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시내 장터에서 / 권정생
그저께 시내 장터에서 / 권정생
장터 한 구석에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올망졸망 곡식을 담아놓고 앉아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할머니! 그래 중국산 참깨를 국산이라고 팔아도 된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이라도 고발을 하면 할머니는 징역을 살아야 해요.!"
바닥에 앉아 있는 할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아주머니는 계속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시골 할머니들이 가짜 한국산 참깨야 좁쌀, 콩 같은 것을 길가에 놓고 파는 건 거의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나도 몇 번 속은 적이 있어서 잘 안다.
하지만 지금 그 할머니가 낯모르는 아주머니한테 호통을 치며 당하는 것을 보니 역시 언짢아진다. 할머니가 한 짓이 옳은 일이라고 역성을 들어서가 아니다. 할머니는 지금 잘못 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호통을 치고 있는 아주머니는 어제 밤 텔레비전 뉴스나 오늘 아침 신문에서 어느 재벌들과 최고 권력자들이 수십, 수백억씩 저질르고 있는 부정비리를 보고 들었을 것이다.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 때만도 한 사람이 50억 정도의 돈을 뿌렸을 것이라는 소문이다. 모르기는 하지만 지금 호통치는 아주머니도 그런 검은 돈에 이끌려 한 표를 행사했을 수도 잇지 않을까?
그 아주머니는 정말 부정을 용감하게 규탄하는 용감한 시민일까? 약자 앞에만 큰소리 치는 어느 비겁한 법관 같은 경우 아닐까?▣(한국글쓰기연구회《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제 58호.200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