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재희 어머니께

야야선미 2011. 4. 9. 12:05

 

재희 어머니^^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귀한 편지를 읽다보니 눈물이 핑 돕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귀한 뜻을 가진 두 분을 알게 되어 가슴이 뭉클하고 고맙습니다. 미친 자본의 세상이라고 한탄만 했지 온몸으로 뛰어들어 실천하면서 나누고 봉사하는 생활이 어디 쉬운 일인가예? 더구나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이들 핑계로 더더욱 물러서기 쉽지예.

그러면서  재희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해져 옵니다. 부모님들의 귀하고 높은 뜻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야 있겠지만, 한창 자라는 나이에 또래 아이들과 현실 속에서 마음고생 또한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서예. 그리고 그런 재희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말할 수 없는 아린 마음을 알 것 같아 또한 눈물이 핑 돕니다.

카페에 쓰시는 어머니 글을 읽으면서 이 나이까지 이런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살아있는 감성을 지니고 계시구나 했는데..... 그런 마음을 지니신 분이라 더더욱 재희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많이 쓰이실 거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이 아직 철이 없어 별 생각없이 재잘재잘 이야기 하는 속에서 재희가 기분이 상하거나 자기 자신이 스스로 움츠려들 수도 있었겠구나,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재희처럼 생각이 깊고, 먼저 나서서 떠들어대는 성격이 아니라면 아이들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만 많아질 수도 있겠다 싶고예. 제가 자랄 때 좀 그런 성격이었거든예. 말하는 사람은 별로 깊은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도 괜히 저 혼자 상처받고 우울해지고......

외향적인 아이들이 대부분 그런 편인데, 크게 자랑하고 싶거나 남보다 더 인정받고 싶거나 자기를 내세워 보이거나 하는 깊은 의도는 없이 그저 잘 떠벌려 이야기하거든예. 그 이야기가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지, 소외감을 줄지, 섭섭하게 할지 그런 생각은 없이요.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라 별 생각없이 조잘조잘 말이 많을 때라 그저 말이 많은 거지예. 그런데 그런 속에 생각이 많은 아이들은 그렇게 종알거리는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면서 자꾸 움츠려드는 것 같더라고예.

지금 외향적인 또래 아이들이 막 떠오르는 건, 악의없이 조잘거리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아이들 틈에서 혹시나 재희가 속으로 속으로 움츠려 들어가 버리는 성격은 아닐까 싶어 걱정이 앞서서요. 물론 제가 재희 성격도 잘 모르면서 괜한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면 좋겠다 싶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들하고 지내다보니 괜한 걱정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재희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훌륭하고 속깊은 아이로 자랄 거라 믿음이 생기네예. 두 분 부모님들이 온몸으로, 삶으로 그렇게 보여주고 계시니까요. 한창 사춘기를 지날 시기에 물론 섭섭한 마음에 어머니께 이래저래 공격하는 말도 하겠지만 그 가운데서 정말 가장 귀한 것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들이 오히려 부모로서 서인이나 아이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모른 체 하지 말라고,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마음을 써야한다고 하지만 우리 삶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요.

쉬는 토요일이라 느지막히 일어나서 메일을 열었다가, 어찌나 가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한지. 한참 앉았다가 당장을 씁니다. 이 답을 쓰는 동안 참 따뜻하고 은혜로운 기운이 저를 감싸는 것 같아 평화롭습니다. 서인이를 비롯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을 챙겨주고 거둬주시고 싶은 재희 어머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와서 고맙다는 말보다 더 부끄럽고 민망해집니다. 지금 상황에 재희보다 그 친구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따뜻한 마음이 봄날 햇살보다 더 따뜻하게 여기까지 전해져옵니다.

저희들도 한 십 년 동안 정말 어려운 일 많이 겪었거든요. 그 뒤로 온갖 원망도 섭섭함도 움켜쥐고 있던 욕심도 털어내려고 애쓰면서 살았지만 아직도 온전히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건 같지 않습니다만. 그 어려운 시기에 서인이를 키우면서 서인이도 남들 다하는 것들 제대로 못해주고 키웠거든예.

다행히 저희들 사는 곳이 변두리 가난한 마을이라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렵게 자란다는 걸 서인이 자신은 모르고 살았어요. 뭐어 남들도 다 그렇게 살겠거니 했을 거예요, 아마. 그럴 때는 서인이가 잘 사는 동네, 잘 나가는 집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아이답게 자라는 것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바깥세상(?)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기가 해 보지 못한 것, 자라면서 갖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놀라고 신기해하는 모습들을 가끔 봅니다. 그럴 때 마음이 좀 아프기도 하고요, 에미된 마음에.

이젠 제법 자랐는지 우리 형편에 어렵겠다 싶은 일은 아예 자기 스스로 접어버리기도 하는데, 그게 짠하기도 하고요. 이번 단기 방학 때 해외체험학습 가는 것도 우리 형편에 어렵겠다 싶었는지 집에 와 있겠다 하더라고예.

“그냥, 엄마 보고 싶어서! 엄마하고 더 오래 있고 싶어서요.” 하긴 하는데, 그 녀석 말은 원래 그렇게 하거든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다 컸구나 싶어서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 우리끼리 섬진강 따라 걷기도 하고 남도 쪽 여행가자.”하고 대꾸했지만 아직도 짠하긴 합니다. 한편으로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는 걸 보면 제게 닥쳤던 그 숨 막히던 시련이 고맙기도 하고예.

재희 어머니. 두 분이 귀한 뜻을 가지고 그렇게 사시는 모습이 재희에게는 자랑스럽게 비칠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갈등도 겪고 섭섭한 마음을 표현할 때도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두 분에 대한 믿음이나 자랑스러움을 키워갈 거라고 믿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제 둘레에 이렇게 귀한 분들을 알고 함께 지내게 되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산마을에 서인이를 보낸 덕에 이렇게 좋은 이웃을 알게 되어서 그 또한 축복이라 여겨집니다. 이렇게 고마운 분들의 사랑을 받고 지낼 수 있게 된 서인이가 다행스럽고요.

이제 멀리 두고 자주 보지 못하는 안쓰러움이나 그리움 따위 덜어내고 맘 편히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고맙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더더욱 반갑게 달려가 얼싸안을 것 같습니다. 쑥스러운 뭐어 그런 거 다 버리고요. 어머니, 그때까지 건강 조심하시고예, 안녕히....

참, 혹시 단기 방학때 시간이 된다면 재희도 서인이랑 함께 부산으로 보내주시지요. 다른 것 못 하고 서인이랑 돈 많이 안 드는 섬진강 걷기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좋은 길동무가 있으면 더 아름다운 여행이 될 것 같아요^^

멀리 부산에서 서인이 어멈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