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고등학교로 가는 길 "스스로 꿈꾸는 아름다운 시간"(학업계획서)
자기 소개서를 다 쓰더니 드디어,
학업계획서란 것을 들고 앉았다.
아, 사뭇 진지한 저 얼굴.
제법 비장에 가까운 저 눈빛.
산마을고등학교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터 이렇게 저렇게 아이에게 큰 선물을 한 것 같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스스로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
아이들에게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할텐데,
우리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긴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라,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하라고 말은 하면서
어디 어느 것 하나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자기 스스로 꾸릴 기회라도 있었느냐 말이지.
늘 계획된 학교 게획대로, 부모들 뜻에 따라 아주 착실하게 따라갈 뿐이지.
그런 면에서 학업계획서를 앞에 두고 며칠씩 끙끙대는 저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
조금 엉성한 계획이면 어떠랴.
스스로 할 수 없을 만큼 황당한 계획이면 또 어떠랴.
너무 거창해서 지레 나가 떨어질 계획이면 또 어때.
산마을고등학교에 가서 어떻게 지낼지, 어떤 공부를 더 해 보고 싶은지, 동무들이랑 무얼 하고 살 것인지
꿈에 부풀어 생각에 잠긴 저 시간이 얼마나 귀한가.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아니 어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고민하고 궁구한 저 계획들이, 저 아름다운 꿈들이
산마을에서 살아가는 동안 문득 떠 오르는 때가 올 것이고
그럴 때 마다 한번쯤, 오늘 이 시간을 떠 올릴 것이다.
'산마을 입학을 앞두고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꾸었던가?'
'산마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힘이 들거나, 무기력해졌을 때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이 편안하게 늘어져 지내다가
어느날 문득 처음 그때 그 생각들을 떠 올린다면
그게 약이 되겠지.
파란보리뿐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 학교 진학을 앞두고
저렇게 스스로 고민하고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보는 시간이 꼭 필요할 터.
산마을에서 지내다 기운빠진 모습으로 엄마를 찾을 때
지금 저 시간으로 함께 돌아가 보리라.
학업계획서를 쓰느라 머리칼 쥐어뜯으면서 책상 머리에 앉은, 그러나 눈빛이 살아있는 저 시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