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네가 사는 이야기

일기 - 사월 첫 일요일

야야선미 2010. 4. 5. 21:22

아침설거지를 마치고 걸레질을 한다.

무릎을 꿇고 거실 구석구석을 긴다.

걸레 끝에 햇살이 닿는다.

손등으로 퍼지는 햇살이 반갑다.

쫄로리 놓인 화분마다 뾰족뾰족 나오는

새잎도 어여쁘다.

쪼그리고 앉아 마른 잎을 따내고

저놈은 요리 저놈은 이리로

자리도 옮겨준다.


겨울이 너무 길다 타박했더니

언제 햇살이 이렇게 도타와졌네.


아이들 방에서

땟국 쫄쫄 흐르는 인형을 들고 나온다.

내 손으로 빨아준 지 한참 되었구나.

가루비누를 풀어 바락바락 주무른다.

이젠, 이놈들을 껴안고 깔아뭉개고 기대어 놀던 아이들마저

돌아보지 않는다.

바닥에 놓고 꾹 누른다.

땟국이 시커멓게 빠진다.

바쁘다 피곤하다 늘어져 누웠을 때

내 품 대신 온몸 내어주며 아이들을 받아주던 녀석들.

탈수기를 돌려 물을 빼고

또 헹구고

다시 탈수기를 돌린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땟국물도 어느새 다 빠지고

드디어

물이 말갛다.


뽀득뽀득한 인형을 햇살아래 쫄로리 놓는다.

이 녀석은 영우 서너 살 되던 해 어린이날 선물로 사줬고,

이 녀석은 서인이 두어 살 때 제 사촌이 줬지.

아, 이 녀석은 영우 녀석이 제 동생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안고 들어왔지.

겨우 물기 가신 인형에 얼굴 파묻으니

조잘조잘 종알종알 나이 다른 영우랑 서인이들이

거기 오글오글 앉아있다.


아이들 불러 국수를 삶는다.

하나는 묵은 김치 볶고 하나는 상을 차린다.

김치국수 한 그릇 먹는데 온 식구가 나섰다.

참 오랜만이다.

국물까지 후르륵 다 마시고

창가에 모로 누워 잠깐 꼬박꼬박.

이불 없이도 한잠 쉴 수 있는 걸 보니

봄 맞네.


머리맡에 인형을 당겨 안아본다.

아, 포근해.

아이들 나이만큼 먹은 이놈들,

배가 터지고 귓밥이 너덜거린다.

돋보기를 챙기고

실꾸리를 들고 나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한다.

땟국 벗고

터진 곳까지 기워놓으니

문득 내 바느질 솜씨에 내가 반한다.

돋보기를 빼고 인형에 코를 박는다.

아, 이게 얼마만이냐.

바쁘다

힘들다 

아프다 

지친다

……

살면서 이렇게 고요한 날이 몇 날이나 있었을까?

살아가면서 또 이런 날이 몇 날이나 남았을까?

오는 줄 모르고 곁에 와 앉은 봄날 덕인지

나이 덕인지

오늘은 그저 푸근하기만 하다. (2010.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