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아! 시가 피었다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보리/박선미)>에서

야야선미 2007. 5. 1. 09:03

5월 4일은 우리학교 잔칫날이다. 운동장을 빙 둘러서서 학교뿐 아니라 온 동네를 환하게 밝혀주는 벚꽃과 그 아래로 조금 일찍 노랗게 피어서 길가는 사람을 끌어당기던 노란 개나리.  이 꽃들이 아까워서 해마다 이맘때면 아이들, 부모님들,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랑 한마당 잔치를 한단다. 그러니까 우리 일학년도 벚꽃이 봄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운동장에서 어머니 아버지들이랑 잔치를 하는 것이다.

춤을 추고 달리기도 한다. 입학한 지 두 달 남짓한 아이들을 데리고 잔치 준비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3월 한 달 동안 춤이야 많이 추고 놀았지만 운동장 한 가운데서, 누군가를 모셔놓고 춤추는 건 또 좀 다르다. 달리기도 그냥 막 달리는 것만이 아니다. 하얗게 트랙을 그어놓고 그 줄을 따라 빙 돌아 달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하루는 나가서 운동장 가운데서 춤을 춰보고, 하루는 줄을 따라 달리기도 해보고, 또 하루는 두 편으로 나누어서 ‘피어라 꽃동산’경기 연습도 했다. 아이들 고생 안 시키고 즐거운 것을 찾느라 머리를 굴려 보지만 별 뾰족한 걸 못 찾는다. 하긴 꼭 그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며칠 동안 한 시간씩 운동장에 나가 춤추고, 달리고, 경기하는 그 시간을 즐겁고 재미나게 보내는 수밖에.

벚나무 아래 울타리에는 우리학교 아이들 그림을 모두모두 붙이기로 했다. 오늘은 우리도‘우리학교’를 그린다. 캔트지를 한 장씩 들고, 스케치북도 끼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밖에만 나가면 아이들은 더욱 펄펄 살아난다. 이 아이들은 밖에만 나가면 먼저 온 힘을 다해 뛴다. 누가 먼저고 누가 뒤따르는지도 모른다. 그저 온힘을 다 쏟아낸다.

몇몇은 어디서 어디까지라 할 것 없이 그저 무작정 내달린다. 두어 녀석은 저어기 미끄럼틀까지 힘껏 뛰어갔다가 되돌아서 맞은편 담까지 힘껏 달려가더니 손바닥으로 담장을 “착!” 짚고 또 되돌아 달려 나온다. 미끄럼틀 옆에 매달아놓은 폐타이어를 발로 힘껏 차고 다시 내달아 뛰어오더니 되돌아가 또 발로 힘껏 차고는 튕기듯이 물러난다. 재미가 있는지 이 녀석은 말 그대로 ‘무한반복’을 한다. 힘이 빠져야 그만 두려나? 운동장 가운데서는 여학생들이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위이잉” 소리까지 내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운동장을 비잉 돌고 있다.

바람이 일 때마다 흩날리는 꽃잎도 한몫을 한다. 선선한 바람과 바람결 따라 흩날리는 분홍빛 꽃잎, 그 아래 기운차게 달리는 아이들과 얼굴 가득한 웃음. 까르륵 까르륵 밉지 않은 시끄러움.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장면이다.

교장선생님이 보면 기겁할 일이지만, 체육창고까지 힘껏 내달아 철문을 “쾅” 하고 발로 차고 돌아오기도 한다. “쾅” “쾅” 이어지는 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반 수업까지 방해할까봐 “아서라, 아서라”  말려서 불러 모으고 싶지만 저럴 때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냥 한 오 분만 기다리면, 숨을 헐떡이면서 다들 모여든다. 아무 말 안하고 보고만 서 있어도 “뭐해요?” “뭐해요?” 하면서.

그런데 이걸 아는 데까지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목 놓아 소리쳐 불러 모으고, 줄 서라  목에 핏대를 세우고,  제발 좀 모이라고 눈을 부라려댔다. 그렇게 목청껏 소리쳐 불러 모으는 시간이나,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고 나서 빙그레 웃고 서 있는 내 앞에 “뭐 봐요?” 하고 모여드는 시간이나 거의 같다는 걸 몰랐다는 거지. 아이들만 세월 앞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나도 선생노릇하면서 참 많이 자랐다 싶으니 또 빙그레 웃음이 난다.

저렇게 솟구치는 힘들을 교실에 꼭 붙잡아 두었으니! 오늘도 뛸 만큼 뛰었는지 그제야 “뭐 봐요?” 하고 하나둘 모여든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은 목에까지 차면서도, 또 내가 빙그레 웃고 섰으니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나싶어 두리번거린다. “얄마, 땀이나 닦자.” 하고 층층대에 걸터앉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이들도 여기저기 털썩 주저앉는다. 올려다보는 아이들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민준이는 머리 밑에 땀이 어찌나 많이 흘렀는지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어 물이라도 뒤집어쓴 것 같다. ‘아, 민준이는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구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빛이 꽃잎보다 더 붉다. 아직도 숨이 골라지지 않는지 아이들 숨이 거칠다.

“오늘은 우리학교에서 여러분이 꼭 자랑하고 싶은 곳을 그려 봅시다. 학교잔칫날에 식구들이 오시면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그곳을 자랑해 보는 거예요.”

“그림 그려요?”

“네엡!”

열아홉 아이들이 꽃잎처럼 흩어진다. 스탠드에 앉아 쓱쓱 그리는가 싶더니 아주 철퍼덕 엎드려서 지우개를 문대고 있다. 뭔가 잘못 그렸다 싶은 모양이다. 바람이 한번 휘익 지나간다. 운동장가에 병풍처럼 둘러선 벚나무에서 꽃보라가 인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눈보다 곱다.

“와아!”

아이들도 탄성을 지른다.

“야아아, 저거 봐라 저거!”

민준이가 가리키는 쪽을 본다. 떨어진 꽃잎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우르르르 우르르르 뒹군다. 흩어지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뒹굴던 꽃잎들이 층층대 아래 구석진 곳으로, 담장 아래로 바람이 끝나는 곳곳에 가서 모인다.

“꽃길이다 꽃길”

 연분홍 꽃잎이 소복소복 쌓여 층층대 아래로 길게 꽃길을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아이들도 나도 모두 한참동안 꽃보라에 넋을 놓고 바라본다. 미진이가 불쑥 말을 건다.

“선생님, 꽃잎이 그냥 쭈루룩 널찌는 줄 알죠?”

“으응?”

파란 하늘과 화사한 벚꽃, 그 아래 엎드려 그림 그리는 아이들. 거기 푹 빠져 꿈속을 헤매다가 정신이 퍼뜩 든다.

“땡! 이거든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미진이가 재잘재잘거린다.

“꽃잎이요오, 밑으로 살짝 널찌다가 뺑글 돌거든요. 바람이 불면요 다시 저 위로 자꾸 올라가요.”

놀랍다. 뺑글 돌다가 다시 바람결을 따라 위로위로 올라가는 꽃잎을 보고 토해낸 말,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읊고 있다. 차분하게 앉아서 활동하는 것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진이 말대로 이건 진짜 “땡!”이다. 보통 여학생들과 달리 남학생들하고 운동장에서 공차기나 좋아하고 교실에서는 한 가지 활동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속으로 걱정을 했더랬는데. 아, 미진이가 이렇게 한 가지에 마음을 쏟아 바라보았다니.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 마음을 뺏겨 마음가는대로 그렇게 눈여겨보았다는 거다. 게임도 아니고 만화영화도 아닌 벚꽃 흩날리는 것에 그렇게 오래오래 마음을 주었다니.

“와아, 미진이 대단하다!”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요 다 알 수 있어요.”

미진이가 어깨를 살짝 우쭐한다. 이런 모습도 처음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내 앞에 와서 자신있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늘 둘레를 맴돌기만 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더니. 아이들이 모여든다.

“미진아, 다른 동무들은 못 들었는데. 한 번 더 말해줄래? 꽃잎이 어떻게 떨어진다고?"

“아아참.”

미진이가 부끄러운 듯 몸을 한번 꼰다. 둘러선 아이들이 “해봐라!” “그래, 해봐라.” 하고 힘을 준다.

“꽃잎이 그냥 쭈루룩 널찌는 기 아니라고요오~. 밑으로 살짝 널찌다가 뺑글 돌거든요. 바람이 불면요 다시 저 위로 자꾸 올라가요.”

똑같은 말을 하려니 쑥스러운지 말을 빨리 하고 만다.

“으흠! 그렇구나아. 야야들아, 미진이는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오래오래 한참 보고 있으면 다 알 수 있다니까요.”

미진이가 아이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또 빠르게 말한다.

“그렇구나아, 그러면 우리도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 한번 볼까나? 미진이처럼 오래오래 한참동안!”

아이들이 그림 그리던 것을 팽개치고 얼씨구나 층층대를 내려간다. 스케치북도 크레파스도 팽개치고 모두 모두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너도나도 와르르 운동장으로 달려 내려가는데, 지연이는 “꽃잎 다 밟는다아!” 층층대에 쌓인 꽃잎을 피해 살금살금 내딛는다. 그 걸음도 꽃잎만큼 어여쁘다.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도 지연이 키만큼 낮춰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 연분홍 꽃잎이 헤엄을 치는 것 같다. 교실에서고 복도에서고 늘 구르듯이 뛰어다니는 남주는 바닥에 구르는 꽃잎을 쫒아다닌다. 주은이는 두 팔을 옆으로 활짝 벌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입까지 쫘악 벌리고 섰다. 한참 그러고 있더니 이번에는 혀를 쏙 내밀어 본다.

“와아, 봤나? 봤나? 내 입에 꽃 들어갔는 거.”

혀끝에 내려앉은 꽃잎을 보여주느라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한다. 침이 고여 흐를 때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아이들한테 보여 주고 선 주은이. 여기저기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채 꽃잎을 따라다니는 아이들. 이렇게 잔치는 이미 시작됐다.

종이 치고 다른 반 아이들이 모두 몰려나온다. 꿈같은 시간은 끝이 나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그림그리기 수업은 샛길로 샜다. 그림 그리던 걸 팽개치고 꽃잎이나 따라 다녔으니. 그럼 어떠랴, 이미 꽃잔치는 시작됐는데. 눈앞에 온통 꽃잔치가 벌어졌는데. 그림은 다음 시간에 그리지 뭐. 새털같이 많고 많은 날에. 던져두었던 것들을 챙겨들고 교실로 들어온다.

못내 아쉬운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다 갈 때까지 운동장을 쏘다니다 뒤늦게 하나둘 들어선다. 맛있는 걸 잔뜩 먹어 아주 흡족한 듯한 얼굴이다. 그래, 그렇게 아름다운 꽃밭에서 실컷 뛰었으니. 콧구멍에 바람도 실컷 들어갔겠다, 이제 그 흡족한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자. 아이들이 별 말없이 그림을 그린다.

승하가 조금 전에 그리다 만 그림을 들고

“다른 거 그리고 싶은데.”하자, 여기저기 너도나도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온다.

“다른 거 그려도 돼요?”

“뒤에다가 다시 그려도 돼요?”

꽃잎 따라 한참 내달리다 보니 그리고 싶은 게 달라졌겠지.

“그으럼!”

아하, 이런 일이. 오늘, 이 시간 이 아이들 마음에 쏙 들어온 건 바람결에 날리는 꽃잎이었다. 누구 그림이랄 것도 없이 모두 운동장을 빙 둘러 서있는 벚나무를 그렸다. 분홍빛 고운 꽃나무. 푸른 하늘과 분홍빛 나무, 그 아래 달리는 아이들.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리고 화룡점정! 마지막으로 점점이 꽃잎을 그려 넣는다. 분홍색 벚꽃잎이 온 하늘을 운동장을 뒤덮고 있다. 방금 마음에 담아 온 것들이라 그런가? 하나 망설임도 없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B4 캔트지 한 장을 다 채우는 아이들이 아닌데.

“글자도 써도 돼요?”

글을 잘 못 쓰는 미진이가 묻는다. 쓰고 싶은 말이 있는 게지.

“그럼, 쓰고 싶은 말 있으면 써도 돼요.”

파란 하늘에 동글동글 꽃잎을 그려 넣던 아이들이 너도나도 글을 써 넣기 시작한다. 미진이는 역시나 안 되겠는지 그림을 들고 나온다.

“꼰니피 어떻게 써요?”

‘꽃.잎.이.’한 자 한 자 써 준다. 세 글자를 쓰는데 여남은 번이나 보고 또 보고 쓴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그냥 들어가서 아예 제 맘대로 적는다. 녀석, 성질이 좀 급해야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넣은 아이들이 그림을 들고 나온다. 저마다 자기 그림자리에 붙인다. 창 쪽 그림 자리에 쪼르르 그림이 달린다. 교실에도 점점 환하게 꽃이 피기 시작한다. 눈처럼 꽃잎이 흩날리는 그림이 쪼르르르 붙으니 여기, 바로 우리교실도 꽃천지가 되었다. 그림 위로 삐뚤빼뚤 쓴 글들도 모두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시다.


꽃잎이 주루루루 너찌다가요

바라미 부니까요

다시 이로이로 오라가요

쭉 보고 이선는대 엄서져서요

분명히 이섯거든요 (미진)


버꽃이 한참 올라가다가 저 먼대 가서 널쪄요.

근데요 살살 돌아요 (상현)


바람이 조용하면요 어떤 거는 쭈루룩 널찔 때가 있어요. (기원)


꽃잎이가요

미트로만 오는 거 아니예요

한참 올라가다가요

너무 오라가면요 저 먼대로 가요. (기창)


꽃잎들은

구석으로 가요

바람이 불면 모여 있는 걸 조와해요 (상욱)


이렇게 큰 눈은 없겠지요? (정운)


바람이 불면 너무 떨어져요

토요일에 엄마아빠오면 보여줘야 되는데

너무 심했어요 (진희)


바람이 슝 불면

꽃입은 하늘로 올라가요

안 내려와요 (민준)


입 벌리고 있으면

내 입에도 들어와요

진짤로 들어와요

내가 해봤어요

꽃잎이 보들보들하고요 찹찹해요

그런데 모르고 먹어졌어요. (주은)


아이들 그림만 환한 것이 아니라, 그림위에 피어난 이 아름다운 시들이 내 마음을 미치게 만든다. 봄바람 난 처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