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산마을고등학교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씨줄날줄~~"

야야선미 2011. 6. 18. 11:47

 

봄방학 마치고 가서 이틀째였던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

“엄마 소개해 줄 사람이 생겼는데요.”

순간 ‘아, 드디어 올 것이 왔단 말인가?’ 가슴이 덜컥 하는 건 뭔 심사였던지.

조금 수줍은듯 담담하게 남자친구 생겼다는 말을 하는 딸아이.

엄마 아버지품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알아가는구나 싶으면서 

설레고 즐겁고 어쩌면 좀 아파하면서 자라가는 거겠지, 딸아이가 이제 진짜 자라는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한편으론 실체를 알 수 없는 걱정이 밀려들기고 했고요.

그날, 옆에 있었으면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싶은 밤이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그날따라 어찌나 심란하던지.

딸아이의 첫 번째 남자 친구, 그 참 심란하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묘하던데요^^


그저께 주말, 드디어 서울로 갔습니다.

조용히 이야기할 시간 좀 만들자고 비싼 돈 들여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이틀밤을 묵었는데,

남자친구 사귀는 이야기까지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수다 떨면서 변죽만 울리고 온 셈입니다.

그래도 함께 지내는 이틀 동안 대견하고 기특한 모습들 보면서

순간순간 멀리 산마을까지 보낸 걸 잘했다, 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나, 이제 채식해요."

"여기 배꼽 이면지 공책 있어요, 이거 쓰세요."

"나무 젓가락 말고 이거...."

중학교 때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읽고 충격은 받았지만

몸으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면지 다시 쓰는 거나 나무젓가락 쓰지 않는 것도

초등학교 아니 훨씬 어릴 때부터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강조하던 것들이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몸으로 실천하지는 못하던 것들이었거든요.

그걸 산마을 석달만에 실천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 동무들이랑 선배들이랑 지내던 이야기 듣다 보니

몇 달 안 되는 사이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 넓어진 것 같고,

어렵고 소외된 곳으로 눈길을 주려는 마음도 보이고,

책을 읽다 생각한 것들 이야기 나누다 보니

책도 훨씬 깊이 있게 읽는구나, 독서 폭도 넓어졌구나 싶기도 했죠.

물론 그 생각들이 영글어 주관이 되고 신념이 되기까진 숱한 흔들림과 방황, 실패도 있겠지만요.

함께 지내는 구성원들이 어떤 분위기에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관계가 깊어지기도, 돈독해지기도 하면서 아주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더군요.

소중한 동무들과 선배들 그리고 귀한 산마을 식구들.......

그 모든 인연들이 아름다운 씨줄날줄이 되어

아이들을 저렇게 장하게 키워내는구나 싶은 이틀이었습니다.


이야기 나누면서 만나게 되는 1학년 동무들이며 앞서 산마을 식구가 된 선배들.

그들이 따뜻한 마음만 가진 게 아니라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려고 애쓰고

겁내지 않고 일을 만들며 즐겁게 부딪혀보려는 모습들이

정말 산마을을 산마을답게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끔, 대안학교로서 정체성이나 노력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고

나는 대안학교 학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고민만 했지, 그야말로 고민뿐이었지,

아이들은 몸으로 하나하나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시에 휘둘리지 않고, 학교생활에 지치지 않고, 아이들 나름대로 제 결을 지니면서

조금씩 시도하고 나아가보려 애쓰는 분위기,

그러나 젊음이 가지는 끝없는 목마름으로 불만을 얘기하는 아이들

그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정말 건강하게 사춘기, 청소년기를 함께 하고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 딸이 그런 속에서 제대로 길을 잡아 가는구나 싶어 대견했고요.

고맙고 은혜로운 날이었습니다.


아으윽, 그런데 그 단꿈도 단 이틀뿐이었던 거이었던 것이었습니닷!

통합기행 간다고 얇은 여름바지 사고, 모자 사고, 얇은 셔츠도 사고......

동대문 일대를 휘젓고 다니다가

갑자기, 문득, 별안간, 느닷없이!!!!

 “아, 오늘 시사뽀인트 발제!” 그러는 거입니다.

말인즉슨, 시사뽀인트 발제해야 하는데,

6시 되면 컴퓨터실 문을 닫아서 작업할 수가 없고

노트북 빌리는 건 원칙으로 금지!

그래서 5시 30분까지는 학교에 닿아야 일을 한답니닷!

그때 시각 3시, 곳은 동대문.

지하철 두 번, 3000번, 강화 시내버스 타고 학교까지, 뭔 수로 5시 30분까지 가느냐고요.

또 다른 극약처방, 엄마 스마트폰으로 메일 작성해서 보내고,

학교에 와 있는 친구한테 출력 부탁하면 될 것 같다고.

가쓰나 진작 해 놓지,

꿀밤 한 대 꽁 먹이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뿅~하고 산마을까지 날아갈 것도 아니고

꾸욱 꾹 참았습니다.


꿀밤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으니

신촌 가서 3000번 타? 공항철도 타고 김포 가서 3000번 갈아타면 좀 빠를까?

강화터미널에서 택시 타고 갈래?

택시 요금 엄청 많이 나올 텐데요?

그럼, 에미 어머니 출발 안 하셨으면 좀 얻어 탈까?

좋지도 않은 머리를 굴리고 굴리는데

자비로우신 에미어머니, 반가이 콜~ 해주셨습니다.

에미어머니를 기다리면서, 마음이 바쁘긴 바쁜지,

그 쪼그만 스마트폰으로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글자를 만들어 내더군요.

동대문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지하철역 나무 의자에 앉아서도, 그 솜씨는 쫌~~ 좋더군요 ㅠ.ㅠ

은혜롭게도 에미어머니 차 얻어 타는데 성공^^

그러나 일은 그걸로 끝난 게 아이었슴니다~~

 

아무리 요약발제지만 그거이 그리 빨리 끝이 나던가요? 그것도 쬐끄만 스마트폰으로....

에미어머니 차가 약속한 곳으로 막 도착한다는데 그러는 겁니다.

“엄마, 다 못하겠어요. 차 타고 가면서도 해야 하는데, 폰 받아가려면 같이 차 타고 가셔야겠어요.”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언제 부산 내려가라고????

'가쓰나, 이런 건 미리 좀 해놓지'

잘 자라고 있다고,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이틀 동안 푹 젖어있던 저으 환상이 무지막지 깨어지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아흐흑...

에미어머니 차 타고 가면서 멀미난다고 꾸웩거리면서도

학교 닿을 때까지 쉬지 않고 손가락 열심히 움직이더군요.

맨날맨날 눈치 받으며 문자질하면서 갈고 닦은 그 솜씨가 한껏 빛을 발했지요 ㅠ.ㅠ


그리하야, 일정에도 없던 강화도라 산마을까지 갔고요,

덕분에 텃밭에서 잘 자란다는 아가들이랑 인사도 나누고요,

그 기운 좋은 텃밭에서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교장쌤도 보고요,

존경스러운 김반장님도 보고요,

서인이가 자랑하는 학교밥도 한 끼 얻어 먹고요!

무. 엇. 보. 다. 공 차고 있던 ‘그 오빠’도 멀찌감치 서서 슬쩍 함 보고요^^


예기치 못하게 묻어갔던 산마을, 참 좋더군요.

아직 사름이 끝나지 않은 연두빛 여린 모,

줄이 좀 삐뚤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아이들이 심은 거라 생각하니 더 장하게 보였습니다.

밤이면 달빛이 내려와 쓰다듬어 주겠지, 개구리 울어대며 동무해주겠지,

거기다 산마을 커플들이 거닌다는 논두렁도 눈여겨보면서

아름다운 산마을의 밤을 상상하며..... 좋았죠.

아흐흑, 마지막에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생활관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생활관에 짐 들어다 주러 갔다가 무어라 표현하기도 민망할만치 어질러놓은 방을 보는 순간,

‘아이코 가쓰나, 이건 하나도 변한 게 없네’

그러면서 저의 상경기는 무참히 원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아흐흐흑.....

그러나 확실한 거 하나!

에미와 혜민이 그리고 그 전에 함께 방 썼던 송아와 세린이,

그 아이들 성격 참 좋다는 건 확실하게 인증되었습니다.

그 더러운 꼴을 잘 참아주고 있는 내공.... 야들아, 존경스럽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