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한 학기를 마치면서 강화정 선생님과 산마을의 여러 선생님께

야야선미 2011. 7. 20. 14:25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한 학기를 마치면서 강화정 선생님과 산마을의 여러 선생님께-


마치 커다란 들통으로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무섭게 내리던 긴 장마가 끝나는가 싶더니

요 며칠은 밤에도 잠을 깊이 들지 못할 만큼 뜨거운 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뜨거운 더위가 시작되면서 방학도 함께 시작되니

그동안 선생님들의 고단했던 몸과 마음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살짝 놓입니다.

하긴 방학이라고는 해도 꼭 받으셔야 할 연수도 있을 테고,

학교에도 계속 나가서 이런저런 해야 할 일도 많겠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저희 부모들에게 맡기시고 방학 동안이라도 아이들 걱정에서 조금 벗어나십시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눈앞에 아이들이 어른거려도 다 떨쳐버리고

‘그저 자연인’으로서 짧은 방학 동안이나마 쉴 수 있기를 빕니다.


남보다 유난히 작고 약하게 태어나 백일이 지날 때까지 가슴 졸이게 했던 서인이가

남부럽지 않게 건강하게 자라서 고등학생이 된다는 설레고 벅찬 기쁨,

언제까지나 제 옆에서 이쁜 새처럼 종알거려줄 줄 알았던 동무 같은 딸 서인이가

하루 온종일 걸려서야 닿을 수 있는 먼 길을 떠난다는 허전함,

낯설고 먼 길을 머뭇거리지 않고 성큼성큼 나가는 당찬 모습에도

결코 대견스럽지만은 않았던 막연한 불안감,

세상이 말하는 편안한 길 두고, 비록 울퉁불퉁 거친 길이지만 스스로 그 길 헤쳐 나가겠다고

꿈꾸는 듯 떠나가던 뒷모습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우면서 한편으론 애잔하던 그 복잡한 심정……

돌아보면 지난 한 학기동안 서인이 보고 싶고 걱정스러울 때마다

떠나보내면서 가졌던 그런 설렘과 기쁨들이 있었기에

저도 잘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학한 뒤에 어쩌다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종알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갈등하지 않고 어울려 지내는 것 같아 마음 놓이고,

어쩌구 저쩌구 불만스러운 속엣말을 쏟아놓는 걸 보면서

‘그래, 그럼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 뭐’ 싶어서 웃음도 나왔다가,

무엇보다 그런 것들이 딱 그 또래 아이들만큼 평범하게 자란다는 것이 마음 놓이기도 했습니다.


“엄마, 책 살 것 좀 많아요.”

공부시간에 여러 선생님들이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책들 받아 적어놓았다가

만날 때마다 사고 싶은 책목록을 내밀 때

어찌나 기쁘고 황홀하던지 가슴이 벌떡거렸습니다.

방학도 없는 보충수업에, 결코 자율이 아닌 야간자율학습에, 늦은 밤 학원수강에……

그런 것들로 아이가 지쳐가는 걸 볼 수 없다는 저희들 판단이 옳았구나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학력평가 또는 한 줄 세우기 등수 같은 쓸데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으면,

아이들이 그런 것들 때문에 지치지 않으면,

이렇게 읽고 싶은 책도, 알고 싶은 세계도 스스로 찾아간다는 걸

산마을 한 학기동안 보여주었습니다.


“엄마, 전에는 멋모르고 피디도 하고 싶고, 음악감독도 하고 싶고 뭐뭐 하고 싶었던 것들 많았잖아요? 지금 보니까 그것들도 다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걸 내 뜻대로만 할 수 있겠다 싶지 않고요, 세상에서 주문되어지는 대로 그 틀에 맞추어 갈 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그거 이제 별로 매력 없어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세상에 드러나는 일만이 그렇게 의미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만도,

누구에게 드러나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간다는 것,

그것 하나만해도 한 학기동안 참 잘 자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방학 어느 날, 중학교 때 친구들 만나서 하루 종일 놀고 오더니 그럽니다.

“엄마, OO이가 학교에서 진짜 힘든 거 같아요. 드센 친구들이 많아서 학교가 진짜 재미없대요. 마음 맞는 친구도 없고, 공부도 기대했던 그런 공부도 아니라 하고.……”

한참 그 친구 걱정을 늘어놓더니 그러더라구요.

“우리 학교 좋다고,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잘 통하고, 친구들이지만 배울 게 많다고, 그런 이야기 할라다가요,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어요.”

“OO 앞에서 그런 말은 못 하겠어요. 니는 좋나? 하고 묻는데 너무 미안해서 뭐어 우리 학교도 그냥 그렇다 하고 말았어요.”

친구 걱정도 하면서, 그 친구 마음 헤아릴 줄도 알고……

몸만 건강해진 게 아니라 어느덧 그 마음도 자라는구나 싶어서 대견했지요.

그리고 서인이를 행복하게 해 준 산마을동무들,

서인이의 세계가 더 넓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어지도록

함께 어울려 자라는 산마을 여러 동무들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던지 모릅니다.

마음 같아서는 서인이 안아주듯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요즘은요, 어렵고 힘든 사람들 보면 내가 미안하고 죄스러운 거 있죠. 알고 보니까 다른 친구들은 유니세프니 어디든 조금씩 다 돕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요, 소외가정 어린이 돕는 단체에 조금씩 보태기로 했거든요. 내 용돈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게 했거든요.”

한 달 용돈 5만원 받는 것도 “남는데요!” 하고 기특하게 말하더니

그 돈에서 5천원을 선뜻 내놓는 마음을 가지게 해 준 것도,

산마을에서 세상을 보는 따뜻한 눈을 뜨게 해준 덕이고

또래 산마을동무들 덕이라 생각합니다.

모두 감사할 일이죠.

만날 때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대안학교, 산마을을 잘 선택했다는 믿음이 듭니다.

공동체의 힘이겠지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제 마음 감출 줄 모르고, 제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싶으면

서슴없이 쪼잘거리는 십대 아이들,

그 아이들 데리고 꾹꾹 눌러 참아야할 일도 얼마나 많았을까 짐작 됩니다.

그리고 학부모들의 기대를 생각지 않을 수도 없고,

아이들을 품었다가 세상으로 내보낼 때,

과연 이 아이들을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보내야 할까 하는

고민들도 정말 많으시리라 짐작합니다.

저 또한 서인이가 산마을을 떠나 세상에 나갈 때

어떤 모습으로 나가서 세상과 마주서는 것이 좋을까 하는 밑그림조차도 그려지지 않은 걸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스스로 세상을 향해 눈을 뜨고

여기서 가지게 되는 수많은 생각들이 영글어서 바른 신념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세상에 던져지더라도 당당한 자기 모습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보면 참 막연하고 대책 없는 믿음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믿습니다.

산마을 아이들의 힘을요.

자연과 평화, 함께 사는 세상!

산마을 공동체의 그 귀한 정신을 믿고요.


한 학기 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이리도 긴 주저리가 되었네요.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선생님들, 산마을식구 여러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무더운 여름 몸도 마음도 푹 쉬시고 2학기에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방학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


2011년 7월 20일 멀리 부산에서 서인어멈 드립니다.


PS. 

혹시 이 글 함께 보게 될 산마을 학부모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내 아이만 생각하지 않으시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식구의 눈으로

아이들 하나하나 넉넉하게 품어주시는 모습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모두 함께 자라는 내 아이라는 마음으로 품어주시니,

그 마음들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져서 함께 가는 길동무로서 더 깊이 사귈 수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오랜만에 품으로 돌아온 아들딸과 행복한 시간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