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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이 독후감- 18편의 색다른 공상 단편(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를 읽고)

야야선미 2010. 8. 23. 17:13

 18편의 색다른 공상 단편(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를 읽고) - 김서인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어 보았다. 사실, 중 1때 읽으려다가 조금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한 책이었다. 하지만 2년 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이 책을 입이 닳도록 추천하는 지 단편 1개를 읽고서 바로 깨달았다. 평소 공상 소설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인데도, 이 책은 평소 좋아하는 분야의 책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워 술술 읽혀졌다.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감탄이라고 할까?

몇몇 글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하면서 분명 그 글이 있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임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설득당하게 만들었다. 공상 소설의 재미를 알게 해준 책이라고나 할까..? 해리포터와 같은 상상과는 다른 논리적인 미래 공상에 대한 글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이 책에 실린 단편 18편은 모두 흥미롭고 참신한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은 미래에 사람 행세를 하는 기계들과 함께 사는 남자 뤽의 이야기다. 모두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 셔츠는 스스로 단추를 잠그고, 슬리퍼는 알아서 걸어가고, 커피잔은 자신에게 담긴 커피를 권하며 대화를 건넨다. 막연히 생각하면 '쓸쓸하지도 않고 편하고 좋겠는데?' 싶지만, 인간이 기계에 의존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재미있을까 싶다.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대화를 하는 기계들이 홀로 살아가는 독신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는 기계에 불과하다. 대화를 한다고 해서 그 대화하는 상대방이 정말 나를 이해하고 생각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프로그램에 넣어둔 데이터 대로 말을 하는 것이다. 요즘 한창 나오는 말하는 전기 밥솥, 세탁기 등이 떠올랐다. 어쩌면 정말 이 소설처럼 그런 사람 행세를 하는 기계들이 머지않아 나올 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이라면 '우와..!'하고 마쳤을 일이지만, 왠지 위에서 처럼 한 번 생각해 보고 나니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 뤽이 도둑에 의해 인공 심장이 꺼내지며 인조 인간이란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기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옛 물건들을 그리워 하는 인간 조차도 멸종해 버리고 모두가 기계, 인조 인간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반전에서 놀라면서도 '기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머지않아 정말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울 정도로 공감가는 상상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조종'의 시작은 형사 프티롤랭의 왼손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다. 의사의 진단은 항상 억압받던 우뇌의 무의식이 어느 순간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표출을 하고, 그 표출이 왼손을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순 거짓말에 허무맹랑한 진단이다. 하지만 묘하게 설득당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그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표출되지 않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게 독립적으로 되어버린 왼손을, 프티롤랭은 처음에 강경하게 왼손을 제지한다. 하지만 왼손의 행동은 더욱 거칠어지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결국 그는 왼손과 타협을 하고 왼손을 존중하며 살아간다.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참 어떻게 보면 공감이 간다고 할까? 특히 의사의 진단 부분이 정말 의사처럼 아니 의사보다도 더 논리적이여서 수긍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도 없이 느끼는 것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터무니 없는 상상으로 사람을 설득시키는 놀라운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황혼의 반란'은 너무 슬픈 이야기였다. 사회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노인들이 세금이나 축내며 민폐나 끼치며 살아가는 사회 악으로 몰리게 된다.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젊은 이들에게서 버림받고 CDPD 노인 수용소에 버려진다. 프레드라는 노인 역시 결국 자식에게 버림받고 수용소에게 버려질 상황에 처해있다. 그 상황에서 그는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해 수용소행 버스 운전석에 올라 버스를 산 속 동굴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들은 점차 그 삶에 익숙해져가며 젊은이들과의 대립에 맞서 싸운다.

처음에 읽으면서 '어떻게 자신들의 부모에게 그렇게 매장이나 다름 없는 짓을 할 수가 있지?'하며 젊은이들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들에게도 부모가 있고 자신들도 늙어서 노인들처럼 부모가 될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일들을 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사회가 피폐해져도 그럴려고 싶었다.

하지만 곧 요즘의 뉴스를 떠올렸다. 이미 이런 조짐의 사건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부모를 때리고, 버리고. 너무 이기적이여서 슬프고 가슴아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더욱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은 그런 말도 안되고 있어서도 안 될 글 속의 상황이 왠지 우리 둘레에서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공감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서 피부로 직접 와닿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이기심이나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하늘을 치솟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이기심이 충분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낼 것 같아 너무 슬프다.


 '그 주인에 그 사자'는 미래에 사는 사람들이 개성있는, 친구 같은, 강한 애완 동물을 찾으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애완동물을 만들어내는 한 회사가 사자와 개를 합성하여 애완동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인기가 폭주했고 회사는 더욱 소비자들의 심리에 맞춰 더 강하고 개성있는 애완동물을 만들다가 사자를 길들여서 판매한다.

하지만 백수의 왕 사자, 그 야성이 어디 가겠는가. 도심에서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심지어 사람까지 해친다. 하지만 애완 사자는 이미 유행이 되어 법무부는 물론 대통령까지도 애완 사자를 기르고 있다. 피해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상해를 입혀도 가벼운 벌금형 정도로 지나간다. 하지만 사자들은 갈수록 본성을 찾아가면서 피해가 심해지고, 유행은 빨리 변화하여 바뀌는 법. 회사는 다리를 덮개로 덮어 독을 막은 전갈 목걸이을 팔고, 지겨워져도 처리를 하지 못해 길러지던 애완 사자는 결국 전갈의 독에 죽는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좀 잔인하기도 했고 씁쓸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이기심을 애완 사자라는 소재로 표현했다고 할까?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완 동물이라고 해서 남에게 주는 피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도심에 사자와 함께 활주한다. 남이 사자에게 공격 당하여 다치건 말건 자신에겐 듬직한 애완 동물이란 거다. 하지만 결국 전갈이라는 새로운 애완 동물이 유행하자 사자는 정갈의 독으로 죽여버리고. 야생에 가만히 냅뒀으면 저 혼자 잘 살았을 사자를 굳이 사람들 속으로 데려 왔다가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사자가 도시를 활주하며 괴롭히는 것도 무섭지만 그 사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애완 동물로 키우며 남의 피해는 생각도 안하다가 유행이 지났다고 한순간 죽여버리는 사람들이 더 무서웠다.


 진지한 이야기 위주로 몇 개를 썼지만, 진지한 이야기 외에도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냄새'는 파리 도시 한 복판에 커다란 냄새나는 운석이 떨어져 그것의 냄새를 처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노력하여 온갖 것을 이용해 그것을 막았더니 배설물을 떨어트린 외계인이 그것을 다시 가져와 보석이라고 다른 외계인에게 속여파는 이야기다. 이 글의 반전! 정말 기막히고 웃겼다. 참 머리 좋은 외계인인 것 같다.

또 하나의 대단한 반전을 가진 이야기는 '암흑'이라는 글인데, 카미유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세계에 해가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암흑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말로는 제 3차 세계대전 중 핵 미사일 하나가 태양으로 잘못 날아가 태양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밖으로 나가 지팡이 하나 만을 의지한 채 길을 걷는다. 이미 황폐해진 거리를 느끼며 외계물체들 사이를 헤쳐 나간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이가 다가와 그에게 말한다. "할아버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셨어요." 세상이 암흑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세상만 암흑으로 변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정말, '어느 진지한 할아버지라면 혹시 이러시지 않으실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는, 외계인의 시선으로 본 우리의 모습을 묘사한 글인데 너무 웃겨서 읽는 내내 낄낄거리면서 보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물론 '나무' 한 권을 읽은 나로써 평가 할 만한 것은 없지만, 마지막 놀라운 반전과 무섭도록 공감가게 하는 설득력 높은 상상력이 묘미인 것 같다. 특징이라고 해야 하나? 반전을 보며 깜짝 놀라는 재미, 설득 당하는 재미에 한 권을 웃으며, 때론 진지하게 생각하며 금세 읽었다. 생각할 거리도 많이 주면서 유머러스한 글들이 너무 좋았다.


 앞에서 말했다 시피, 이 책은 중 1때 읽으려다 포기했던 책이다. 그 때는 내용이 어려워 앞부분 조금 읽다가 포기해 버렸다. 그 때는 재미있는 줄  몰랐는데, 2년 새에 생각의 폭이 넓어진 것인지 이번에는 읽으니 너무 재밌었다. 두세 편 쯤 이해 안 가는 글이 있었는데 다시 몇 년 뒤에 읽으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평상시에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는 사람들을 보며 '또 읽는 건데 재미가 있으려구..'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전보다 이해가 쉽고 상상이 더 잘 가 더욱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