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보고 싶은 우리 딸!

야야선미 2011. 4. 12. 21:36

 

보고 싶은 우리 딸!

아파트 들머리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개나리는 또 어찌나 노랗게 피어 눈이 부신지 한참 들여다보면 눈이 멀 지경이야. 환하게 핀 꽃을 볼 때마다 한 며칠 우리 딸이 더 보고 싶더니, 오늘 제일 오랫동안 기일게 우리 딸 목소리를 들었네. 가쓰나, 뭔 일이 없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한테 목소리 들려주면 더 좋았지, 흐흐.

그러나 저러나 우리 딸, 울먹울먹하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서 잠이 와야 말이지. 자려고 누웠다가 자꾸만 네 목소리가 뱅뱅 맴돌아서 일어나 앉았어.

딸, 너무 걱정하지 말고 상처 또한 받지 말았으면 싶어. 동무들하고 또는 사회에서 사람들하고 어울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에 휘말려 속상한 일이 생기기도 해.

나도 옛날에 동무가 곤란한 일 당한 거 같아서 도와주려고 옆에 얼쩡거리다가 한꺼번에 싸잡혀 야단을 듣기도 하고,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고 그냥 동무니까 동무가 하는 일이니까 싶어서 끼어들었다가 다같이 혼나기도 하고, 고민하는 동무가 걱정스러워서 함께 앉아만 있었는데 나중에 둘이 뭐한 거냐고 오해 받기도 하고 그랬지.

네 말을 듣고 보니 너도 이런저런 생각 없이 일이 그렇게 흘러갔는데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일이 커진 것 같더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술 마시는 선배를 보니 무슨 일이 있는지, 견디기 힘겨운 일이라도 있나, 말 못할 고민이 있나 싶어서 지나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아마 나 같아도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선배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야기라도 들어주고 그랬을 거야.

그리고 선배가 너희들 있는 곳에 왔을 때도 문 꼭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마 힘들었을 거야. 힘겨워 보이는 선배가 들어온다니까 문을 열어줄 수도 있고, 술 한 번 먹어보라고 주면 끝까지 뿌리치기 힘들어 받아먹을 수도 있었겠지. 영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잘 아는 선배니까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어.

정명언 선생님이 오셔서 물어봤을 때도 네 말처럼, 선배 잘못을 일러바치는 것 같아서 숨겨주고 싶었을 거야. 아마 내가 그 상황이라도 그 순간에는 아마 아무도 없다고 말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대로 조용히 넘어가면 그 선배에게도 아무 일 없이 잘 넘어가고, 너희들도 아무 일 없이 끝날 거라 싶었을 거야.

그런데 그 일이 알려지고, 그 모든 일들의 한 가운데에 너희들도 함께 끼어 있으니 일이 커졌을 테고. 아까 엄마한테 전화하면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엄마 마음이 무척 아팠어. 우리 딸이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크게 야단 들을 일 없이 아주 즐겁게 지내다가 이런 일이 생기니까 더 크게 다가왔지 싶어.


사랑하는 우리 딸, 전화 끊고 마음 한 구석 저쪽이 아리고 아파.

징계를 당할 수도 있다니 얼마나 두려울까, 언니들이나 동무들 보기 얼마나 민망할까, 선생님들 얼굴 볼 때마다 떳떳하지 못해서 풀이 죽지나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한참 동안 마음이 저릿한 거야.

두려워 할 필요 없어. 혹시나 징계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징계보다는 네 스스로 떳떳하다면,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것으로 당당하면 돼.

그리고 언니들이나 동무들 보기에 민망한 것도 빨리 털어버리고 넘어갔으면 해. 잘못한 일을 했을 때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건 당연해.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풀죽어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우울해지거나 스스로 쪼그라들어서 사람들한테서 자꾸 멀어질 수도 있거든. 잘못한 건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고 어서 털어버리고 다시 활발하게 지내는 거야.

물론 선생님들 앞에서도 마찬가지. 벌 받을 건 받고, 용서 빌 일이 있으면 용서 빌고 그리고 어서 털어버리고 시원시원한 네 모습을 빨리 찾으면 좋겠다는 거지. 제발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끙끙대지 않기를……


우리 예쁜 딸, 이번에 속으로 많이 혼났지? 그래,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일이지 싶어. 그런데 이번 일을 듣다보니 네가 앞으로 조심하고 지켜야 할 것도 있다 싶어.

아까 네가 말했지만, 노트북 문제 말이야. 다른 동으로 까지 가서 빌려다 쓰는 것, 그런 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어. 물론 모두들 집에 가고 없는 토요일 저녁, 심심하기도 심심했을 테고 그런데다 마음도 좀 자유로웠겠지. 그래서 빌려다가 영화라도 좀 보자 싶었을 테고……

앞으로도 집에 오지 않고 생활관에서 지내는 주말이 많을 텐데, 이 문제는 너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하지 않을까?


엄마 생각에는 주말 시간을 너만의 조용한 시간으로 가꾸어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처음에는 동무들하고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게 먼저라 싶어서, 또 집에도 자주 못 오니까 외로운 마음도 좀 달래라고 동무들 집에도 함께 가고, 시내 구경도 가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좀 달라지는 게 어떨까 싶어.

사실 혼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만큼 소중한 시간은 없더라고. 그 시간에 책도 좀 읽고, 밀린 공부도 조금 하고, 음악 들으면서 두어 시간씩 누워 있는 것도, 방 정리도 좀 하다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 생각도 좀 하고, 그러다가 그동안 있었던 일도 글로 좀 써서 정리해 두고……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스스로를 키우고, 영혼을 살찌우고, 내 살고 있는 모습도 뒤돌아보게 하는 아주 귀한 시간이란 말이지.

딸, 엄마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그 동안 못한 말을 너무 많이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아. 함께 있으면 조금씩 자주 말할 텐데, 그지?


그리고 아까 선배가 방에 들어오는 걸 말리지 못한 것, 술을 한번만 마셔보라니까 어서 마시고 빨리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마셨다는 것, 나도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말이지, 무슨 일이든지 아주 조그만 것에서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점점 더 양보하고 무너지는 것이 많아지거든.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원칙이 있었나?” 할 정도로 흐지부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아. 여럿이 어울려 사는 모둠살이에서도 그렇고,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앞으로도 졸업할 때까지 쭉 생활관에서 지낼 것이고, 주말에 생활관에 남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니까. 너 스스로 이 원칙은 꼭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아.

‘모두 다 집에 가고 한 몇 몇만 남았으니까’

‘오늘은 모처럼 휴일이니까’ 그런 마음에 한 번 흐트러지고,

‘저 동무, 고민 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뿌리치지?’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혼자만 두지?’

그런 마음에 깊이 생각지 못하고 원칙을 흐트리게 되겠지.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 있다 보면 일이 어떤 방향으로 커질지 모르잖아? 이건 엄마가 멀리 있다 보니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

생활관 규칙은 너 스스로 철저히 지키겠다는 속다짐을 했으면 좋겠어. 이건 3년 동안 산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아주 중요한 규칙이라고 생각해. 널 위해서나 모두를 위해서.


아, 그렇다고 힘들어 보이는 동무나 선배를 못 본 척 하라는 말은 아니야. 관심 가져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해. 혹시나 이번 일 때문에 동무들에게 관심을 끊고 힘들어하는 둘레 사람들에 대해 괜한 관심을 끊고 원칙을 철저히 지켜라, 그런 뜻은 아니야. 알지?

그렇지만 시간이나 장소, 상황을 염두에 두고 판단했으면 좋겠다 싶어. 너 혼자서, 또는 너희들 몇 몇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이지 말라는 거지.

누군가에게 심상찮은 일이 생겼을 때, 조용히 덮어주는 미덕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어른이나 선생님께 귀띔을 해서 돕는 것이 훨씬 더 빨리, 더 쉽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거든. 어른들은 일을 크게 만들거나 벌을 준다고만 생각하지 말기를.

후우~, 사실 이런 건 네가 생활하면서 그때그때 판단할 수 있을 거라 믿어. 괜히, 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아 시작하다 보니 이래저래 말이 길어지네. 이제 그만 할게.

편지 쓰다 보니 우리 딸 진짜 보고 싶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네……

공주야, 마음 편히 잘 지내고, 다음 주말에 만나자. 그때까지 안녕~~

2011년 4월 12일 벌써 새벽이다^^

부산에서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