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실에서 《동시마중》도 한몫 했다. (동시마중을 읽고)
《동시마중》도 한몫 했다. / 박선미
"그거 되게 쪼꼬맣네요?" 창간호를 들고 앉았는데 아이들이 기웃거립니다. 모른 척하고 시를 읽는데 입꼬리가 실실 실룩실룩.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에서 쪼꼬만 책인지 수첩인지 하나 꺼내들더니 그것만 보고 있으니 뭔지 참 궁금한 모양이에요. 처음 보는 책이라 궁금하기도 할 테지요. 뭔 책인지 소개해 줄만도 한데, 한 마디 말도 없으니까. 아침독서 시간이라고 책 한 권씩 펴고 앉았지만 마음은 콩밭으로 갔는지 여기 쪼꼬만 책으로 와 있는지 아이들 눈이 여기저기 흩어집니다. 아, 안되겠습니다.
“야아들아, 이거 한번 들어봐라.”
‘그럼 그렇지’ 기다렸다는 듯 책을 덮어버립니다. 탁 소리가 나도록. <시간표에 핀 꽃>을 읽습니다. 눈이 반짝거립니다. 딱 저거들 마음이겠지요. 마침 체육이 든 날이거든요.
“다음에는, 뭘 읽을까아아 아니, 아니. 이거는 보는 게 좋겠다.”
<민들레 꽃씨>를 읽어주려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비춰줍니다. 모두들 소리 내어 후, 후, 후 붑니다.
“이번에는 이거”
<ㅂ>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사뭇 뜨겁습니다.
“아, 진짜예요. 땅 위에 새싹이 올라오는 거 같아요.”
“이거이거 딱 창문이네요.”
몸이 재빠른 성훈이가 조르르 달려나오더니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네모를 몇번이나 뱅뱅 따라 그립니다. 우영이도 벌떡 일어서더니 내지릅니다.
“저거 문 맞지요? 저 문으로 저거저거 다 보는 거지요?”
“뭘 본다는 거죠?”
안 물어도 될 걸 굳이 묻습니다. 이것도 무슨 병입니다. 어설픈 선생병.
“냉이하고 달래 그런 거요.”
녀석, 묻는다고 그깐 걸 대답도 잘 해 줍니다. 책을 덮으려는데 여기저기서 “또 다른 거요, 또요, 또요” 더 읽어달라고 조릅니다. 아무데나 펴서 두어편 더 읽습니다. 어디를 펴도 다 읽어줄만합니다.
“그거 몇 학년 문집이예요?”
“문집 아닌데.”
“시집이예요?”
“안 가르쳐주지.”
“치이이이”
그렇게 《동시마중》이랑 만났습니다.
겨울방학 마치고 이제 제5호가 교실을 휙휙 날아다닙니다. 책을 함부로 돌리는 것이 언짢아서 공갈을 칩니다.
“이번에는 나도 아직 손도 못 댔는데.”
“주인도 안 본 걸 너거 맘대로 가져가도 되나?”
그렇지만 사나흘째 구경하기가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지 경운이가 책을 내밀면서 말합니다.
‘쌤, <학교 옥상> 그거요. 쫌 별로예요. 선생님 몰래 옥상문 열고 나가면 그거 말고, 더 마음이 콩닥콩닥하고요 더 심하게 뭐뭐를 느낄건데, 그지요?’
경운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철통같이 잠궈 놓았을 옥상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때 그 아이들 마음이 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른 눈으로 아이들 흉내를 낸 것 같기도 합니다.
참, 경운이는 지난번 3호를 읽다가도 그랬어요.
“김상욱 선생님은 신인티가 좀 나네요.”
“뭐 보고?”
“그거 <콩은 언제 심을까> 마지막에요. 아빠 술 안 마신 다음날 심는다, 그거 어디서 많이 쓰는 말 같지 않아요? 웃기는 말할 때 들어본 것 같은데.”
경운이가 그러자 서넛이 더 나섰지요.
“<우리들은 일학년> 있잖아요. 그 시에 나오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별로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어째서?”
“선생님이 꽁꽁 묶여서 양팔로 무겁게 간다 하는 거 보면요, 아이들하고 있는 것이 힘드는 것 같잖아요.”
“그래도 나는 그 앞에 있던 거는 좋은데. <배신하지 맙시다> 그거.”
"아, 똥 섭섭하다는 거 그거"
똥이야기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한바탕 웃었지요. 똥은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안 좋은 시 있잖아요. 그런 거 닮은 것도 좀 있던데요.”
'창간호가 뭐예요?' '두 달에 한번이라고 말하면 되지 왜 어렵게 격월간이라고 해요?' '돈 많이 생기면 한 달에 한번 만들어요?' '쌤도 그 쌤들하고 친해요?' 그런 말이나 하던 아이들이 입니다. 그랬던 녀석들이, 아직은 시를 두고 뭐라 딱 짚어 말하지는 못하지만, 눈이 조금 더 야물어지고 생각도 제법 깊어가는 걸 봅니다. 또래 아이들 시도, 《동시마중》도 한몫 한 셈입니다. 이 쪼꼬만 《동시마중》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더 여물어지겠지요.
그동안 요렇게 쪼고만 《동시마중》이, 두 달에 겨우 한번 찾아오는 《동시마중》이 우리 아이들이랑 잘 어울려 살았습니다. 《동시마중》에서 함께 만나는 말매미도 뻐꾸기도 곰팡이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저녁별도 고양이도 고라니도 다 함께 어울려서요. 이 아이들이 5학년이 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듯이 《동시마중》도 함께 쑥쑥 자라겠지요?
요즘은 내일모레 학예회를 앞두고 연습이 한창입니다. 창연이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제 동무들은 리코더를 불면서 넬라판타지아를 외우느라 한창인데 저 녀석 뭔 생각을 하는지! 가까이 가면서 불러도 끄덕도 안합니다. 리코더는 들고 책상머리에 앉긴 했지만 영혼은 어데서 헤매는지. 창연이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를 구부립니다. 녀석이 내다보는 하늘을 함께 봅니다. 어깨가 무거운지 한 번 들썩하더니
“쌤, 저거 기러기 맞죠? ㅋㅋ 쌤이 썼던 거, ㅋㅋ 기억나요? 그 쌤도 기러기를 한참 봤겠지요?”
"그런가아?"
"근데요. 날개를 옆으로 쫙 폈을 때는 ㅋㅋ 가 아니고요, 날개를 밑으로 내릴 때는 진짜 ㅋㅋ가 돼요."
창연이가 두 팔을 벌려 훨훨 낼개짓을 합니다. 말을 할수록 소리는 높아지고 빨라지고 눈은 더 동그래집니다. 둘레에 몇몇이 다가와서 창밖을 내다보느라 목을 쭉쭉 뺍니다. 하늘은 이미 텅 비었는데.
"아, 근데 왜 이번 호에는 그림시가 없어요?"
"글쎄, 왜 없었을까?"
"아팠는 거는 아니겠지요?"
아이들 말을 듣다 보니 ㅋㅋ 쌤, 김환영 선생님이 궁금해집니다. 아이들 걱정처럼 아팠는 건 아니겠지요?
오후 퇴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트에서 유정이를 만났습니다.
“쌤, 우리 엄마는 동시마중 그거 안 사줘요.”
‘됐거든, 뭔 말인지 알거든.’ 속으로 웃습니다.
“내 동시마중 그거 억수로 좋아하거든요. ”
그래도 나는 더 버팁니다. 오늘 저녁에 마저 읽어야할 게 있거든요. 내일도 또 낮 동안에는 내 손에 들어오지도 못할텐데.
“아, 진짜! 나도 그거 사고 싶은데.”
유정이 애를 태우는 동안 ‘때앵! 4층, 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하더니 문이 스르륵 열립니다.
“내일 아침에 빌려주께.”
엘리베이트를 내려서면서 돌아보니 유정이 입이 귀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