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꾸는 글쓰기

그러나 스스로 훌륭히 자라는 아이들(2)

야야선미 2010. 12. 26. 23:30

 

2. 그러나 스스로 훌륭히 자라는 아이들


<둘레에도 관심과 눈길을 주면서 조금 더 넓은 세계로>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순간일지라도 지금 여기에 마음을 주고 글을 쓰면서 둘레를 보는 눈도 깊어져가는 걸 봅니다. 일상을 벗어나 자기 세계를 조금씩 넓혀나가는 모습도 대견합니다. 글을 쓰고 나누면서 자기 이야기, 자기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의 모습에서 스스로 배우는 것도 생기는 듯합니다. 조금씩 관심을 넓혀 세계를 보는 눈도 깊고 넓어지겠지요.

우리 둘레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나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아주 도움 될 만한 건 역시나 제 동무가 쓴 글이었습니다. 금요일마다 내주는 일주일 공부계획표 뒤에다 우리 반 아이들 글을 꼭꼭 두 편씩 실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동무들과 나눈 이야기와 학부모님들이 읽을 때 도움될 만한 이야기도 짧게 정리해서. 날이 갈수록 시간표보다는 아이들 글을 먼저 읽게 된다는 말들이 자주 들렸습니다. 기뻤습니다.

이웃과 세계관에 대해 심어주고 싶을 때는 이제 따로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교과서 공부를 하면서 관련된 주제가 나올 때 놓치지 않고 조금만 더 계획을 짜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따로 글쓰기 공부 계획을 세워놓아야 교과서 공부 따라가기도 바쁜 요즘에는 부담이 더 늘어날 뿐이었거든요. 국어,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바른생활, 또는 사회나 도덕 이렇게 보면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단원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묶어 시간을 짜면 글쓰기 공부할 시간들이 충분히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둘레에서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찾아보자고 했을 때 아이들은 온마음을 다해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스쳐 지나다니던 곳, 언뜻 보고 지나쳤던 이웃들에게도 관심어린 눈길로 한 번 더 볼 수 있었겠지요. 길가에서 매실을 파는 할머니, 박스를 주워 모아 파는 할머니, 한쪽 팔이 없는 아저씨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집에 가고 있었다. 집에 갈 때는 민정이하고 세진이랑 같이 간다. 미니슈퍼 앞에 길에서 할머니가 매실을 팔고 있다. 2층에 할머니가 매실을 샀다. 그런데 자가용이 비키라고 빵빵 시끄럽게 했다.

할머니는 놀래서 매실을 어디에 담았다. 자가용 아저씨는 또 빵빵했다. 할머니는 매실을 담는데 자꾸 길에 흘린다. 아저씨가 어이씨 빨리 안 비키고 뭐하오 욕을 한다. 할머니는 손을 자꾸 벌벌벌 했다. 나도 무섭겠다.

내 앞에 매실이 한 개 왔다. 주워서 할머니 그게 넣었다. 민정이도 담았다. 세진이도 한 몇 개 주웠다. 나는 한 여섯 개 밖에 못 담았다.

아저씨가 나쁜다. 나쁜 아저씨가 차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겠다. 그 할머니는 매실을 다 팔았을까요? 많이 흘리서 걱정된다. 매실을 더 많이 주웠으면 좋겠다. (김지석, 2007년 5월 25일 금, 조금 더워요. 물을 자꾸 먹었어요.)


우리 사천상회 가게 아저씨는 팔 한 개가 없어요. 한 팔로 박스를 들고 가요. 또 한 팔로 자전거 운전해요. 배달도 잘해요. 또 아이들이 가면 ‘학교 갔다왔나?' 하면서 웃서요. 사탕도 줄 때도 있었요. 아저씨는 팔 한 개밖게 업서서 짜증날건데 맨날맨날 웃습니다. 나는 산타가 되면 가게 아저씨한테 팔 한 개를 선물하고 싶어요. (진주 2007. 12..)


이층할머니는 박스를 모았어. 그거를 가지고 팔면 돈을 주거든. 이층할머니는 돈을  다 모아스면 진영이 옷 사주거든. 학원에 보내주어. 날마다 저 먼 데도 가서 박스를 주워오셔요. 힘이 들어도 해. 비올때는 박스가 물에 젖어서 더퍼주더라. 내는 비 맞아도 괜찮다했어. 비 맞으면 감기 들건데 박스만 덮어조서. 나는 올해 가장 훌륭한 사람은 이층할머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산타가 될 수 있다면 이층할머니집에 진영이 아빠가 돌아오게 하겠어요. 진영이 아빠가 와서 돈을 벌이면 할머니는 박스 모으로 안 가도 되요. 할머니가 비올때는 쉬면 좋겠어요. (은지 2007. 12.)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추운대서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쉬지안고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소한테 밥을 주시고 할머니는 고추를 따고 파도 캐십니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와서 옷가라 입고 나와서 또 일을 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어디 멀리가서 밤에 집에 들어옵니다. 그레서 내가 만약에 산타라면 할머니를 쉬게 할 것입니다. (지현 2007. 12..)


농심수퍼 할머니는 허리도 쑤신데도 가게를 지키십니다. 손님이 뭘 달라면 뭘 줍니다. 할머니는 허리도 아픈데 지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잘 안나옵니다. 할머니는 가게가 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법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몸이 쑤셔서 일을 잘 못 합니다. 그래도 아픈데도 일어나서 일을 잘 합니다. 할머니 친구분이 오면 할머니는 밀크커피를 주십니다. 저는 할머니가 몸이 쑤신데도 일을 하는게 참 훌륭합니다. 저는 만약에 산타가 되면 몸이 하나도 안 쑤시는 약을 선물로 드릴 겁니다. (지연 2007. 12.)


…… “와아, 많네.”

“우리 억수로 잘 찾았지요?”

“응, 대단하다. 선생님이 주신 선물이 참 많지? 사실은 이것보다 훨씬 많아.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아직 사오지 못한 것도 있고 형아들이 빌려간 것도 아마 좀 될 걸.”

“우리 이거 읽어도 되요?”

“그럼, 오늘은 주인공 권정생 선생님 날로 하기로 했으니까 이 책 읽고 싶은 사람 다 읽으면 돼.”

욕심을 부리는 녀석은 두 권을, 남주는 글자도 잘 모르면서 글자가 제일 많은 《몽실언니를 들고 간다. 《또야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오소리네 꽃밭》, 《황소아저씨》, 《비나리 달이네집》. 역시 일학년은 그림책을 많이 가져간다. 《우리들의 하느님》을 보던 주난이는 글이 많아서 못 읽겠다고 도로 가지고 온다. 《몽실 언니》를 붙잡고 읽지도 못하는 남주를 데리고 《강아지똥》을 읽어주는데 아이들이 모두 모여든다. 전에 교실에서 다 함께 읽었던 책이건만 모두들 재미난 얼굴로 듣는다. 벌서 넷째 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집에 가서 읽고 와도 돼요?”

그래, 집에서 읽고 식구들한테 소개해 주고 오기. 오늘 숙제는 그거다.

“독서공책에 없는 것도 한줄 독후감에 써도 되요?”

“그럼.”

아이들이 가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간 한 줄 독후감 공책을 보면서 또 한번 코를 훌쩍거린다.

오소리 아줌마가 자기 동네가 모두 꽃밭이라고 알게 되어서 기쁨요. <주난>

하느님이 눈물을 안 흘릴라며 사람들이 착해야돼요 <기원>

선생님 이제 울지 마세요. 권정생 선생님은 하느님 나라에 갔을 거예요 <주은>

민들레씨를 푸먼 강아지똥은 귀한거애요. 강아지똥도 좋아요. <지현>

권정생 선생님 집이 오소리네 동네에 이어서요? 두데기하고 있는 거 옆에도 다 꽃이 마나써요 <진희>

나도 권정생 선생님처럼 싸움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민석>

아이들과 함께 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날. 아이들 마음속에 깨알만큼이라도 그 평화의 싹이 자리를 잡았을까? 이것 또한 내 욕심일까? (2007년 5월 1학년 아이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