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학교 한 바퀴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보리/박선미)>에서

야야선미 2005. 3. 18. 01:18

“언니야들 하고 우리 학교 돌아보니 어때요? 좋은 곳이 많았어요?”

“예에”

쭈삣거리며 교실을 나설 때하고 달리 아이들은 아주 힘차게 소리 모아 대답한다.

“선생님, 일학년도 컴퓨터실에 갈 수 있지요?”

“응, 갈 수 있지.”

“급식실에 가보고 왔어요.”

“선생님, 교무실은 엄청 커요.”

“수희 언니야 하고 꿈동산에 갔는데요오 근데 꿈동산에는 큰 나무가 한 개 있어요.”

“은진이는 벌써 언니야 이름까지 알았네.”

“언니야가 다음에도 내 짝 한다고 했어요.”

입학식 날 이름표를 달아주고 한 번씩 안아줄 때 아무 거리낌 없이 내 가슴에 포옥 안겨들던 은진이. 다음 날에는 교실에 오자마자

“오늘은 안 안아줘요?”

하고 금방 마음을 열어주더니 육학년 언니하고도 금방 친해졌구나.

“나는 철봉 말고 저거요, 저게 제일 좋아요.”

정수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는데 정글짐이다.

“저거? 정글짐? 한번 올라가 봤나?”

“나는 마이 못 올라가고요, 형님아는 끝까지 잘 올라갔어요. 그런데요 저기는 올라가서 뛰면 안돼요. 살살 조심해야 안 다쳐요”

육학년 저희들끼리 놀 때는 위험한 장난을 잘도 치더니 일학년 동생들한테는 조심하라고 말한 모양이다. 녀석들 그게 위험한 짓인 줄 알긴 알고 있는 게지.

“나는요 하니 문방구에 갔어요. 하니 문방구는 학교에서 제일 가까워요.”

오늘 하루 짝이 된 육학년 언니들하고 두 시간동안 학교를 돌아보고 와서 아이들은 할 말이 많다.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았으니 학교에서 본 것으로 재미있게 한판 놀아야지. 먼저 앞에 앉은 한빈이 부터 시작한다.

“학교에 오면 과학실도 있고”

“학교에 오면 과학실도 있고 교장 선생님도 있고”

“학교에 오면 과학실도 있고 교장 선생님도 있고 정글짐도 있고”

“학교에 오면 과학실도 있고 교장 선생님도 있고 정글짐도 있고 침대도 있고”

“에이 틀렸다. 학교에 침대가 어딨노?”

“보건실에 있어요. 보건실에 침대 있어요.”

두어 시간 돌아보더니 제법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본 모양이다. 한 반이 두 줄로 주욱 서서 선생님들 따라 다닐 때보다 훨씬 잘 보고 온 것 같다.

“그럼, 오늘 가 본 곳 가운데 우리 다같이 가보고 싶은 곳은 없어요?”

“행정실은 뭐 하는 곳이에요?”

첫날, 강당에서 입학식을 마치고 오면서 눈에 보이는 글자는 다 읽으면서 오던 성욱이다. 그 날도 내가

“아이구우 우리 성욱이는 여기 적힌 것들 다 읽을 줄 아네!”

하고 나서야 조용해졌지.

“오우, 성욱이는 행정실에도 가 봤어요?”

“그냥 그 앞으로만 갔어요. 못 들어갔어요.”

“나는 교장실 앞으로 가 봤는데.”

“그럼 오늘 못 가본 곳으로 우리 다 같이 가볼까?”

입학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아이들은 복도를 다닐 때도 줄을 참 잘 선다. 왼쪽으로 사뿐사뿐 시끄럽지도 않다. 이런 모습이 언제까지 갈지. 이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마침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이 나오신다.

“어이구우, 우리 일학년들 학교 구경 다녀요?”

“얘들이 교장 선생님 방이 궁금하답니다.”

“그럼, 들어와 봐야지. 자아 들어오세요.”

올해 첫 손주가 입학을 한다고 하시더니 일학년 아이들을 보는 눈길도 말투도 확실히 달라졌다. 교장선생님 방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들어선다.

“자아아 여기 앉아보세요.”

길다란 의자를 가리키자마자 아이들은 우르르 의자에 앉는다. 좀 비좁긴 하지만 스물여덟 아이들이 모두 엉덩이를 밀어 넣고 앉았다. 키가 유난히 작은 한빈이는 심각한 얼굴로 한참 엉덩이를 요리조리 비비더니 겨우 등받이에 등이 닿았다. 그제야 얼굴이 활짝 개인다. 인제 교장실 여기저기를 살피느라 바쁘다.

“억수로 폭신하제?”

“야아 교장실에는 가습기도 있다 그쟈?”

“꽃도 억수로 많제?”

의자에 앉아 짧은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면서 저거들끼리 소곤거린다.

“교장선생님은 날마다 혼자 있어요? 안 심심하세요?”

“심심할 때도 좀 있어요. 그런데 바쁜 날이 더 많은데. 어어, 이 친구는 어제 왔던 친굴세. 이름이 머라캤지?”

영준이를 보시더니 반가운 얼굴이시다.

“바지 멜빵 고리가 고장이 났다고 내한테 고쳐달라고 왔는데 갑자기 뭘 고칠 수가 있어야지. 급한 대로 스테플러로 꽉 찍어줬지 뭐.”

입학하던 날, 첫날부터 눈물바람으로 와서 걱정을 많이 했던 아이다. 영준이는 까만색 줄무늬 양복에 무스를 발랐는지 윤기가 자르르한 머리를 위로 한껏 치켜세워 멋을 내고 왔다.  그런데 입학식을 다 마칠 때까지 엄마를 돌아보며 징징거려서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 학교에 쉽게 적응을 못하는 건 아닌가 하고.

둘째 날, 내 먼저 교실에 와서 아이들이 오는 대로 안아주고 말 한마디씩 건네고 자리에 앉혀주는데 영준이는 그냥 제자리로 가서 큰소리가 나도록 털썩 앉아버렸다.

“영준이 왜? 화났어? 속상한 일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붙여도 대꾸도 않고, 집에 갈 때까지 잔뜩 부은 얼굴을 펴지 않았다.

셋째 날도 영준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조잘거리지도 않고, 재미있어하지도 않았다. 자꾸 창  밖으로만 내다보다가 가방만 한 번씩 툭툭 찼다.

넷째 날 아침. 영준이 하고 이야기하는 날로 정했다. 먼저 온 아이를 무릎에 앉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영준이가 들어왔다.

“영준이 왔네. 자아 인제 수진이는 자리로 가고 영준이 하고 인사합시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가까이 갔지만 영준이는 한번 힐끗 보더니 그냥 제자리로 가서 털썩 앉는다.

“학교 오는 게 싫어?”

“엄마한테 꾸중 들었어?”

뭐라고 한마디라도 건네 보려는 나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꾸 머리만 만졌다. 그러고 보니 손바닥으로 머리를 자꾸 눌러 대서 무스를 바른 머리카락이 납작하게 달라붙어 다시마 한 조각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왜?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

그때까지 아무 대꾸도 않고 잔뜩 찡그려 있더니 머리 말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엄마가 이렇게 해 주셨어? 영준이는 이 머리 싫어?”

엄마는 입학하는 아들이 예쁘고 대견해서 어떻게든 멋지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게지. 그런데 영준이는 무스 바르고 양복 입고 조심스럽기만 한 낯선 차림이 싫고. 제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한테 속이 상해서 그동안 학교에서도 얼굴 한번 풀지 않았던 것이다.

“영준이가 이 머리 싫다고 말을 해 보지. 내 생각에도 머리감고 그냥 잘 말리면 더 멋질 것 같아.”

“말해도 안 들어줘요.”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 줄 수도 있는데. 그렇지만 영준이가 한 번 더 말해 보는 게 좋겠다. 어떻게 할까?”

“엄마한테 말해도 소용없어요.”

“영준이가 막 떼쓰고 울고 그러지 말고 차근차근 말을 해봐. 그러면 엄마가 잘 알아 들을텐데. 그렇게 말해도 엄마가 영준이 말 안 들어주면 내가 말해볼게.”

다음날 영준이는 양복도 안 입고 머리에 무스도 바르지 않고 왔다. 내가 두 팔을 벌리자 망설이지도 않고 포옥 안겨들었다.

그랬던 녀석이 운동장에서 놀다가 멜빵고리 고장났다고 교장실로 찾아와서 고쳐 달라했다니. 갑자기 확 커버린 것 같은 영준이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머리 모양 마음에 안 든다고 사흘을 징징거리던 그 영준이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