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1996)》
《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1996)》
▷책머리에
백인들이 황금을 찾으러 아프리카로 갔을 때, 그곳 원주민 아이들이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돌덩이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백인들은 가지고 간 유리구슬을 주고 다이아몬드와 바꿨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이야 다이아몬드든 유리구슬이든 재미있게 가지고 놀면 되니까 오히려 예쁜 구슬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요. 아프리카 아린이들이 영원히 어린이인 채 유리구슬에 대한 속임수를 몰랐다면 아무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이 되고 세상에 눈을 뜨게 되면 다이아몬드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됩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지 5백년이 되는 해, 그곳 원주민이었던 인디언 후손들이 위대한콜럼버스를 살인자이며 약탈자라 부르며 항의시위를 했습니다.
일본침략군의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오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그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긴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억울하게 속고 빼앗기고 죽임을 다 안 것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지나가버린 일들이지만 다시 들춰내서 알리는 것은 그것을 교훈삼아 다시는 속이거나 빼앗고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열다섯 살의 소녀 안나 프랑크의 일기장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 위엔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그러나 아직도 끔찍한 살인과약탈은 끊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도의 지능으로 속임수를 써가며 죽이며 빼앗습니다. 그 방법이 너무나 교묘하기 때문에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분간이 잘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잘못 판단하면 어느새 나 자신이 끔찍한 흉악범의 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아침에 먹은 음식과 그리고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모두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들어앉을 집이 있어야하고 적어도 한달치 살아갈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갈 돈은 얼마나 될까요?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모든 것은 모두 부당한 것입니다.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니까요.
자연살리기나 환경운동은 먼저 내가 지나친 과소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 책은 그런 것을 조금이나마 돌이켜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쓴 글들입니다. 몇해 동안 신문과 잡지 여기저기에 조금씩 쓴 것을 녹색평론사에서 찾아내어 모아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낸다는 것이 반갑지 않습니다. 우선 바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씌어졌는지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옳든 그르든 일단 뱉어놓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김종철선생님이 여러번 출판을 제의해와서 무리하게나마 받아들인 것입니다. 교정지를 받아 다시 읽어보니 거의가 이곳 마을사람들 이야기여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언짢은 일을 새삼스레 떠올려 그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끼칠까 걱정도 됩니다.
비록 서툰 글이지만 기왕에 읽으셨으면 <태기네 암소 눈물>이 우리 모두의 눈물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입니다.
끝으로 나한테 구박까지 받아가면서 그동안 원고를 찾아 모으느라 애쓴 김용락군과 녹색평론사에 감사드립니다.
1996년 12월 권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