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처럼, 개똥처럼 사는 삶-동화《밥데기 죽데기》쓴 권정생
똥처럼, 개똥처럼 사는 삶
-동화《밥데기 죽데기》쓴 권정생
2000년을 맞아《어린이문학》은 동화《밥데기 죽데기》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똥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목숨들이 화해하는 것을 그린 권정생 선생님을 만났다. 21세기라 해서 새롭게 새롭게 하며 들뜬 게 아니라 40억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시간 속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듣는 이를 숙연하게 하였다. 아래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실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건강은 어떠세요?
40년 아파 온 게 그리 쉽게 낫나요. 약을 먹어서 조금씩은 나아가는 것 같은데 큰 변화는 없어요.
요즘엔 무슨 작품을 생각하고 계세요?
저는 뭘 써야 될지 모르겠어요. 《밥데기 죽데기》쓰면서 저런 걸 좀 써야 되겠지 생각했는데……. 《몽실언니》같은 건 아이들한테 식상하고, 아이들이 깨끗한 물, 물이 깨끗하다는 거 몰라요. IMF가 되면서 《몽실언니》가 배가 더 팔렸거든요. 이상하다, 이거 아이들이 샀을까? 엄마들이 사다 줬을까? 엄마가 사다 줬을 거 같아요. 어떤 엄마는 그래요. 갑자기 어려워졌는데 《몽실언니》가 방부제 역할을 하는 거 같아서 고맙다고, 편지가 왔더라구요. 근데 엄마들이 권해 줬지마는 아이들이 사실 그걸 읽고 어느 정도 자기네들이 소화시켰을까 하는 게 저는 의심스럽거든요. 아무리 어려워졌다고 해도. 모르겠어요. 천 명, 만 명 가운데 한두 명? 가끔 TV에도 굶는 아이들이 나오고 있지만은 보편화되어 있지 않고 옛날처럼 절실하지 않은 거 같아요.
굶어 보지는 않아도, 우주에 가 보지 않아도 영화나 책을 보면 마치 가 본 듯이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이 굶어 보지는 않았어도 문학작품 속에서 공감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럼, 그런 작품 계속 써도 될가요? (웃음) 그, 뭐지요?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일본 만화를 보면 좋은데, 야한 것도 나오고. 한국 거는 계속 착해라 착해라만 나오고 그래 재미가 없다고 그러거든요. (웃음)그렇다고 아이들 기분대로 맞춰서 쓸 수도 없지 않습니까?
《몽실언니》같은 걸 쓸 때 아프거든요. 슬픈 이야기를 쓰면 아파요. 사실. 되게 슬픈 이야기를 쓰면 상쇄되는 부분도 있지만은 …… 아프면서 이래 웃으면은 좀 고통이 덜어져요.《밥데기 죽데기》《밥데기 죽데기》는…… 저는 그래요. 너무 집착인지도 모르겠지마는 통일이 되어야만이 온전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거, 온전히 살 수 있다는 거. 그거만큼은 제가 고수해 오는 거거든요. 그래서 누구는 원수를 갚도록 하지 왜 이랬느냐 하는데 그것도 괜찮지만은 ……. 저, 누구한테 들은 이야긴데, 아마 그 아저씨 이제 죽었을 거래요. 인천에서 살았는데. 그 아저씨가 여덟 살 때인가 일곱 살 때인가 원폭이 ……불이 환하게 이렇답니다. 그 당시 충격을 받아가지고 빛을 평생 보지 못하고 다락방에 숨어서 살았는데 일본에서 와서 취재해 가고 ……. 일본에서 동화 한 편을 보내왔더라구요. 자기가 사는 어느 신문사에 공모를 했는데 당선돼가지고 …… 원폭 이야기더라구요. 우리는 원폭이라고 하면 너무 무심하게 지내왔거든요. 그런 부분도 아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 부분이라 생각해서 쓰다보니까……. 아이들도 자꾸 몽실이처럼 슬픈 이야기만 말고 스물네 시간 웃고 살 수 있는 그런 보람 있는 동화를 써 달래요. (웃음)텔레비전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 하니까 웃고 사는 게 바로 보람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런 편지도 와요.(웃음)사실 저도 그래요. 아이들 괜히 울려가지구 고통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금 웃으면서도 그러나 무언가 문제의식은 줘야겠다 싶어요. 세상에, 그 정치 뭐 그런 거. 서로 싸우고 잘났다 그러고. 똥은 안 그렇잖아요. 그렇죠? 밟아도 누구한테 뭐락하지 않고, 욕해도 뭐락하지 않고.그러나 제 역할 다 하고.
그런데요, 선생님.《밥데기 죽데기》에서 늑대할머니요, 어떻게 해서 그런 인물이 나 왔어요? 저희는 늑대할머니가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저기, 우리 어릴 적에는요, 자연 속에서만 살다 보니까 자연히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늑대 귀신, 여우 귀신……그러고 뭐지요? 질경이 씨앗. 질경이 씨앗이 굉장히 작잖아요? 그걸 한 됫박 모아가지구 그 기름을 짜가자구 불을 피우면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은 세계, 귀신의 세계를 다 볼 수 있다고 해요.
그렇게 해 보셨어요?
그렇게 못 하지요. 질경이 씨앗 한 됫박은 엄청난 거거든요. 한 되에 기름이 얼마나 나겠어요? 늑대할머니니까 가능했지요. 이재복 선생님, 판타지 이야기하는데, 판타지에서는 다 가능하잖아요. 조상들이 판타지라는 거 참 훌륭하게 만들었어요. 영등할머니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딸네미 데리고 내려올 때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가지구 치마가 팔락팔락 아름답게 보이고, 며느리 데리고 올 때는 비가 내리고.(웃음)
일제시대 때 총독부에서 다 사냥을 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걸 좀 확대시켜 가지구 많이 써야 되는데 몸도 아프지요. 동화 쓰는데 자신이 없어져요, 이제는. 세상이 너무 변하고. 기왕 쓰는 거 부랴부랴 마무리짓고…… 마지막에는 제가 써 놓고도 좀 싱겁더라구요. 그래도 똥의 역할이라는 거 좀 소중하다는 거 알았으면 싶은데 그거가지는 모를 거예요. (재밌다, 지금은 그냥 그 정도까지만 느끼겠지요.) 우리 개개인 한 사람이 똥처럼만 생각하면은 이 세상에서 힘으로 어떻게 과시할 사람도 없고, 결국 그건데…….
그걸 쓰면서요 힘이 들었어요. 그 두 권 쓰는데 삼사 년 걸렸거든요. 그거 쓰면서저도 자꾸 울거든요. 울면 몸이 탈진을 하거든요. 아파요. 한 80퍼센트가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어떻게 이름을 좀 바꾸고 조금씩 조금씩 장소도 바꿔 가면서 했는데,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하잖아요? 목숨이 중요하다는 거는……참. 어떨 때는 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생각하면은 아찔하잖아요. 수십 마리, 수억 마리 정자가 가서 한 마리 난자하고 만나서 태어나는데. 그거는 버려 두고라도 내가 참 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대로 그,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말 있지요? 결국은 혼잔데, 귀하다는 건데, 우리 사람들이 왜 서로 고통을 주면서 살아야 하는지. 아무리 아이들한테 읽히는 동화지만 철학은 들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 동화는 아이들한테 벅찹니다. 주제도 그렇고. 그러나 나중에 자라면서 이해할 거예요. 넓은 우주에서 왜 우리가 아웅다웅 살면서 폭력을 쓰느지 모르겠어요. 그냥 곱게 살아도 몇십 년밖에 못 살아요. 우리 우주가 백오십억년? 그거 다 계산도 못 하는 그 아득한 세월에서 한순간 살다 죽는 건데 왜 그러는 건지. 《강아지똥》쓸 때부터 저는 그 문제부터 생각햇는데, 어떻게 뭘 해봐도 해답도 없고 해결도 안 되고 문제는 문제로 남아 있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2000년에 없어졌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게 뭐냐고 하니까 폭력이 없어졌으면 하는 거래요.
제일 싫어하는 건 전쟁이지요. 아주 싫어요.
2000년에도 전쟁은 있겠죠?
지금도 있잖아요. 지금도 그 어디지요? 아프가니스탄하고………파키스탄하고 인도하고는 전쟁을 그만 두자고 해도 앞으로 어찌될 지 모르고, 뭐지요? 북아일랜드하고 영국은 어찌 되는지 모르겠어요. 체첸하고 터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아프리카도 계속 그러고, 저 이디죠? 알제리,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내전이 끊이질 않습니다. 우리도 휴전이라고 하지만…… 상주 어디라든가 임산부가 유산이 되고 할머니가 귀청이 떨어지고 정신 질환이 생기고……. 《점득이네》쓸 때요. 보건소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났어요, 할머니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세요. 만주에서 올 때 소련군이 뒤에서 그렇게 총을 솨 가지고 총 맞고 강물에 빠져서 떠내려갔대요. 경주에서 살다 왔던 그 집 할머니 말이 오 남매하고 부부하고 일곱인데 아버지가 총에 맞아 떠내려가도 건질 수도 없고, 나와가지고는 각자 전부다 뿔뿔이 흩어졌으니……. 우리에게 소련이라는 나라도 우방이 아니고 미국이라는 나라도 우방이 아니고. 일본에게만 피해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강대국들은 어쨋든 우리를 이용하는거지 어떻게 돕겠어요? 소한테 먹이 많이 주는 건 잡아먹기 위해서지 소를 위해 주는 건 아니거든요.그런 걸 생각하면 인간이란게 무서워요. 그런 걸 아이들한테 암말 안 하고 가만 있을 순 없잖아요. 가르쳐줘야지. 사실 제가 동화를 쓰면서 참 어려웠거든요. 분단문제라든가 강대국들의 폭력에 대해서. 60년대만 해도 반공이 얼마나 심했습ㄴ미까? 심지어 교회당 여름 성경 학교 포스터를 붙이는데, '동무들아 나오너라' 이걸 써가지구 붙이는데 순경이 왔어요. 떼라구요.
동무 때문에요?
예. 동무 때문에요. 그 정도로 심했어요. 그러니 이야기도 못 했죠. 제가 그 어떤 사명감까지는 안 가더라도이걸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가지구 그런 이야기들 조금씩 썼지만 적극적으로 사실적으로 쓰긴 참 어려웠어요. 《몽실언니》쓸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쯤은 되겠다 싶었는데 잡지에 10회 나갔는가? 인민군 언니가 쌀 갖다 주고 몽실이 잘 있으라고 이야기 해 주고 거기서 아마 걸렸는거 같애요. 잡지사에서 어떤 기관에 갔어요. 그만 쓰라는데 앞으로 삭제해서 싣겠다고 그랬어요. 그래 그다음에 몽실이하고 인민군 오빠가 대화 좀 하고, 다시 올라오면서 이 다음에 통일되면 우리 집에 찾아오라고 주소를 남겨요. 이게 열 잘 쯤 잘려 나갔더라구요. 그러니 고 다음에 내가 구상했던 것들이 10회 다음부턴 아, 이야기가 왜 이래 됐나 싶더라구요. 나는 청년이 올라가다가 길이 막혀가지구 지리산으로 내려와 빨치산이 되는 과정까지 쓴다고 했는데 못 쓰게 돼 버렸지요. 또 내가 읽어도 그 몽실이가 중간에 어색한 데가 있거든요. '꿈 속의 두 어머니'보면 스무 장밖에 안 돼요. 다른 덴 서른 장씩 되는데, 열 장이 잘려 나갔죠. 그래가지구 분단에 대한 거, 전쟁에 대한 거 절실하게 쓸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됐죠. 그래도, 그 때만 해도 그만큼만 해도 됐다구요.
《점득이네》에는 비행기 폭격하는 것도 나오고 그러던데요.
스님들이 하는 거《해인》이라는 잡지가 있어요. 그거는 불교계에서만 읽히거든요. 이 아래 할머니들이 이틀 밤을 12시까지, 한 할머니는 듣고 다른 할머니는 읽고. 이틀 밤 읽었다고 그러더라구요. 이런 책이 또 없느냐고 왔어요. 암만 봐두 없어가지구. 할머니들은 그 때꺼정 말 못했거든요. 할머니들이 그래요. 인민군들이 참 착했다구. 방아도 찧어 주고, 밭도 매 주고, 아기도 봐 주고 그랬답니다. 보건소에 갔더니 어떤 할머니가 같이 대기실 의자에 앉아가지구 이야기를 하는데, 할머니들은 얘기하면 끝이 없어요. 만주에서 하양 옷을 입고 나오라고 그래가지구 나갔는데 막 폭격을 했다고. 몰랐죠. 왜 그랬는지……. 우연인 줄 알았죠. 일부러 한 줄은 몰라요.
우리 책에, 역사책에 그런 기록에 대한 거 하나도 없잖습니까?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어른들한테 물어봐요. 일제 때 어떻게 했으며…… 어떤 노인들은 그 뭐지요? 큐슈. 탄광에 가서 보름 일 하니까 못 견뎌가지구, 밤중에 도망쳐 나와서 마침 같은 조선족 주막에 갔는데, 어떻게 이렇게 올 수 있느냐 이러면서 옷을 꺼내 줘서 옷을 갈아 입구 그래서 오구 이랬는데, 여기서 불안해 가지구 만주로 갔다가 그래 해방이 돼서 오신 할아버지가 있어요. 구체적으로 힘들 게 산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은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데올로기니 무슨 장치니…… . 그러니 우리 백성들이 산 이야기는 할머니들한테 듣고 기록해 놓을 수밖에 없어요. 그걸 알아야만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교육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1928년에 숯도가를 지을 때 그 할아버지가 12살이었는데 강가에 가서 자갈을 두 짐 지고 오면 1전을 줬대요. 그러니까 스무 짐을 져야만 하루 10전. 10전이면 그 때 쌀이 한 반 되쯤 되죠. 그라고 그 다음에 33년. 그러니까 5년 뒤에 17살 때 다리 공사하는데가 일하니까 품을 받아서 소주 한 병 받으면 딱 맞더래요. 역사책 아무리 봐도 구체적으로 그렇게 나오는 거 하나도 없거든요. 저는요, 그래서 날마다 기회만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어떻게 살아 오셨냐고 묻지요.
정말 기록으로 안 남으면 모르겟어요. 저희들도 들으려 하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20, 30년 지나면 다 모를 거예요, 아마.
얼마 전에 신문에 광고가 나왔는데 신문을 안 봐서 못 받는데, 지식산업사에서 한국체험기 모집한다고. 더 늦으면 안 된다 싶어가지구 시작했나 보던데, 저는 그것이 참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저는 문학은 사회, 역사 떠나서는 무의미할 것까지는 모르겠지마는 그것이 바탕이 안 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은가. 아이들 편에서 살라 하다가도 아이고 안 되지, 낭비하면 안 되지 해요. 우리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한 시대를 잃어 버렸는데 허송세월하면 안 되잖아요.
《밥데기 죽데기》에서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너수를 갚으면 또 우너수 되잖아요. 그것은 계속 악순환만 되고 그래서는 안 되니가. 철조망도 뭐도 다 소용 없어요. 똥처럼만 되면 되거든요. 똥이 무슨 자존심이 있어요. 없거든요. 물론 자존심이 없어도 안 되겠지만 진정한 자존심은 폭력은 안 쓰거든요. 부처님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했지만 그만큼 귀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국의 왕의 자리도 다 버리고, 사랑하는 자식도 버리고 처도 버리고 떠났잖아요? 우리가 관념으로 아는 부처님은 아름답지마는 그 수행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똥처럼 살았어요. 개똥처럼. 하루 보리 알갱이 하나로 살고, 인도 그 허허벌판에서 먹을 것도 없어 소변 받아 먹고 하며 그 힘든 수행을 했어요. 자기 존재를 알기 위해 그랬거든요. 우린 너무 쉽게 살아요. 먹을 거는 배가 고프면은 다 맛있거든요. 그래 조금 적게 먹고. 옷도 그래요. 조금은 춥고, 조금은 또 외로워야 해요, 사람은요. 외로울 모르면 사람 안 된다고 보거든요, 저는요. 너무 외로워도 안 되지만 조금 외롭고…… 그러면서, 저는 그래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하고 양지 쪽에 앉아 가지구 이야기하고 들에 나가서 일하고, 밤에는 별 쳐다보고…… 그런 삶도 괜찮거든요. 구태여 수행하고 몇 년 동안 좌선하고 그러지 않아도 소박하게 살 수 있다고 보거든요. 좀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주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고, 거기까지 모자라는 사람도 좀 얕은 얘기지마는 오순도순 삶의 이야기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신문을 보다가 이제는 안 봐요. 하두 무서우니까. 신문 펼치면 내내 죽은 이야기, 죽이는 이야기, 뉴스도 텔레비전도 안 보고 라디오를 듣지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될는지. 자기 아버지도 죽이고, 자기 자식도 죽이고…….
얼마 있으면 2000년 되잖아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며 사람들은 잔치도 하고 그런대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제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안 할 거 같고, 아무것도 아인거 같은데…… (웃음) 저는 하룻밤 자고 나면 그냥 2000년일 거 같은데요.
사람들이 자꾸 피곤하게 그러거든요. 어디 뭐 그게 꼭 의미 있는 거 아니잖아요? 지구가 생기고부터 계산했더라면 40억년? 자기가 만들어 놓고 거기다가 의미라는 거, 뜻을 부여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만드는 거 같아요. 그 소리 들으며 제가 걱정하는 건 모이면 쓰레기밖에 나오잖아요,모이는 장소마다. 그 환경운동하는 사람들도 모이면 그래 깨끗하게 하는가 싶기도 하고. 문화재 답사하는 사람들 보면 문화재 훼손하고. 가만있는게 좋아요.
식구들이 참 소중하거든요. 자식들, 부모, 남편하고 아내. 싸우지 말고 손을 마주잡고 따뜻한 체온 느끼고 그래 살아야 돼요.
저흰 아이들이 둘 있는데 맨날 얼마나 싸우는지 몰라요.
쪼금 싸우는 건 괜찮아요. (웃음) 저도 엄마한테 고집 피운 적이 있어요. 작은형이 우체통 모양의 도자기 저금통을 사 왔어요. 돈 넣으라고.1전짜리 이래 담다 보니 가득 찼어요. 들어갈 데가 없어요. 그 돈을 꺼내 써야겠는데…… 신문지를 이래 깔아요. 방바닥에 깔아 놓고 몽둥이 갖고 때리니까 파싹 깨지더라구요. 그래 할 수밖에 없어요. 도자기니까. 아휴 내가 죽는 거 같았어요. 내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이니까. 하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해가 빠지도록 울었어요. 도자기 살려내라구요. 내 버려둬도 한참 쭈그리고 앉아서 도자기 도자기, 저금통 저금통 하고 울었어요. 그래 엄마가 저녁을 다 먹고, 가자 그래요, 저금통 사 준다고. 장터에 갔는데, 야시장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없어요. 도자기 가게 다 돌아 다녀도 없어요. 마지막으로 오는데 리어카 고물 파는데 있죠? 거기 보니까 있어요. 딱 하나 똑같은 게. 그래 반가워가지구 사 갔는데, 책상 위에서 내가 보던 그게 아니래요. 그걸 사 가지고 왔는데 정이 안 들지요. 그 안타까움이 몇 년을 갔어요. 내가 성격이 왜 그랬나 싶거든요. 고 나이 때 일본 동경에서 살았거든요. 동경에서 한 팔 년밖에 안 살았어요. 37년에 태어나 가지구 44년도에 왔으니까, 떠났으니까. 아, 7년밖에 안 살았지요.
일본 누나가 하나 있었어요. 저한테 잘 해 주던 누나. 제가 착하니까. 그거 외에는 말썽을 안 부렸어요, 저는. 혼자서 책 보고, 그 누나가 참 좋아했어요. 그 누나가 한번은 눈이 내렸는데 저걸 만들어줬어요. 눈을 뭉쳐 가지구 ㅌㅗ끼를. 빨간 열매 따 가지구눈 요래 박아가지구 수염도 달고 예쁘게 만들어서 줬는데 내가 그걸 안고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면서 잇으니까 녹아가지구요. 나는 이불 속에 있으면 안 녹는 줄 알았거든요. 엄마가 이불 속에 있으면 안 된다고 툇마루 거기 추운데 요래 앉혀 놓으면 안 녹는다고……. 그래 거기 두고 밤에 잠을 잤지요. 아침에 깨자마자 그 곳 먼저 가 봤어요.
그래 있긴 있는데 다 망가졌어요. 덩어리뿐이래요. 그 동안 녹아가지구. 다 망가졌어. 눈덩이 길쭉한 그것뿐이래요. 얼마나 울었는지 어구 내토끼, 내 토끼 그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게 다섯 살이죠. 그게 생각나요. 엄마한테 애 먹인거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그게 생각나요. 아이들이 그래요. 다른 아이들도 그렇죠? 피난을 가는데도요. 다른 중요한 거는 어른들이 넣는데 나는 유리 구슬 자질구레한 것만 챙겨가지구 가다가…… 다 버렸거든요. 버리면서도 그게 아휴, 가면서 다 버렸어요. 차라리 집에 놔 뒀더라면 다 있었을 텐데…… (웃음)그게 아이들한테 참 중요한 거 같아요. 내가 그 때도 착각을 하는게 그게 무생물이 아니고 살아 있는 거로 생각을 해요. 같은 친구처럼요. 그게 살아 있는, 내 곁에 함께 있는 친구지 해요. 그렇거든요. 누구지요? 노벨상 받은 사람.《양철북》에 보면 다섯 살에서 성장을 멈추잖아요? 나도 그런 거 같애요. 아직도 환상 속에 사는 거 같애요. 이러면 될 것 같은데 딴 사람은 안 그러니까 굉장히 안타깝거든요.
쪼그만 화분에 꽃나무가 이래 있었는데 얼마 전에 방에 들여 놓아야 되는데 밖에 둬서 서리 맞아 가지구 죽엇는데 계속 물 주고 있어요. 살아나겟지, 살아나겠지 하면서요. 내년 봄까지 물주면 살아나겠지 그러니 그게 유치한 건지, 참. 사람이 암만 많이 곁에 있어도 안 통하면, 수 천명 곁에 있어도 외로운 거지요. 그지요? 타르코프스키 영화 보면, 열세 살인가 된 아들한테, 그 애 이름이 뭐더라? 죽은 나무에 계속 물을 주니까 죽으 나무가 살아나더라. 너도 그래라 해요. 타르코프스키, 서양 사람도 저런 사람이 있구나 싶더라구요. 자기가 죽는다니까 다들 정신병 걸렸다고 앰블란스 불러다 싣고 가잖아요. 그게 아닌데, 그렇죠? 그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부인도 있고,자식들도 있고, 친구도 다 있는데 그렇게 혼자서 외로운 거죠. 타르코프스키 같은 그런 진정한 예술가가 몇이나 있을까 싶거든요.
아동문학은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될 거 같아요. 더 신중하게 그래야죠. 아이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그랫거든요. 세 살 때 다섯 살 때 들은 이야기가 평생 가는 거예요. 너무 경솔하게 해서도 안 될 것 같고…….
어렸을 때 읽은 동화를 다 커서 생각해 보니까 줄거리가 기억에 남는 거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어떤 하나가 기억에 남고 그게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나서 한참 뒤에도 줄거리를 다 기억할까? 모든 동화가 다 그러지 않을까? 저 같은 경우 강아지똥이 자디잘게 스러지는 게 강하게 남았는데 다른 사람도 무엇인가 하나가 남고 그러지 않을까? 그런 걸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걸 쓰는 건 쉽지 않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억지로 써 봤댔자 그거는 별로 좋은 작품이 안 나와요. 제가 봐도. 제가 쓰고 싶은 거 써야겠다는 의지 가지고 쓰면 그래도 괜찮은 게 나오거든요. 100점 만점에 50점이라도 될 수 잇는 작품. 안 그래요? 그, 문학 작품이나 뭘 봐도 우리가 전부를 기억할 수 없지요? 몇 장면 생각이 나고 가장 감동스러웠던 거 고런 장면 생각나지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스칼렛인가? 그 무, 밭에 있는 거 뽑아가지구 씹으며 그러잖아요? "아무리 그래 봤자 난 살아남을 거다."》 이 앙다물고, 그 한 장면 가지고 그 동안 스칼렛이 나쁜 짓 했던 거 다 용서가 되잖아요? 그 한 장면 때문에. 참, 예술가라든가 문학작품이 감동을 주는 건 그런 거다 싶어요.
한겨울엔 춥지 않으세요?
겨울엔 춥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게 당연한 거니까 견뎌야 하잖아요. 당연히 견뎌야지요. 저는 자동차가 제일 무서워요. 서울 사람들은 어예 사나 싶어요. 맨날 사니까 그것도 익숙해지나 보죠? 자동차 사고로 죽는 건 참으로 억울하잖아요. 전쟁도 아니고, 전염병도 아니고. 케네디 아들이 비행기 타고 가다 죽었는데, 남의 나라지만 30대 청년이 그래 죽는 건 안타깝더라구요. 원자탄 하나 떨어뜨려 몇만 명씩 죽는 거…… .
《어린이문학》보시면서 어떤 생각 하세요? 12월호엔 임길택 선생님 시 실렸어요.
임길택 선생님이 왜 그렇게 죽었나 몰라.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오기 가지고 살아야 했는데……. 그래도 탄광마을에 살아서 임길택 선생님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신 거 같아요. 그런 이야기 다른 사람은 못 하지요.
회원들 각자 자서전 짤막하게라도 써 보라 하지요. 어린 시절, 열 다섯 살 까지. 그런 거부터 시작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일부러 이야기 만들지 않아도……. 친구들하고 싸웠던 이야기, 엄마한테 혼난 이야기 그런 거부터 쓰면 좋을 거 같은데…… . 그냥 써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뭐 보통 말하는 에피소드 그런 이야기 짤막짤막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는 저기 딱지 치던 이야기 자꾸 생각나요. 그런데 저는 잘 알지도 못 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치면 다 넘어가요. 다 따 버렸거든요. 얘가 앵 울며 집에 가더라구요. 나는 겁이 나가지구 그래도 뺏기면 안 되겠다 싶어 집에 가 벽장에 숨어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얘가 엄마를 데리고 왔더라구요. 그래 할 수 없이 나와가지구 반을 갈라 줬어요. 오랫동안 그게 굉장히 아깝더라구요. 왜 그랬는가 몰라요. 우리가 밖에서 놀면 해가 빠져 어두운 줄도 모르잖아요. 엄마가 부르러 막 찾으러 오면 아이들이 따라가고 그랬거든요. 요즘 아이들 불쌍해요. 싸우고지지고 볶아도 같은 또래랑 해야지 컴퓨터 같은 거랑 하니…… 앞으론 그런 걸 좋았던 시절이라고 할지.
저기 있는 91년 3월호 《말》지 좀 보세요. 삼일 문화상에 대해 나왔는데 다 친일했던 사람들이에요. 김기창, 김운모, 안수길, 조연현도 있고. 그래서 제가 그걸 보고 상도 이럴 수가 잇구나 해요. 여기 보면 이주홍 선생도 나와요. 상이라는 게 함부로 받지도 주지도 말아야 한다 싶어요. 전번에 광고 내셨잖아요? 그 어린이문학상이요. 작품이 인제 좀 모일 텐데…….
어린이문학상이 아무래도 상징성이나 방향성이 좀 있어야 할 거 같아요.
방향제시를 하면 쓰는 사람이 자연스럽지 못해가지구……. '어린이문학상'도 제 생각엔 열심히 쓰셔가지구 작품으로 독자들이 읽어 주면 그걸로 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문학》이 새해에는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요?
없어요. 다 잘 만들고 ……완벽한 건 없잖아요. 그런 건 남들한테 묻지 마세요. 자기 개성대로 나름대로 하는 거죠. 이런 거에는 자존심 갖고 해도 돼요.(《어린이문학》2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