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를 불러보세요 11 - 큰못에 물을 펀다는데
큰못에 물을 펀다는데
“야야, 니도 갈 거제?”
“어어, 집에 한 번 가보고.”
야야는 동무들한테 분명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갸름한 새털구름이 파란 하늘을 흐르듯이 떠 있다. 눈이 부신다. 그러고 보니 큰못 물을 퍼내고 연을 캘 때가 되긴 됐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갈무리도 얼추 끝이 나면 동네 젊은이들은 날을 잡아 뒷들 큰못으로 모여 못물을 퍼내었다. 올 농사도 끝이 나고 못이 얼기 전에 물고기도 잡고 연도 캐는 것이다. 이런 날이면 야야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 모두 신이 난다.
집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할매를 생각하니 선뜻 대답할 수도 없다. 집으로 가면서도 마음이 복잡하다.
‘오늘 하루만 할매 혼자 있으면 안 될까?’
‘요강 씻어다 옆에 갖다 두면 혼자 눌 수 없을까?’
‘앞집에 안장실 할매 모셔다 드리면 둘이 놀면 될라나?’
집에 오니 할매가 앉은 채로 엉덩이를 밀고 마루 쪽으로 나온다. 지금까지 대문 쪽만 바라보고 기다렸겠지.
“야야, 어여 오니라. 오줌 누자.”
할매는 방문 앞에 밀쳐놓은 납작 요강을 담뱃대로 끌어당기면서 반긴다.
‘치이, 할매는 내 얼굴이 요강으로 보이나. 내만 보면 맨날 오줌 누자 카고.’
엄마는 일하러 갔을 테고, 할매 혼자 오줌도 제대로 못 누고 기다린 걸 뻔히 알면서도 심통이 난다.
말라깽이 야야한테 할매 오줌 누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줌 눌 때 마다 야야랑 할매는 한 덩어리가 되어서 두세 번씩 씨름을 해야 한다. 할매 겨드랑이에 팔을 깊숙이 넣고 깍지를 기고 안아 올리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할매가 온 몸을 오로지 야야한테만 맡기고 그나마 조금 성한 오른손으로 바지를 끌어내릴 대가지 서 있으면 버티고 선 다리가 후덜후덜 떨린다. 할매가 바지를 끌어내릴 동안 한 다리로 버티고 한 발로는 요강을 엉덩이 아래로 딱 맞춰 밀어 넣어야 한다. 그걸 못 버티고 털썩 놓쳐버리는 날은 할매는 바지를 채 끌어내리지도 못하고 요강위에 쿡 떨어진다.
오늘도 또 일을 냈다. 할매를 안아 올리다 숨이 차서 그대로 털썩 놓쳐버렸다.
“아이구, 야야. 궁딩이 다 깨진다. 살살 좀 해 도고”
요강 모서리에 엉덩이를 쿡 박았다.
‘아이, 할마씨. 무거운 걸 어떡하노.’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 할매를 안으려는데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아니 오줌은 이미 엎질러졌다.
“아이구, 야야. 또 밖에다가 쌌다!”
바닥으로 털썩 떨어지면서 할매는 오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싸고 말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할매 요 밑으로 흥건히 흘러들어가는 오줌이 문제다. 야야는 대꾸할 틈도 없이 요강을 밀어 놓고 잽싸게 요를 끌어올린다. 걸레를 가져다 요 밑으로 흘러들어가는 오줌을 닦는다.
“야야, 저게 요 밑에.”
“야야, 여기도 닦아야 되겠다.”
할매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걸레를 잡아끈다. 젖은 바지를 벗겨서 마루로 집어 던지고, 할매를 이리 밀고 저리 밀면서 오줌을 닦아내느라 뭐라 말할 틈도 없다. 조금 늦으면 요 한 채를 통째로 빨아야 된다. 할매 바지는 이미 젖어서 빨랫감 하나 보탰다. 일거리 하나를 더 만들어 놓은 셈이다. 야야는 걸레를 다시 빨아 와서 요 밑이며 앉은 자리며 요강 놓인 자리를 한 번 더 싹싹 닦고 나서야 숨을 돌린다.
“먹은 것도 없는데 오줌은 와 자꾸 매려운지.”
정말 그랬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할매는 어찌나 오줌을 자주 누는지. 많이 누는 것도 아니었다. 요강을 기울여보면 아기 오줌보다 적게 누었다.
“모았다가 한 번에 시원하이 누면 우리 강생이 욕을 안 뵈일낀데. 찔끔찔끔 해대니 우리 강생이 얼매나 욕을 보노.”
“물을 안 먹으면 오줌도 안 눌낀데. 와 자꾸 입이 마르는지.”
물 달라는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할매 괜찮아예. 그래도 야야 물, 야야 오줌 하니까 얼매나 좋아예?”
정말 그랬다. 감물 때문인지 오리알 덕인지 영천 탕약 덕인지 어느 약에 효험을 본 건지 하루하루 할매 말이 좋아진 것이다. 먹는 것도 제법 좋아져서 깻잎 반 장 쯤은 밥숟가락에 얹어 드셨다. 식구들은 그것만 해도 어디냐고 감사했다.
“말을 하면 뭐하노? 일어나 변소도 못 가는 걸.”
할매가 미안한 듯 혼잣말을 하며 흐트러진 요이불을 끌어당겨 만지작거린다.
‘괜히 큰못에 못 가 안달하다가, 마음이 단 데 가 있으니 이러지.’
할매가 미안해하는 걸 보며 야야도 조금 사그라진다.
그러고 보니 요강을 먼저 비우지 않은 게 잘못이다. 엄마처럼 오줌을 비우고 싹싹 씻어 엎어두었다가 들고 갔으면 일이 커지진 않았지. 먼저 눈 오줌이 있는데 한 번 더 누이고 비울 거라고 꾀를 부리다가 일이 크게 벌어진 거다. 깨끗이 비워두었더라면 요강이 엎어져도 이렇게 난리칠 일은 없지.
빨랫줄에서 마른 바지를 걷어 와서 할매한테 입히려다 오늘 큰못에는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팔 하나 다리 하나에만 몸을 맡기고 앉은 채로 엉덩이를 끌고 다니는 할매. 할매 엉덩이가 푸르죽죽 멍이 들고 살이 드문드문 벗겨져 있다. 물수건을 적셔 와서 할매 엉덩이를 살살 닦으면서 혼자 오줌도 못 누는 할매를 두고 놀러갈 마음일랑 싹 접어버렸다.
오줌도 누고 바지도 까슬까슬한 걸로 갈아입으니 한결 개운해졌는지 할매는 요위로 올라가 눕는다. 야야도 한숨을 돌리며 할매 옆에 누웠다.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이 잠깐 사이에 아주 큰일을 해치운 것 같다. 큰못으로 가고 싶어 애가 끓던 것도 누그러지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할매예, 오늘 큰못에 물 펀다는데.”
“세월이 벌써 그리 됐나? 방구석에 누워만 있으니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
“물 퍼내고 연도 캘 건데.”
마루 끝에 연밥 까먹던 것이 눈에 띈다. 며칠 전에 동생이 동무들이랑 큰못에 놀러 가서 따 온 것이다. 야야는 슬그머니 일어나 한쪽에 팽개쳐둔 꼬투리를 들고 왔다. 큰못에 갈 마음은 이미 접었는데도 연 캐는 모습들이 꼬물꼬물 살아난다.
엄마는 연뿌리를 맛있게 잘 삶는다. 삶은 연을 한 입 물면 포슬포슬 부드럽게 씹히는 그 맛. 거미줄처럼 길게 따라 나오는 하얀 실. 연밥도 까먹으면 얼마나 고소할까. 야야는 머리를 한번 크게 흔들어 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쓴다. 편찮은 할매가 있으니 젊은이들이 그냥 지나가지 않고 연 한 바가지는 가져다 줄 거다. 그거면 됐지 뭐.
이미 시들어 짜부라진 꼬투리에는 쭈글하고 자잘한 연밥 몇 개만 깊이 박혀있다. 실하고 통통하게 여문 건 이미 다 빼 먹었다.
“올해는 큰못에 물고기도 많을끼라.”
“연밥을 까 놨다가 연자죽을 해도 별미지. 이파리에다가 밥을 쪄도 별미고.”
“너거 할배가 연자죽을 마이 좋아하셨다.”
할매는 야야 속도 모르고 자꾸 큰못 이야기를 한다. 꼬투리를 마룻바닥에다 탁탁 쳤다. 쭈글하게 덜 여문 연밥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짜부러진 꼬투리는 시꺼멓게 색깔까지 죽어서 참 볼품이 없다.
“그기 그 연밥이 꼭 내 꼴겉네.”
“예?”
“시꺼멓게 짜부라진 기 내하고 똑같다고. 아래께 따왔을 때만 해도 통통하이 먹을 것도 있더마는.”
연밥꼬투리를 밀쳐놓고 야야는 말꼬리를 돌린다.
“할매, 오늘은 안장실 할매 놀러 안 오셨네예?”
“데리고 올 사람이 없는지 기척이 없네.”
“제가 가 볼까예?”
야야는 할매 대답도 듣지 않고 일어섰다. 안장실 할매가 오면 할매는 한 나절은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할매예!”
안장실 할매는 오늘도 마루 끝에 우두커니 앉아 손목에 감긴 염주를 돌리고 있다.
“야야가? 야야가 왔구나. 우리 강생이 학교 갔다 왔는가?”
야야네 할매만큼이나 야야를 반긴다. 안장실 할매는 서너 해 전부터 앞을 못 본다. 누군가 손을 잡고 바깥 마실을 데려다 주지 않으면 이렇게 마루 끝에 앉아 온종일 혼자 염주만 세고 있다.
“다 어데 갔는데예?”
“어른들이사 밥숟가락 놓으면 일 나가기 바쁘제. 이 넘들은 큰못에 물 펀다고 사랑방에 가방 던지기 무섭게 달아났다.”
성아랑 숙이 언니도 큰못에 갔구나. 야야는 안장실 할매를 부축해서 집으로 가면서 마음은 또 큰못으로 막 달려간다.
큰못에는 벌써 바닥이 자작해지도록 물을 퍼냈을 거다. 큰못에 터 잡고 살던 붕어며 가물치며 잉어가 진흙탕을 튕기며 파닥거리겠지. 뻘 속으로 숨으려던 메기란 놈도 장어란 놈도 꿈틀꿈틀할 테고. 이제 어른들은 물고기를 잡느라 뻘밭에 엎드려 기기 시작하겠지. 한쪽에선 물고기를 잡고 한쪽에선 삽이며 곡괭이로 뻘을 팔 거야. 여름내 우산처럼 넓은 잎을 키우고 고운 연꽃을 한껏 뽐내던 연을 캐낼 차례니까. 연 캐는 일이 끝나면 이번에는 뻘밭을 주물러 미꾸라지를 잡을 텐데. 그러면 동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다 달려들어 미꾸라지를 잡겠지? 여름에 도랑물에서 철벅철벅 헌소쿠리로 미꾸라지를 잡을 때하고는 또 맛이 다를 텐데. 잘못 헛디뎌도 발이 푹 빠져서 뻘탕에 고꾸라져 뻘범벅이 된 아이들도 있을 거야. 뒤로 훌러덩 넘어져서 두 손을 허우적거리면 모두들 배를 잡고 까르륵 깔깔 웃어대겠지. 지난해에 야야도 발밑에 미끄덩 밟히는 가물치란 놈한테 놀라 자빠져서 웃음거리가 됐지. 자빠진 김에 가물치란 놈 잡는 척하고 뻘밭을 엉금엉금 기면서 한참동안 뻘을 주물러댔던 생각이 떠오르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안장실 할매가 오자 할매가 어찌나 반기는지. 어제도 저녁때나 되어서야 모셔다 드렸는데, 오늘 또 저렇게 반가울까. 두 할매를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에는 자꾸 큰못가 장면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뻘밭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옆에 동무를 붙잡았다가 둘 셋이 한꺼번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동무들의 뻘탕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따그르르 넘어갈 듯 터지는 웃음소리도 귓가에 쟁쟁거린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달려가고 싶다.
그렇지만 야야는 이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혼자서 오줌도 제대로 못 누는 할매. 앞이 안 보여서 혼자 변소 간에도 못가는 안장실 할매. 야야는 두 할매를 보면서 한숨만 길게 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안장실 할매는 여느 때처럼 근동 할매집 사랑방에서 듣고 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야야 할매가 맞장구를 치면서 듣는다. 한참동안 할매들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문 밖 구경을 못하는 야야 할매한테는 안장실 할매가 온 동네 소식통이다. 안장실 할매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 할매는 마치 훌훌 털고 일어나서 동네 마실이도 다니는 듯 꿈꾸는 얼굴이 되었다.
사랑방에 누워 그림을 보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숙제를 하다가 밖이 너무나 조용해서 야야는 놀랜 듯 밖으로 뛰어나왔다. 두 할매가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다. 할매의 흩어진 머리카락이며 힘없이 축 늘어진 할매 손을 보니 마음이 짠해진다. 할매 손을 끌어다 배 위로 예쁘게 올려주고, 이불도 끌어다 살짝 덮었다. 마루 끝에 밀쳐둔 연밥 꼬투리를 보자 또 길게 한숨이 나왔다. 이젠 연도 이미 다 캐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