니까 내보다 훨씬 많지.”

상욱이가 소리친다. 정운이가 조용히 웃는다. 그렇지만 얼굴은 밝다. 인제야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는 듯한 얼굴이다. 화면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소리친다.

“다시 하면 안돼요?”

“한 번 더 해요.”

여러 아이들이 재는 걸 보니 저거들 말로 “필”이 확 오는 모양이다. 다시 나가자고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지? 못 이긴 척 허락을 하는데 아이들은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다친다고, 층층대 조심하라고 말할 틈도 없다. 기록지를 다시 인쇄해서 나가니 아이들은 이미 탄력을 받았다. 온전히 빠져들어 재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20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