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 크레인 위에서 보내온 편지 (김진숙 지도위원)
트위터로 소식을 들으면서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 추운 겨울날, 두꺼운 겨울 옷을 둘둘 감아 입고도 벌벌 떨면서 추워, 아 추워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데. 시린 바람이 살을 에일 듯 할텐데, 그 하늘 꼭대기에서 어떻게 지낼까 걱정했더랬는데.
트위터로 전해오는 말들을 읽으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말도 나누고 소통하면서 시린 바람도 이기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도, 외로움도 위로받을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정작 위로받고 마음 놓을 수 있는 건, 여기 아무것도 못하면서 가끔씩 애만 태우는 나같은 사람이다. 트위터에 올라오는 당찬 모습, 우스개를 잃지 않는 여유. 그 말들을 보면서 '그래도 이렇게 씩씩하게 내려다보고 있구나, 아직도 여유와 배짱, 웃음기를 머금고 있구나. 저렇게 당당하고 의연하게, 오히려 땅 밟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구나.' 하며 조금이나마 마음놓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트위터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어찌된 것인지 알아볼 수 없는 영어만 어지럽게 씌여져 있고. 이래저래 안타깝기만 했는데, 오늘 반가운 글을 한겨레 누리집에서 만났다. 이렇게라도 소식 들으니 한편으로 가늘게 한숨이 나온다. 아직 힘을 잃지 않고 있구나....
[시론] 85호 크레인 위에서 보냅니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14일은 한진중공업이 최종 정리해고 대상 노동자의 명단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날입니다. 한진중공업은 2003년에도 65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노사가 2년을 싸워 구조조정 철회에 합의했지만, 그 합의를 회사 쪽이 일방적으로 번복했습니다. 그날 김주익 전국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홀로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129일을 버티다 끝내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습니다. 129일을 처절히 고립돼 있었던 그를 저승길마저 혼자 보낼 수 없었던 죽음의 도반이었을까요. 곽재규 조합원마저 목숨을 던지고 나서야 2년 넘는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이후 7년 동안 불안한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한진 자본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지난해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빼 들었습니다. 한진 자본은 정리해고 발표와 노조의 파업, 노사 합의, 회사의 일방적 합의 번복 등 2003년과 똑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3000명 넘게 잘려나갔습니다. 저는 이 공장에서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잘려야 이 싸움이 끝날 것인가를 스스로 되물으며 수많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나의 20년 지기 친구 주익씨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수백 번도 더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달 6일 김주익 지회장이 8년 전에 올랐던 85호 크레인에 올라왔습니다. 문철상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과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은 14일 또 다른 크레인에 올랐습니다.
제가 이 크레인에 오른 지 40일째 되는 날인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습니다. 세상과 아득히 단절된 이곳 85호 크레인에도 초콜릿 두 봉지가 밧줄에 매달려 올라왔습니다. 하나는 희망퇴직 신청을 하지 않아 정리해고가 확정될 예정인 조합원의 여중생 딸내미가 손수 만들어 온 초콜릿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청 노동자의 6학년짜리 딸내미가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평소 가슴 설레던 남자친구에게 작은 손 조몰락거려 만든 초콜릿을 떨리는 가슴으로 건네는 날. 이날이 26년 동안 일해 온 아빠가 공장에서 해고되는 날이라는 것을 그 여중생 아이는 알았을까요? 하청 노동자의 6학년 딸내미도 정규직 노동자가 잘리면 비정규직인 자기 아빠가 일감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보따리 인생 물량조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하청 노동자의 6학년짜리 딸내미가 보내온 초콜릿에는 ‘고기를 사드릴 테니 빨리 내려오시라’는 편지가 함께 부쳐져 있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 아이가 써 보낸 편지에도 이다지 목이 메는데 ‘아빠 내가 일자리 구해줄게. 그 일 그만하면 안 돼요?’라는 아홉 살짜리 딸내미의 편지를 받았던 김주익 지회장은 얼마나 울었을까요. 내려가면 휠리스 운동화를 사주마 약속했던 세 아이와의 약속을 끝내 지킬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세상은 그에게 두 가지 약속 중 하나를 버릴 것을 강요했습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가 택한 건 조합원과의 약속이었습니다. 한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한 가지 약속을 버려야 하는 것. 이것이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이었습니다.
지난달 6일 새벽 3시15분. 85호 크레인 위로 오르던 저는 직각으로 이어지는 계단 하나를 탁 잡았습니다.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을 쓱 베며 지나갔습니다. 세상을 향해 처절히 절규했으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 단절의 공간에서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노동자의 대표였던 김주익 지회장이 그 무거운 짐을 비로소 내려놓았던 그 자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8년 만에 예감으로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지금 주익씨가 앉았던 자리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보고 간 세상의 풍경을 봅니다. 무심히 지나다니는 행인들과 분주히 오가는 차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스물여섯 살에 해고된 뒤 동료 곁에 돌아오겠다는 꿈 하나를 붙잡고 27년을 견뎌온 여성 노동자가 그 동료를 지키겠다며 다시 이 크레인에 매달려 세상을 향해 간절히 흔드는 손을 저들 중 몇 명이나 보고 있을까요. 2월1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