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자전거 타고 온 동무들 - 강화에서 부산까지, 창훈이와 태우

야야선미 2012. 5. 12. 20:03

강화 산마을고등학교 2학년, 창훈이랑 태우가 자전거 여행을 나섰단다. 둘 다 서인이 반 동무들. 강화에서 부산까지 올 거라고, 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아들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려진다. 집 나선 지 닷새째. 꼬박 닷새 동안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고, 자동차가 다니는 옆을 달리다 강둑도 달리면서 드디어 여기 부산까지 왔다. 땀내 물씬 풍기면서 자전거 밀면서 들어서는 두 청춘. 내 아들도 아닌데 들어서는 모습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는다. 어찌나 기운차고 싱싱해 보이던지. 대견하고 장하던지.

이른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학교에서 학원으로 내몰리느라 광합성작용도 못한다는 요즘 고등학생들 얘기만 듣다가 땀내 흠씬 풍기는 고등학생들 보니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기까지 한다. 요즘 아이들 자기 생각이 없다느니 너무 연약하다느니 탓을 하지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요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는 게 요즘 우리 어른들 아닌가. 태어나서 제 삶을 제 스스로 온전히 살아보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온 삶을 부모 뜻대로, 학교 뜻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하는 요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주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기다려주고 아니 그런 것 다 집어치우고 그냥 제 스스로 자랄 수 있게 놔둔다면 어릴 때는 어린대로 사춘기엔 사춘기 젊음대로 자기 색깔을 찾아 빛을 낼 수 있을 거다.

오늘내일 우리 집에서 쉬었다가 다시 강화로 올라갈 아이들. 저 기특하고 대견한 아이들, 땀내 나는 빨래라도 해 주고 싶다. 빨래거리 다 내놓으라는 말에 “고맙습니다”하면서 땀에 절은 축축한 옷가지들을 선선히 내놓는다. 쭈뼛거리지 않고 선선한 그 태도 또한 푸릇푸릇 젊은이답다. 세탁기에 옷가지를 털어 넣으면서 또 한 번 뭉클해진다. 자전거 페달 열심히 밟으면서 땀 뻘뻘 흘렸을 이 아이들. 말이 쉬워 닷새지. 강화에서 부산까지, 그 거리가 어디 만만한 길인가. 자동차 타고 강화까지 가면서도 멀다고, 지친다고 얼마나 투덜거리던 먼 길인가. 그 먼 길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단념하지 않고 예까지 왔단 말이지.

부산까지 왔으니 자갈치 시장 회도 먹어보고 꼼장어도 먹어보라고 자갈치로 나간다. 회 접시를 앞에 놓고 이만하면 어른 대접해도 되겠다고, 맥주 한 잔 쯤은 먹어도 되지 않겠냐고 하니 시원스레 잔을 내민다. 맥주 한 잔 따르면서 ‘이 패기 꺾이지 말고 진짜 어른다운 어른으로 자라라’ 맘속으로 응원해 준다. 회 맛도 보고, 꼼장어도 먹고 밥까지 볶아서 닥닥 긁어 먹고. 둘러앉아서 자전거 타고 온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

모텔에서 잔 이야기는 씨익 웃으면서 가볍게 하고 건너뛴다. 그러고 나서 저녁 먹으러 들어갔던 식당 이야기를 한참 한다. 이야기 하는 아이들 얼굴에 고마운 마음이 묻어난다. 듣는 우리들 가슴도 따뜻해진다. 부산까지 자전거 타고 간다고 했더니 밥도 더 꾹꾹 눌러 퍼주고 자고 가라고 잠자리까지 내어 주었단다. 다음날 길 떠나는데 김밥까지 두 줄씩 둘둘 말아 쥐어 주었단다. 촌길에 사 먹을 데도 없을 테니 가다 배고플 때 먹으라고.  오는 길에 몸고생이야 많았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여러가지 깨달은 게 많단다. 여자 아이들처럼 종알종알 재잘재잘 말이 많지는 않지만 띄엄띄엄 들려주는 그 또한 듬직하다.

우스개 소리지만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 개고생 길을 스스로 나서서 예까지 온 아이들. 몸이야 개고생했겠지만 스스로 얼마나 뿌듯할까. “너거들 진짜 멋있다야. 우리 나라 고딩들 중에 너거 같은 아그덜 있다는 거이 희망이다. 장하다 장해”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른다.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걸 묻는다. “자전거 여행 어때?” 씨익 웃는다. 말로 하지 않으면 뭐 모르나? 힘든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 얼마나 뿌듯하고 대견할까?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이 얼마나 달고 맛있을까.

느닷없지만 이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둘레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온갖 시험에 시달리지 않으면, 끝도 없는 경쟁에 내몰리지 않으면 이렇게 자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교육이라는 핑계를 대며 누구나 본디부터 가지고 있던 저 푸릇한 생명력을 다 짓이기고 있구나 싶다.

세상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시간은 주지 않고 저희들이 만들어놓은 잣대에 맞춰 이리 끌고 저리 붙잡아 다니면서, 말로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길러주라고 주문들을 한다. 강인한 정신과 체력을 길러주라고,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길러주라고 온갖 프로그램을 들이댄다. 특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 기사만 나오면 바그르르 들끓지. 그것도 금세 가라앉고 말 말잔치들뿐이지만. 학교에서건 교육청에서건 학부모건 스스로 아이들 교육을 걱정한다는 이들 누구나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맞춤식 프로그램 몇 개, 모둠활동 몇 가지 해 본다고 자라는 것인가. 책 몇 권 읽고 교육용 동영상 몇 가지 보여주고, 거룩한 훈화 몇 번 한다고 길러지는 것들인가. 언감생심, 당치도 않지.

땀 뻘뻘 흘리며 기댈 사람 하나 없는 먼 길을 달리고, 몸 누일 곳 변변치 않는 낯선 길을 지나오면서 이 아이들은 스스로 가슴 벅차오르고 터질 듯이 뿌듯했을 것이다. 그 벅찬 기쁨은 오래오래 스스로를 이기고 견디는 밑거름이 되겠지. 맨몸으로 세상을 만나고, 그 세상 속에서 만났던 따뜻한 경험들은 이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거룩한 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은 더 깊어지고 겸손해지리라. 온실 속에서, 꽉 닫힌 교실에서는 절대 길러줄 수 없는 것들을 이 아이들은 스스로 온 몸으로 배우고 얻은 것들이지.

 두 밤 자고 부산을 떠나는 딸아이의 동무를 보내면서 든든하고 마음이 놓인다. 저런 동무들과 마음 나누고 부대끼며 함께 자랄 우리 딸아이. 봄방학 마치고 낼모레면 또 저 산마을로 돌아갈 텐데, 어째 이번에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