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물 들다
학원 안 다니는 ‘우리 동네 노는 아이들’이랑 풀밭으로 봄꽃 살피러 나간다.
풀밭까지 가지 않아도 길가가 다 꽃밭이다.
아주 쪼그만 개불알풀꽃, 보랏빛 광대나물꽃, 노란 민들레, 제비꽃, 냉이꽃.
작고 작은 꽃들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구석구석에서 제 빛을 낸다.
찔레나무 울타리아래, 다 허물어진 돌담 밑에.
키 큰 벚나무 밑 풀섶에, 거뭇하게 빛바랜 시멘트 담장아래, 그리고 목욕탕집 빗물받이 홈통에도.
“이건 뭐예요?”
“저거 개나리 맞죠?”
“까끌까끌한 거는 뭐예요?”
아이들은 작은 스케치북 하나에 연필 하나.
꽃을 찾아서 이리 저리 조르르 쫓아다닌다.
다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로 앞 풀밭에 한 아이만 남았다.
형우다.
근데 저 녀석 좀 보소.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구부정하게 굽혀서 뒤꿈치를 들고 사알살.
발끝을 옹종거리며 아주 조심스럽다.
얼마나 용이 쓰이는지 입술도 동그랗게 모였다.
조글조글 동그랗게 모인 입술이 깜찍하다.
발끝으로 걷다 기우뚱하더니 손가락을 뻗어서 옆에 늘어진 나뭇가지를 잡는다.
손으로 꽉 움켜잡는 것도 아니고 두 손가락을 펴서 가지 끝만 살짝 잡고 휘청거리던 몸을 겨우 바로 세운다.
다시 살금살금 걷더니 풀밭 밖으로 겅중 뛰어나온다.
보판 위에 서더니 탕탕 두 발로 힘껏 굴려본다. 발끝이 저릴 법도 하지.
“아아, 도저히 안 되겠어요.”
“왜, 뭐가?”
“밑에 작은 풀들이 엄청 올라오잖아요. 새로 나온 나뭇잎, 저거요. 연두색 반짝반짝하는 거요. 저거 좀 보고 개불알풀꽃 그릴라 했는데. 아아 참.”
종알종알하면서 풀밭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그 눈길이 참 안타까워 보인다.
“근데 쪼고만 야아들 다 밟겠어요. 발을 어디다가 대야할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엄청 깔려죽었을 걸요, 아아참”
아아, 그렇구나. 형우야.
니 맘에 봄물이 제대로 들었구나.
마른 잔디 틈으로 갓 피어 올라오는 풀잎들을 네가 봤구나.
그렇구나, 그래.
네 마음속으로 그 작고 여린 생명들이 스며들었구나.
눈에 띌 듯 말 듯한 파릇한 생명들이 내 가슴으로도 확 들어왔다.
저 어린 형우 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