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할매를 불러보세요 5 - 할매는 이제 야야 몫이다

야야선미 2010. 9. 30. 17:14

할매는 이제 야야 몫이다

“야야, 춤 연습 좀 했나? 우리는 다 완성했는데.”

“아아니, 아직 좀.”

“낼모레 체육대횐 거는 알제? 나중에 학교 과수원 길에서 맞춰 봐야하는데. 점심시간에는 할 수 있제?”

야야는 깜짝 놀랐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단 말인가. 춤 정한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체육대회가 낼모레로 다가왔다니. 공부 마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가느라 동무들 춤 연습하는 데 한번 끼이지도 못했더니 오늘은 점심시간이라도 짬을 내보라는 말이다.

동무들한테 할매 때문에 화살처럼 날아서 집에 간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할매가 말도 못하고 밥도 못 먹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 마치자마자 집으로 내달아 꼼짝없이 할매 옆에서 지내야한다는 말도 못했다. 동무들은 청소를 안 하고 먼저 내빼다시피 가버려도 슬쩍 넘어가 주었다. 지난번에도 청소당번인 걸 깜박 잊고 집으로 갔는데 다음날 선생님이 아무 말도 않고 지나간 걸 보면 동무들이 슬쩍 덮어 준 덕이었다. 함께 춤 연습을 못해도 별 말없이 자기들끼리 연습했다. 그런다고 야야를 응원 모둠에서 빼지도 않고 오늘 하루라도 연습해서 함께 응원하자는 동무들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3월에 특별활동 모둠을 짤 때 야야도 응원 모둠에 들었다. 두 달에 한 번 학년체육대회를 하니까 응원 모둠도 필요하다고 했다. 노래 좀 부르고 춤 좀 연습해서 체육대회 때 하면 되니까 별로 어려운 것도 없겠다 싶었다. 야야는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고 노래에 자신 있는 것도 아니다. 응원은 다른 모둠하고 달리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하니까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동작이 아주 틀리거나 빼먹지만 않는다면 좀 뻣뻣하더라도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응원 모둠에 신청한 동무들은 넘쳐났다. 그 많은 아이들 가운데서 야야는 키가 커서 응원에 잘 어울린다고 뽑혔다. 사실은 응원 모둠을 이끄는 행자가 야야도 함께 하자고 말하는 바람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할매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야야는 연습을 한 번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말이지만 그까짓 응원 따위는 야야 머리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연습할 춤이 정해졌다고 할 때도 집에서 한다고 말해놓고는 이때까지 연습 한 번 하지 못했다. 할매가 그렇게 아픈데 음악 틀어놓고 춤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우선 야야 스스로 춤추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첫날 연습하던 날 어떤 춤인지 옆에서 잠깐 보고 그만이었다.

‘아 어떡하지? 한 번도 연습 안했다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일 텐데.’

‘내 하나쯤 빠져도 상관없을 건데. 못하겠다고 할까?’

‘그래도 지금까지 기다려준 것만도 얼마나 고맙노? 내 끼워주겠다고 말했던 아이들한테도 미안하고.’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 내가 끼이면 다 망쳐놓는 거 아닐까?’

과수원 길로 들어설 때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심란했다. 아이들은 벌써 노래를 틀어놓고 살랑살랑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야야는 뒷줄에서 아이들을 따라하다가 이내 단념하고 말았다. 첫 날 보았던 춤 하고 많이 달랐다. 따라 하기 어려워서 좀 쉬운 춤사위로 바꾸기도 하고 너무 어려운 건 아예 뺐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응원석에서 하기 마땅찮아서 빼기도 했고. 혼자서 자꾸 틀리니까 야야는 속이 상하기도 하고 동무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앉아서 좀 볼게. 고친 부분 잘 보고 나중에 내 혼자 연습 더 할게.”

나무 밑에 앉아 춤추는 동무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참 복잡하다. 할매가 아픈 지 얼마나 됐다고,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들이랑 너무도 멀어진 것 같았다. 아이들은 분명히 야야를 생각해서 청소 빠지는 것도 모른 척 해주고, 연습에 빠져도 나중에 맞춰보자고 기다려줬는데. 그렇지만 지금 보니 야야 혼자만 다른 세계에 살았던 것 같다. 아무도 따돌리지 않았는데 야야는 왕따가 된 듯했다. 외톨이가 되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오늘밤 하고 내일 밤까지 세워서 연습하면 순서는 알겠지만. 그래도 너거들한테 민폐만 끼치겠다.”

“뒷줄에서 살살 하면 별로 표 안 난다. 그냥 하지.”

“내가 자꾸 틀리고 어색하게 하면 춤 전체를 망치게 되잖아. 그리고 사실 너거들도 알잖아. 내 몸치라는 거. 이틀만에는 도저히 안 된다.”

“야아, 그래도 같이 해야지. 한 번 해보자.”

함께 하자고 붙잡는 동무들을 뒤로 하고 오는데 야야는 자꾸 쓸쓸해진다. 집에 오니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선다.

“야야 인자 오네. 밭에 나간대이.”

야야는 엄마가 미처 하지 않은 말도 다 알아들었다. 들에 한참 못 나갔으니 풀밭인지 콩밭인지도 모르게 쑥쑥할 거다. 감밭에는 쑥대고 망초고 어지럽게 자라서 단감나무 키만큼 자라있을 테지. 논에도 피살이를 한 번도 못했으니 벼 보다는 피가 더 자랐을 거다. 이웃 어른들이 오며가며 조금씩 돌봐주었다지만 날이면 날마다 붙어살다시피 해도 끝이 없는 게 농사일인데, 오며가며 조금씩 돌봐주는 손길만 가지고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얼마 전부터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들일을 나갔다. 엄마 말고 다른 일꾼이 없는 야야네는 농사일도 할매 병구완만큼이나 중요한 일었다. 엄마는 해도 뜨기 전에 나가서 아침밥 할 때가 되면 부랴부랴 들어왔다. 아침밥 해서 식구들 밥 챙겨 먹이고 나면 그 때부터 할매 뒷바라지를 했다. 할매가 벗어낸 바지며, 이불이며, 요며, 걸레며, 수건이며. 물 한 숟가락만 먹어도 흘리니까 수건만도 하루에 몇 장씩 젖어 나왔다. 앉은 자리에서 오줌을 누다보니 오줌 눌 때마다 바지 하나는 적셨다. 그러다가 요강이 기우뚱하기라도 하면 쏟아져서 바닥에 깔린 요까지 젖어버렸다. 할매한테서 나오는 빨랫감이 날마다 한 아름씩 되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긴 빨랫줄을 매었지만 할매 빨래만으로도 빨랫줄은 언제나 넘쳤다. 대문에 들어서면 빨래줄에서 너풀대는 할매 옷가지들이 먼저 눈에 가득 찼다. 거기다 엄마는 온종일 걸레를 들고 있었다.

“아픈 사람 있는 집일수록 깨끗해야 된다.”

방바닥도 틈만 나면 싹싹 닦고 마룻바닥도 작은 꼬쟁이로 틈을 후벼 파내고 쓸고 닦고.

“누가 병문안 왔다가 냄새난다고 코라도 싸쥐면 얼매나 남우세스럽노?”

할매 옷은 아침저녁으로 갈아입혔다.

“어머이 성품이 얼매나 깔끔하고 단정하시노? 손님들한테 얄궂은 거 보이기 싫어하신다.”

“몸이 깨끗해야 등창도 안 생기지. 땀 차고 때 끼이면 금방 등창난다.”

그러면서 수건 적셔서 닦고 물 떠다 씻기고. 누워만 계셔서 늘 헝클어지는 머리도 물빗질을 해가면서 싹싹 빗겨드렸다. 아침나절 내내 그러다가 야야가 학교 마치고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들로 나갔다가 날이 저물면 들어왔다.

“아아아야 아야.”

“예에.”

할매는 바지께로 손을 대고 아래로 끌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요강 가져올게요.”

할매를 일으켜 앉혀 바지를 끌어내리고 야야는 할매 겨드랑이에 팔을 쑥 밀어 넣고 힘껏 안아 올렸다. 다행이 납작한 요강이어서 처음처럼 높이 들어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할매를 안아 올린 채 한 발에 온 힘을 주어 버티면서 다른 발로 요강을 밀어 넣어 요강 위에 앉혀드리고 나면 야야는 씨름을 한바탕 하고 난 것처럼 숨이 찼다. 할매 마음이 오죽 불편할까 싶어 조심하는데도 할 때마다 여전히 숨을 헐떡거렸다. 몸을 뒤로 돌리고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지만 그때마다 할매한테 들켜서 할매를 울렸다.

“아아아야 아야.”

“예에.”

할매는 또 손을 바지께로 가져가다 입을 벌리고 “하아아아”운다.

“할매, 괜찮습니더. 저는 괜찮아예.”

할매 옆에 엎드려 숙제를 하다가 오줌 뉘어드리고, 벌렁 드러누워 책 좀 읽다가 물 떠와서 입에 떠 넣어드리다 보면 긴긴 여름해도 금방 저물었다.

‘아아아, 춤은 인자 다 완성되었겠지?’

다음날 가져갈 책들을 챙겨 넣다 문득 체육대회도 떠오르고 춤 연습을 하던 동무들도 눈에 밟힌다. 야야는 동무들 틈에 혼자만 동동 떠 있는 것 같던 낮에 일이 떠오르니 가슴이 휑해져서 시무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