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이야기
지난 주에 수학 여행 갔을 때, 속리산에서 막 차가 떠날라는데, 찬섭이가 효자손을 들고 장난을 치고 있어.
"그거 누구 줄라꼬?"
"할머니꺼예요"하고 씨익 웃으면서 효자손을 뒤로 감춰.
"니이 할머니하고 사나?"
"예에."
"좋겠다."
"나도 한번 해보자, 아아 그거 시원하다."
그러면서 등을 긁어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거야.
눈물 안 나오게 할라고 창 밖을 보는데, 찻길 저 쪽으로 어떤 할머니가 한 손을 늘어뜨리고 걸어가는데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 죽겠는거야.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는데 왜 죽겠냐고?
내가 중학생이 되고, 그동안 부산에 계시던 할머니가 오셨어. 몇 해 동안이나 고등학교 다니는 오빠들 새벽밥을 해먹여 보내고,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밥 차려 주시고, 그렇게 고생하시다가 집으로 돌아오신거야. 그런데 집에서 이제 좀 편안히 지내게 되셨는데 그만 덜컥 병이 나셨어. 어른들은 중풍이 왔다고들 했어.어느날 몸살처럼 몸져 누우시더니 그만 왼손과 왼쪽 다리를 못 쓰시고 혼자 일어나 앉지도 못하시는 거야. 아버지가 껴안아 앉혀 놓으면 왼쪽 팔은 추욱 힘없이 늘어지고 다리는 다리대로 옆으로 아무렇게나 늘어져 나딩굴어. 할머니는 겨우 자리를 잡고 앉으시면 오른손으로 왼손을 들어다가 무릎위에 올려놓고, 힘없이 아무렇게나 놓인 왼쪽 다리를 앞으로 쭈욱 끌어다 놓으시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곤 하셨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 멀쩡하던 몸이 하루 아침 아파 누웠다가 깨어나보니 팔이고 다리고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으니. 기가 막힌다고 말할 정도가 아니지.
옆에서 그런 할머니를 보기조차도 민망하고 애가 쓰였어. 아니 애가 쓰인다는 말이 틀렸다. 할머니를 보면 볼 때마다 된장국에 든 뜨거운 두부 덩어리가 목구멍을 훑고 내려가는 것처럼 가슴 가운데가 아프고 왈칵하고 눈물이 났거든. 할머니 옆에 달라붙어 추욱 늘어져있는 할머니 손을 꽉꽉 잡아다가 놓았다가, 다리를 주물러드렸다가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어. 그러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거리다가는 그만 주루룩 쏟아져 내리지.
고개도 못들고 차가운 할머니 손만 꾸욱 잡고 그러구 앉았으면 할머니도 더 꺼억꺼억 우시는거야. 속이라도 시원하게 큰 소리로 울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우는 것도 마음대로 울어지지 않았어. 아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크게 벌린 채로 고개만 뒤로 젖혀지는데, 멀리서 얼핏 보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잘 몰라. 할머니의 그 병은 어찌된 일인지 눈물도 한방울 나오지 않고, 우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거야. 한참을 그렇게 숨만 '하아 하아'소리만 내시다가는 성한 손으로 가슴을 내려치시는데,
"할매예, 그라머 안돼예. 할매예, 예에? 참으이소." 하고 할머니한테 매달려서 말리다가 더럭 겁을 먹고 할머니한테서 떨어져앉곤 했어. 그렇게 소리도 못 내고 울다가 좀더 감정이 북받히면 목줄기에 힘줄이 뚝 불거져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해지거든. 목만 그런게 아니고, 온 얼굴에 핏줄이란 핏줄은 따 팽팽하게 불거져서 할머니가 곧 잘못되실 것 같아 온몸을 부르르 떨리는거야.
나중에는 그냥 마루로 나와 앉아 할머니가 스스로 조용히 추스르고, 대묻은 손수건
을 글어다가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닦을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고 문 밖에서 기다려야 했지. 할머니를 달랜다고 매달릴수록 할머니는 더 우시니까 그냥 물러나오는게 좋겠다 싶었던 거지.
마루 끝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절절 매고 있으면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한테 눈을 부라리면서
"그러이 할매 앞에서 우지마라 안카더나. 그라다가 할매 혈압 더 오르면 안된다 안카더나?"
그렇게 야단을 치시지만 번번이 우리는 할매가 울면 따라 울다가, 우리가 먼저 눈물을 덜구어서 할매를 울리고, 그러다가 할매 목에 핏대가 서고 가슴을 치면서 울면 안절부절 못하고 마루로 뛰쳐나오고 그랬어.
무슨 병이 그렇게 무서운지, 우는 것도 그렇게 맘대로 못 우시지 거기다가 말도 시원하게 하질 못해. 뭐라고 할 말이 있는 듯 한데 입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질 않는거야. 할머니는 식구들한테 뭐라고 이야기를 할려다가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질 않으니 손사래만 내젓다가 또 가슴을 치시곤 했어.
얼른 달려가서 할매 손을 잡아 들고
"할매, 와예? 뭐 드리까예?"
해도 말이 되어 나오질 못하니 도 손수건을 가져다가 입을 틀어막고 우시는거야. 밥상을 앞에 놓고도 종종 그려셨어. 나는 혀가 꼬이고 굳으면 밥도 맘대로 삼키지 못하고 씹지도 못한다는 걸 그때야 알았어. 이가 멀쩡한대도 할머니는 씹지도 못하고 꿀꺽 삼키지도 못하시더라고. 할머니 밥상에는 금방 밥 먹기 시작한 아기들 밥숟가락에 올려주듯이 배추김치를 물에 흔들어 씻서 아주아주 잘게 찢어 놓고, 생선살도 아기들 입에 들어가듯이 가루처럼 부스러 뜨려 놓은 것, 물, 그렇게 밖에 올려 드릴 수가 없었어.
처음에는 물에 말은 밥도 제대로 못 드시더라. 밥을 물에 말아 떠 넣으셔도 물만 넘어가고, 밥알은 그냥 입안에 남아있는 거야. 물이라도 어디 다 넘어가나, 반은 입으로 반은 밖으로 흐르고 그러지. 그러니 아무리 잘게 찢은 김친들 맘대로 드시겠니? 성할 때 생각하고 김치를 한조각 넣으셨다가는 끝내 목에 걸려 캑캑하고 다 내 놓으시는거야. 밥상 앞에서 할머니는 그렇게 속이 상해서 밥상을 밀어내시고, 식구들은 할머니 앞에서 밥을 맛나게 먹는 것 조차 죄스러워서 늘 먹는둥마는둥 했지.
엄마는 '혀가 꼬인데는 감즙이 젤'이라는 말을 듣고 갓나온 감잎을 따다가 찧어서 즙을 해대기 시작했어. 혀가 풀려 말이라도 좀 하시고, 먹는 거라도 좀 드신다면 그게 어디냐고. 날마다 감즙을 해다 할머니한테 갖다 드렸지만, 혀가 꼬인 할머니는 그것도 시원하게 들이킬 수가 있어야지. 떫뜨리 한 맛이 먹기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물 한숟가락도 한 번에 못 넘기시는 분이니 아무리 약이 좋다해도 어디 마실 수가 있어야지. 아기들한테 약 먹이듯이 숟가락에 조금씩 조금씩 떠서 입에 흘려넣어 드려야 했어. 떫고 풋내나는 감즙을 입에 흘려넣어 드릴 때마다 할머니는 찡그리면서 받아 삼키는데 반숟가락을 떠넣으면 절반은 도로 흘러나와.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또 넣어드리고. 반 그릇 쯤되는 감즙을 짜 오면 할머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절반도 안되고 옷이랑 이불은 축축하게 다 젖곤 했어. 그래서 할머니 옷이랑 이불은 감물이 들어서 빨래를 해도 늘 더러워 보였어.
중풍으로 쓰러지신 데는 오리알이 좋다고 해서 이웃동네에까지 다니면서 오리알을 구해와서 해드려도 소용이 없고, 침을 잘 놓는다는 의원을 불러다 침을 아무리 놓아도 할머니병을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어. 영천이라는 곳에 중풍약이 그렇게 용하다고 해도 할머니한테는 효험이 없어.
종쳤다, 다음에 비오면 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