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를 불러보세요 6 - 아무 말도 못해보고
아무 말도 못해보고
‘왕관 앵무가 죽은 게 어데 내 탓이고? 아침에 갔을 때부터 안 보이던데.’
‘판근이 제기가 걸렸다고 해서 도와준다고 그런 건데.’
‘치이, 내가 쇠그물을 차서 스트레스 받았다면 토끼가 죽어야지. 내가 갔을 때는 토끼밖에 없었는데. 토끼는 멀쩡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야야가 잘못한 건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믿지 않았다. 아니 야야 말을 들어줄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밉다. 정말 밉다. 아무 것도 모르고 ‘판근이요’, ‘야야요’ 하고 일러바치던 아이들이나 그 말만 믿는 선생님이나.
아침에 교실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사육장이라도 한번 둘러보자고 마음먹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할매가 아픈 뒤로 한 동안 사육장은 잊고 살았다. 귀여운 토끼를 보지 못한 것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사육장 청소를 자꾸 빠진 건 동무들한테 폐를 끼친 셈이다.
‘오늘부터는 아침 청소라도 열심히 하자, 토끼랑 앵무랑 얘들은 잘 있겠지?’
그래서 사육장으로 먼저 갔던 것이다. 토끼가 밖으로 나와 폴짝 폴짝 뛰어다녔다. 오랜만에 보니 제법 많이 컸다.
‘저런, 목욕을 시켜줘야 할 판이네. 꼴이 와 저렇노?’
사육장 바닥을 보니 아이들이 던져준 풀이며 나뭇잎들이 물컹하게 문드러져있다. 고약한 냄새마저 코를 찌른다. 여름방학을 앞둔 무더운 날에 한 며칠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사육장 바닥이 퇴비장처럼 되었다.
‘저래 더러우면 짐승들도 병날 건데.’
아침청소가 끝난 건지 아직 시작도 않은 건지 동무들은 없고 판근이만 쇠그물에 달라붙어 용을 쓰고 있다.
“어이, 박판근. 거기서 뭐 하노?”
판근이는 야야네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아 다들 땅꼬마라고 했다. 발끝으로 버티고 매달려서 쭉 뻗은 손끝을 보니 위쪽에 제기가 걸려 있었다. 판근이는 전통놀이 모둠이다.
“내일 체육대회 때 전통놀이도 들어가나? 니도 제기차기에 나갈 거가?”
판근이는 대답은 하는 둥 마는 둥 쇠그물에 붙어서 팔짝팔짝 뛰기만 했다.
“나와 봐라. 키 큰 내가 한 번 도와준다.”
야야도 손을 뻗어보았지만 닿을락말락 애만 태우지 영 잡히지 않았다. 폴짝폴짝 뛰어올라도 잡히지 않았다. 보기보다 꽤 높이 매달려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쇠그물을 발로 쿵 찼다. 제기가 나풀 움직이더니 그대로 매달려있다. 판근이가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달려오면서 쾅 찼다. 아, 그런데 토끼장 안쪽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다. 손을 억지로 밀어 넣고 뻗어보아도 닿을 데가 아니었다. 야야는 둘레를 두리번거려 나무막대를 주워왔다. 막대기를 쇠그물 아래로 밀어넣자 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 달래고 어르듯 겨우겨우 꺼내어 판근이에게 주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 뿐이었다.
“모두 열중 쉬엇! 꼼짝 말고! 정직하게 나오면 용서해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6학년 체육대회 예선을 한다고 운동장에 모두 모였을 때다. 갑자기 2반 선생님이 지휘대 위로 올라가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이고? 뭘 정직하게 나오란 말이고?’
2반 선생님은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고 흘기듯이 아이들을 휘이 둘러보더니 다시 마이크에 대고 쩌렁쩌렁 울리게 말했다.
“오늘 왕관 앵무가 죽었어요. 사육장에서 소리 지르거나 발로 차거나 하면 토끼랑 앵무새가 스트레스 받아 죽는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2반 선생님만 흥분해서 큰 소리를 지르고 다른 반 선생님들은 웃는 건지 햇살에 찡그린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땅바닥만 툭툭 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앵무새는 보지 못했다. 토끼굴 위에 새장도 있고 천정 가운데 횟대를 달아놓아서 웬만하면 보였을 텐데.
‘아까 아침에 갔을 때 토끼만 나와 있더니 앵무새가 죽었던 모양이구나.’
갑자기 다른 반 아이들이 말했다.
“1반에 판근이가요, 발로 차고 쑤시던데요.”
“야야도 그랬는데요.”
아니라고 그거 잘못 본 거라고 말할 새도 없이 야야는 지휘대로 불려 올라갔다. 2반 선생님은 판근이랑 야야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온 학교에 울려 퍼지도록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동물은 어데서 살아야합니까? 산에서 들에서 마음껏 살아야하지요?”
“예에.”
“새들은 또 어디서 살아야죠?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살아야하지요?”
“예에.”
아이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런데 야야 귀에는 그 소리가 마치 야야를 골리는 것처럼 들렸다. 아주 깐족깐족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기 토끼랑 앵무새는 그 자유로운 곳에서 살지도 못하고, 오로지 여러분 공부를 위해서! 여러분 관찰 공부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자유도 못 누리고 저기 좁은 곳에 갇혀서 살고 있단 말이에요. 미안해요? 안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이들이 또 합창하듯 소리쳤다. 정말 어이없었다.
“마음 아파요? 안 아파요?”
“마음 아파요.”
일을 그렇게 몰아가는 선생님이나 앵무새처럼 대답하는 아이들이나 모두 한 통속 같았다.
‘흥, 마음이 아파? 뭐가?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그냥 쿵짝이 잘도 맞네, 흥’
야야는 이제 아주 코웃음을 치며 빈정대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야야도 깜짝 놀랐다.
“저 아기들은 우리 공부를 위해 엄마한테서 떨어져서 멀리까지 팔려왔잖아요. 친구도 없이 엄마도 없이 자기들 자유도 못 누리고 있는 저 가여운 동물들! 불쌍하지요?”
“예에.”
들을수록 기가 찼다.
“그러면 저 아기들을 위해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뭐예요?”
‘아이들이 언제 사육장을 만들어 달라고 했냐고?’
‘흥, 우리가 언제 토끼를 사 달라 했냐고? 그렇게 비싼 왕관 앵무를 사달라고 우리가 조르기라도 했느냐고?’
야야는 문득 자기가 반항하고 대드는 문제아가 되어가는 듯 했다. 2반 선생님 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주 귀한 아기들을 가둬놓고 잡아둔 것도 미안한데, 스트레스는 받지 않게 해 줘야지요. 이 친구들이 발로 차고 괴롭히는 바람에 그 비싼 왕관 앵무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어버렸어요.”
‘칫, 친구? 언제부터 내가 자기 친군데?’
“아침에 아저씨가 땅을 파고 묻어주는데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고렇게 이뿌고 사랑스러운 것을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나 슬펐어요.”
‘얼씨구나, 그래 많이도 슬펐겠다. 그렇게 천사같은 마음으로 사육장 청소라도 한 번 해 줬냐?’
야야는 2반 선생님 뒤에서 아주 빈정대며 노려보았다. 갑자기 2반 선생님이 야야와 판근이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자기 재미있는 것만 생각하고 차고 쑤셔댄단 말이예요? 동물들 입장은 생각을 안 해주고 결국은 죽게 만드는지. 정말 잔인한 사람들이에요.”
야야는 할 말을 잃었다. 가슴이 콱 막혀서 펑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 자기는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고 마음 아름다운 사람인 척 하면서 왜 우리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잔인한 사람으로 만드냐고?’
눈물이 퍽 쏟아졌다. 야야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고개를 치켜들고 눈물이 눈물샘으로 도로 들어가라고 껌벅거렸다. 아이들이 볼까봐 고개를 숙였다가, 눈물을 도로 집어넣으려고 하늘로 치켜들었다가.
‘아이 씨, 울면 안 되는데.’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진짜로 내가 발로 차고 괴롭힌 걸 반성하고 운다고 생각할 거 아니냐고.’
한 번 나오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어깨까지 들썩들썩 말을 듣지 않았다. 절대 울지 않겠다는 마음하고는 아주 딴판으로 울음은 제멋대로 나와 버렸다. 판근이도 주먹을 쥐고 눈을 문대고 있었다.
“이 친구들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우는 것 같으니까 한번만 용서해줘도 되겠어요?”
야야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2반 선생님만 노려보았다. 야야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꺼억꺼억 울자 담임선생님이 내려오라고 했다.
“선생님, 그 다음은 제가 지도할게요.”
‘지도는 무슨! 제대로 알고나 지도하시지?’
그때까지 보고만 있던 담임선생님이 밉고 미웠다. 또 지도하겠다니. 그 말 또한 용서할 수 없었다. 판근이는 2반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꾸벅하고 내려갔다. ‘흥’ 야야는 고개 빳빳이 들고 선생님들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려왔다. 분한 마음만 이글이글 타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선생님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흰 종이를 한 장씩 던져줬다.
“밖에서 많이 생각했을 테니까 나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너거 둘이! 집에 가기 전에 반성문 써서 검사받고 가라.”
야야는 아무 말 없이 반성문을 썼다. 어차피 선생님들은 다 똑같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길게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억울하고 속이 뒤집히지만 꾹 참고 순순히 자백하는 척 했다. 정말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썼다. 빨리빨리 통과 받고 어서 집에 가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써 봐야 결론은 뻔하다.
‘니는 아직도 니 잘못을 모르고 있잖아. 뭘 잘못했는지 다시 생각해봐, 잘못을 알겠으면 그때 다시 써.’
선생님들은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냥 순순히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쓰는 게 훨씬 빨리 끝난다는 걸 야야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건만 왜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동무들 몇몇이 와서 어깨를 잡아주었다. 야야는 그 손길이 고맙다가 한편으론 얄미웠다. 그 때 그 자리에서 함께 보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다 괘씸했다.
‘내가 왜 이런 반성문을 써야 하노? 왜 사람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잔인한 인간으로 몰아붙이고, 그리고 나는 왜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노?’
어서 집에 가야겠다는 마음만 앞서서 통과받기 쉬운 대로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쓰고 있는 꼴이 정말 미치도록 싫었다. 반성문을 집어던지듯이 선생님 책상 위에 놓고는 집으로 내달렸다. 논길을 지나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눈두덩을 다독이고 숨길을 가다듬었다.
‘아, 정말 오늘은 내 혼자 있고 싶다.’
울었던 걸 엄마나 할매가 혹시나 눈치 챌까봐 애써 눈웃음을 지어보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짜증스럽다.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할매나 엄마가 알까봐 조마조마해 하는 것이 기막혔다.
‘이래 억울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해도 식구들한테 말도 못하겠고.’
2반 선생님한테 당한 것도 말도 못하게 분하고, 집에 빨리 오려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반성문을 쓰고 온 것은 더 억울했다. 할매가 아파 집안 분위기도 무거운데 이런 기분 나쁜 일을 집에다 말하기도 싫다. 그렇게 마음먹었는데, 할매 탓도 아니고 엄마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집에 들어서려니 모두에게 마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이지 오늘은 할매 시중이고 뭐고 딱 혼자만 있고 싶다.’
그러나 야야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리 없는 엄마는 여느 때처럼 야야를 보자 바로 들일하러 나갈 채비를 했다. 바쁘게 대문을 나서는 엄마 뒷모습을 보면서 야야는 처음으로 할매 시중드는 일이 귀찮아졌다.
‘아, 이런 날은 내 혼자 쿡 쳐 박혀 있을 데도 없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할매 오줌 뉘어 드리고 바지 갈아입히고 그 앞에서 책 읽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해 드리고. 오늘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야야는 할매가 누워 계신 큰방에서 가장 먼 사랑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넓지도 않은 마당하나 사이에 두고 누웠지만 훨씬 홀가분하다. 야야는 팔베개를 하고 반듯하게 누워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울었던지 아직도 꺽꺽거렸다. 딸꾹질까지 났다. 천정에 바른 벽지가 눈에 들어온다. 동글동글한 무늬가 아래위로 옆으로 똑같이 이어져있다. 저런 걸 사방연속무늬라고 했지?
‘보자, 저게 꽃이야? 뭐야? 어떻게 보면 떡살무늬 같고, 기와 끝에 붙은 막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사랑방 천정을 이렇게 뜯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 진작 알았으면 지난번 숙제할 때 이 그림 그려갔을 건데.’
언젠가 사방연속 무늬가 쓰인 곳 찾아보고 본을 떠 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걸 찾지 못해 쩔쩔 매던 일이 떠올랐다.
‘저 얼룩은 뭐지?’
동생이 오줌을 쌌을 때처럼 제법 넓적하게 얼룩이 있다.
‘비가 샐 턱은 없고, 쥐란 놈들이 우다다다 뛰어다니더니 저 위에서 오줌이라도 쌌나?
문 위에 벽에는 야야가 좋아하는 그림이 걸려 있다. 언젠가 오빠가 들고와서 걸어 두었는데 야야는 저 그림이 참 좋다.
양쪽으로 노란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섰고 길에는 가랑잎이 푹푹 쌓였다. 멀리 긴 나무의자가 하나 있고 그 뒤로 여자인지 남자인지 끝없는 여행길에 올랐다. 그림을 보면 야야는 길을 나서는 것처럼 설레었다. 가랑잎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면서 어디로 갈까? 가다가 저렇게 빈 의자라도 있으면 좀 앉았다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랑잎 위에 누웠다가. 상상만 해도 야야는 마음이 붕붕 뜨고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에는 진짜로 저 길을 따라 어디론가 가 봐야지.
할매랑 멀찌감치 떨어져 누워 이렇게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면서 누웠는데도 한결 마음이 잔잔해진다. 얼마 만에 이렇게 편안하게 혼자 누워 보나 싶다. 제법 숨을 돌리고 ‘아이구 편안하다.’싶으니까 비로소 할매한테 미안해진다.
“어어어야아”
“예에, 갑니더.”
발딱 일어나서 큰방으로 달려가니 할매가 바지를 끌어내리려고 애를 쓴다. 납작 요강을 가져다 놓고 할매를 끌어안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