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의 책
보물 찾기 ('달걀 한 개'를 읽고) / 블로그 <책 읽어주는 여자>에서
야야선미
2011. 2. 10. 00:00
먼 옛날 어렴풋한 내 기억 속에 새벽마다 우렁찬 울음소리로 대장의 위엄을 뽐내던 거무스레한 빛의 붉은 장닭과 따사한 봄날에 노란 병아리들을 줄세워 놓고 담장 밑 흙을 파내던 누런 씨암탉이 있다.
우리집 앞 마당에 멍석이 펴지고,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윷 판을 벌리던 날.
얼마간 위세당당하던 장닭이 운명을 달리하던 날이다.
모르긴해도 여느 때 같으면 달구통에서 꺼내달라 쉼없이 삐약삐약거리며 내 귀를 따갑게하여 기여이 탈출에 성공했을 병아리들도 이 날만은 소리죽이며 엄마 품 속에 얼굴을 파묻었던 아련한 기억이 난다.
우리집 암탉은 숨바꼭질을 좋아했다.
집 뒤 대나무밭 여기저기에 알을 흩어 낳았다. 해가 저물기 전 대나무밭에서 달걀 찾기는 우리들의 재미난 보물찾기였다. 동생과 누가누가 먼저 찾나 내기를 걸기도 했다. 보기보다 영리한 암탉은 우리를 골탕 먹이려 작정한 듯 쉽게 눈에 띄는 곳에는 절대 알을 낳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암탉에게 바라는 바이기도 했었다. 우리의 작은 바람을 알기라도 하듯 암탉은 낙엽이 된 대잎 사이에 달걀을 보물마냥 숨겨 두었다. 이 녀석은 하루에 도대체 몇 개의 알을 낳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재수 좋은 날은 우리에게도 달걀찜이 돌아왔다. 하얀 쌀밥에 은빛 스덴그릇속의 달걀찜은 그 색이 참으로 고왔다.
간혹, 따끈따끈한 달걀을 찾기도 했는데 그것은 늘 아버지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그릇에 잘 담아 선반위에 놓아두셨다가 논일 다녀오시는 아버지 앞에 내놓았다. 까슬까슬한 달걀은 아버지의 목구멍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렸고, 아버지께서는 입가에 묻은 끈적거리는 마지막 남은 맑은 액체를 손등으로 쓰윽 훔쳐내셨다. 어린 나에게는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평온해 보였다.
'언젠가는 먹어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실천에 옮기던 날!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각에 혼자 대나무 숲에서 달걀을 뒤지기 시작했다.
콩닥거리는 가슴의 방망이질 소리가 내 귀에 너무 크게 들려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도둑놈 마냥 사방팔방을 살펴가면 달걀 한 개를 슬쩍 주머니 속에 감추고 걸음아 나 살려라며 방으로 잽싸게 달렸다. 삼촌이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수십 년 된 색바랜 낡은 앉은뱅이 책상 서랍 속에 공책을 찢어 달걀을 똘똘 감싼 후 숨겨두었다. 방망이질은 좀처럼 멈추질 않아 한참을 방 안에서 웅크리고 앉았다. '기필코 먹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간신히 요동치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날 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나는 동생들이 잠 들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사살했다. 동생들의 감은 두 눈 위에 여러번 손을 흔들어도 보고, 가슴에 귀를 가져다 보기도 몇 번이나 하는 친밀함을 보였다. 어머니께서는 달걀 꼭지부분에 쇠젓가락으로 한 번 '똑'하고 내리치시면 먹기 적당한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으로 달걀은 끊어짐없이 내렸다. 수차례 보아 온 나는 이미 젓가락도 준비해 두었다. 온기가 사라진 달걀을 조심조심 두들겨 본다. 토~옥 또~옥 동생들이 깰까 긴장한 탓에 실금조차 가지않은 달걀을 재차 두드렸다.
'에라~ ' 톡
제법 큰 구멍이 났다. 이제 꼴깍 한 입에 넘기기만 하면 된다.
노란 덩어리가 나오지않게 조심조심 입에 넣는다. 걸쭉한 액체는 끊어짐도 없이 그대로 내리더니 노란자가 거침없이 쑤욱 직행했다.
'켁 케엑~ 우웩~'
'맛있어야 하는데... 이게 아닌데... 아버지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맛난 것을 드셨는데...' 나의 실망감은 끝내 아버지가 마치 날 속여먹었다는 배신감으로 변했다.
그날 밤 달빛은 창호지 사이로 들어와 홍시색 휴지통 속에 버려진 공책에 아무렇게나 돌돌말린 먹다 남은 달걀을 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우리집 앞 마당에 멍석이 펴지고,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윷 판을 벌리던 날.
얼마간 위세당당하던 장닭이 운명을 달리하던 날이다.
모르긴해도 여느 때 같으면 달구통에서 꺼내달라 쉼없이 삐약삐약거리며 내 귀를 따갑게하여 기여이 탈출에 성공했을 병아리들도 이 날만은 소리죽이며 엄마 품 속에 얼굴을 파묻었던 아련한 기억이 난다.
우리집 암탉은 숨바꼭질을 좋아했다.
집 뒤 대나무밭 여기저기에 알을 흩어 낳았다. 해가 저물기 전 대나무밭에서 달걀 찾기는 우리들의 재미난 보물찾기였다. 동생과 누가누가 먼저 찾나 내기를 걸기도 했다. 보기보다 영리한 암탉은 우리를 골탕 먹이려 작정한 듯 쉽게 눈에 띄는 곳에는 절대 알을 낳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암탉에게 바라는 바이기도 했었다. 우리의 작은 바람을 알기라도 하듯 암탉은 낙엽이 된 대잎 사이에 달걀을 보물마냥 숨겨 두었다. 이 녀석은 하루에 도대체 몇 개의 알을 낳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재수 좋은 날은 우리에게도 달걀찜이 돌아왔다. 하얀 쌀밥에 은빛 스덴그릇속의 달걀찜은 그 색이 참으로 고왔다.
간혹, 따끈따끈한 달걀을 찾기도 했는데 그것은 늘 아버지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그릇에 잘 담아 선반위에 놓아두셨다가 논일 다녀오시는 아버지 앞에 내놓았다. 까슬까슬한 달걀은 아버지의 목구멍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렸고, 아버지께서는 입가에 묻은 끈적거리는 마지막 남은 맑은 액체를 손등으로 쓰윽 훔쳐내셨다. 어린 나에게는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평온해 보였다.
'언젠가는 먹어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실천에 옮기던 날!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각에 혼자 대나무 숲에서 달걀을 뒤지기 시작했다.
콩닥거리는 가슴의 방망이질 소리가 내 귀에 너무 크게 들려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도둑놈 마냥 사방팔방을 살펴가면 달걀 한 개를 슬쩍 주머니 속에 감추고 걸음아 나 살려라며 방으로 잽싸게 달렸다. 삼촌이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수십 년 된 색바랜 낡은 앉은뱅이 책상 서랍 속에 공책을 찢어 달걀을 똘똘 감싼 후 숨겨두었다. 방망이질은 좀처럼 멈추질 않아 한참을 방 안에서 웅크리고 앉았다. '기필코 먹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간신히 요동치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날 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나는 동생들이 잠 들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사살했다. 동생들의 감은 두 눈 위에 여러번 손을 흔들어도 보고, 가슴에 귀를 가져다 보기도 몇 번이나 하는 친밀함을 보였다. 어머니께서는 달걀 꼭지부분에 쇠젓가락으로 한 번 '똑'하고 내리치시면 먹기 적당한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으로 달걀은 끊어짐없이 내렸다. 수차례 보아 온 나는 이미 젓가락도 준비해 두었다. 온기가 사라진 달걀을 조심조심 두들겨 본다. 토~옥 또~옥 동생들이 깰까 긴장한 탓에 실금조차 가지않은 달걀을 재차 두드렸다.
'에라~ ' 톡
제법 큰 구멍이 났다. 이제 꼴깍 한 입에 넘기기만 하면 된다.
노란 덩어리가 나오지않게 조심조심 입에 넣는다. 걸쭉한 액체는 끊어짐도 없이 그대로 내리더니 노란자가 거침없이 쑤욱 직행했다.
'켁 케엑~ 우웩~'
'맛있어야 하는데... 이게 아닌데... 아버지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맛난 것을 드셨는데...' 나의 실망감은 끝내 아버지가 마치 날 속여먹었다는 배신감으로 변했다.
그날 밤 달빛은 창호지 사이로 들어와 홍시색 휴지통 속에 버려진 공책에 아무렇게나 돌돌말린 먹다 남은 달걀을 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