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1. 거울
‘글쓰기 지도 사례 발표라 ……’
컴퓨터를 켜고 골똘히 앉았다가 머리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고쳐 앉습니다. 그러나 또 한참 동안 넋 놓고 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컴퓨터를 끄고 또쓸종이를 가져다놓고 연필을 꺼내듭니다. 다시 정신 차리고 보면 별 뜻도 통하지 않는 문장만 몇 줄. 도무지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덮어 두었다가 사나흘 지나고 다시 펴고 앉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실 이야기를 펼쳐놓고 읽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온통 부끄러운 모습들만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스무 해 넘도록 아이들과 함께 하고, 이제 그 학교를 그만두고 한 걸음 물러나서 보니 참 한심하고 부끄러운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겨울연수 자리에서 사례 발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 털어놓고 고백하고 스스로 매를 맞아야할 꼴입니다.
다 덮고 그 동안 써 놓은 교실 이야기, 글쓰기 수업 일기에서 몇 편 골라 그대로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 그러면 끝 날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마감날이 더 미룰 수 없을 만큼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속앓이는 그치지 않습니다. 한번 뒤집어 놓으니 잔잔해질 줄 모르고 가슴을 할퀴고 헤집습니다. 괜스레 스무 해 넘는 세월을 돌아보겠다고, 내 삶의 중심에 글쓰기를 두고 살았던 지난 세월을 되짚어 보겠다고 거창하게 마음먹었던 것이 크나큰 불씨가 되어버렸습니다.
교육대학 다닐 때 처음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고 선생님한테 푹 빠졌습니다. 그 뒤로 선생님 이름이 들어간 책이란 책은 죄다 사 모으고, 글쓰기회 선생님들을 만나고…….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공부. 더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함께한 글쓰기 공부가 이만큼 버티고 살게 해 준 힘이었고 스승이었고 양식이었다는 것을 뜨겁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걸 알면 알수록 내 살아온 꼴이 부끄럽기만 하고요. 이렇게 되지도 않는 변명같은 걸 늘어놓다보니 나는 늘 이랬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글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나 내가 쓴 글에서 보이는 모습이나. 하나같이 그렇게 모자라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아이들한테 화를 내었다가 ‘어어, 좀 참으면 되겠구마는.’ 하는 아이들의 글을 읽고 얼마나 부끄러워했던지. 별 것 아닌 걸로 흥분하고 들떠서 동네방네 떠들었다가 저녁에 교실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 민망해져서 그만 덮어버리고.
공부하는데 경령이가 내 눈을 피해가면서 쪽지를 돌린다.
‘아, 요놈 봐라. ᄀ ᄂ도 모르는 놈 키아놨더마는 인자 쪽지까지 돌려?’
“박경령, 그거 머꼬? 빨리 가 온나.”
눈치만 살살 보고 머뭇거린다. 목에 힘을 더 주고 애써 화난 목소리를 만들었다.
“어서!”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들고 나왔다.
“어 덕재야 딱찌 한개만 도 어?
안 조은 거또된다 어?
한개만 도 어? 경령 올림”
ᄀ ᄂ도 모르는 놈 가르친 보람이 있지?
공부 안하고 쪽지를 돌린 녀석이 이래 이뻐서 우야꼬? (2004년, 1학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랬습니다. 그때는 쪽지 돌리는 것까지도 이뻤습니다. 저 하고 싶은 말을 이리 써서 보낼 줄 안다는 것이 고맙고 이뻤지요. 그런데 올해 다시 만나는 4학년 아이들한테는 공부시간에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버럭버럭 냅니다. 남은 시간을 야단만 치다가 결국 공부도 못하고 쉬는 시간이 되어 버렸던 적이 몇 번이나 됩니다. 아이들은 몇 해 전에도 지금도 쪽지를 돌리는데, 그 아이들을 보는 내가 시시때때로 달라진 것이지요.
이거는 정말 하고 싶어서 씁니다. 사실은 혼날까싶어서 안할라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썼다고 혼내면 치사합니다. 나는 우리 선생님이 치사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입니다. 근데 겁이 좀 나긴 겁이 납니다. 그래서 딱 각오하고 씁니다.
선생님은 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합니까? 전에는 글씨를 좀 못 써도 아무말 안하고 지나갑니다. 또 체육시간에 줄 안 서고 떠들고 있어도 아무말 안하고 그냥 체조하자하고 줄넘기 하자하고 체육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숙제 좀 안 해오면 다음에는 꼭 해야된다 하고 봐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은 안 봐주는 겁니까? 나는 그동안 내공부도 잘 해왔습니다. 오랜만에 한번 안 해왔는데 내공부 안 해온 사람 모두다 혼내고. 진짜 억울합니다. 체육시간에도 아이들이 맨날 떠들고 뛰어다니고 놀아도 아무말 안하더니 왜 오늘은 나오라고 해서 혼내는 겁니까? 한번 봐 주었으면 계속 그렇게 해야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니까 헷갈리는 거 아닙니까? 나는 너무 억울합니다. 앞으로 안 봐줄라면 끝까지 안봐주고, 봐 줄라면 끝까지 봐주세요. 그래야 나도 그렇게 할 것 아닙니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안 참고 다 했습니다. 내가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그랬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다 해라고 했으니까 혼 안낼거지요? 왜냐하면 오늘 선생님 얼굴이 좀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매로 때리지도 않고 욕설도 안했는데도 무서웠습니다. 한번더 부탁하겠습니다. 봐줄라하면 끝까지 봐주고 안봐줄라면 끝까지 안봐주고 이랬다가 저랬다가는 하지 마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10. 10. 19. 장효천)
옛날에는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 약속을 참 많이도 정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들도 약속이 아니라 제 맘대로 정한 규칙이었지요. 아이들과 마음을 모아서 함께 정했을 때 약속이 되는 거지. 3월에 처음 만나 언제 서로의 뜻을 이야기하고 합의한 적이 있느냐 말입니다. 그래놓고 틈틈이 아이들을 들들 볶았지요. 약속을 왜 안 지키느냐고. 아이들을 달라지게 할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보는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깨우쳐 주는 것도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석우가 일기장을 들고 왔다.
“웬일이니? 오늘은 석우가 일기장을 일등으로 들고 왔네!”
“빨리 읽어야 된단 말이에요. 이거부터 보세요.”
석우가 일기장을 펴주고 들어가더니 읽나 안 읽나 감시하듯 턱 받치고 앉아 올려다본다.
<선생님, 아 진짜 왜 그렇게 성질이 급해요? 한숨 돌리고 말하라고 한 사람이 선생님이면서. 아까는 경대가 잘못 한 거 아니거든요. 귀현이가 즐생 없다고 말해서 경대가 찾아줄라고 그랬고요. 가방도 다 보고 사물함도 보니까 없었거든요. 또 책상을 찾아보는데 거기에 학습지 꾸개진 것이 너무 많아서 경대가 갖다버리라고 해서 귀현이가 안버렸습니다. 그래서 경대가 짜증을 내니까 귀현이가 한 대 올렸습니다. 근데 선생님은 경대가 종이꾸겨서 쓰레기통에 버린 줄 알고 혼냈잖아요. 아 진짜 왜 말을 안 들어보고 화를 냈어요. 내일 아침에 또 미안하다 할 거죠? 아 진짜 그러니까 성질 좀 죽였으면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안 해도 되잖아요.>
얼굴이 화끈화끈해서 어디 책상 밑에라도 숨고 싶었다. 석우를 슬쩍 봤더니 빙글빙글 웃고 있다. 제 글을 끝까지 다 읽어주어서 만족한 얼굴이다. 아, 진짜. 그 자리에서 녹아져 없어져버리고 싶었다. (2006년 1학년 아이들과 함께)
<........나는 우리 형님아가 다른 형님아들하고 똑같이 되면 좋겠다. 그래도 내한테 잘 해 줄 때도 많다. 아빠가 밤에 일 나가고, 엄마도 밤에 늦게 오면 나는 형님하고 있으면 안 무섭다. 그런데 나는 동생이니까 형님을 잘 도우면서 지내야 된다. 그런데 내가 자꾸 양보를 안해서 형님아가 화가 많이 난다. 나는 오늘 우리 선생님이 참 고마웠다. 우리 형님아를 안 때리고 말로만 혼내고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형님이 우리 교실에 오면 마음이 조마조마한다. 선생님한테 혼나면 형님아가 불쌍하고 형님아가 선생님 화나게 하면 선생님한테 미안하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다 양보할 것이다. 그러면 형님아가 우리 교실에 안 올 것이다.>
아직 어려도 한참 어린 일학년짜리 우리 재민이는 이렇게 정서장애가 있는 형을, 그래서 조금 남다른 형을 제 나름대로 받아들이면서 자라고 있다. 아니 어쩌면 언제까지나 이런 형을 끌어안고 제 속을 끓이면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한 달에 한 두 번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한 해를 보냈건만 나는 아직도 용민이를 끌어안고 달랠 줄을 모르고 그냥 똑같이 싸우는 날이 많다. 말만 선생이지 오늘도 나는 일학년 동무, 우리 재민이한테서 고개 숙여 배운다. (2004년 1학년 아이들과 함께)
그랬습니다. 아이들에게 화를 버럭 버럭 내고 다음날이면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 빌고 얼마 못 가 또 다시 그러고. 그런 지긋지긋한 짓을 스무 해 넘게 되풀이하고 살았습니다. 참 피곤한 짓이지요.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늘 내가 불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장 화를 버럭버럭 내고 벌을 준다고 금세 달라지지도 않는데. 그리고 조금 더 들여다보면 내가 정해 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내 기분에 거슬렸다고, 또는 내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서 화를 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 꼴은 언제나 아이들한테서 되비춰져서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글쓰기는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습니다. 아이들 자라는 모습과 아이들 글, 함께 하는 글쓰기 동무들. 그런 것들에 내가 고스란히 비춰지는 거울. 그 거울을 들여다보며 민망하고 부끄러운 모습, 흐트러지고 망가진 모습 다시 가다듬고 아이들 앞에 서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부끄러운 것 하나. 나는 참 어쩔 수 없는 자랑쟁이였던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모둠살이 규칙에서 ‘가난하게 이름없이’ 살라고 하셨지만 저는 참 많이 떠벌리고 살았습니다. 아이들하고 글쓰기 공부 몇 시간하고 좋은 글 나왔다고 떠벌리고. 아이들하고 한 몇 번 해보고 마치 혼자만 이룬 것인 양 자랑하고. 세상에 나 혼자 그런 성과를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 드러내어 떠벌려서 제대로 알맹이 없는 껍데기 삶을 살았던 건 아닌가. 입 다물고 묵묵히 사는 일부터 제대로 했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