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산마을고등학교 아이들-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한여름밤의 꿈>

야야선미 2012. 2. 27. 21:40

아이들이 돌아갔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집은 또 적막강산. 이번에는 아이들 난 자리가 더욱 크고 쓸쓸하다.

열일곱 살 고등학생 딸래미들. 밀양연극촌 3박 4일 뮤지컬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가방도 풀기 전에 노랫가락이 온 집안에 흘러 퍼진다. 종알종알 한껏 들뜬 수다도 빠지지 않는다.

“준O 쌤한테 편지 써야지!”

“야아~ 우리 다 같이 편지 쓰자.”

“아, △△ 쌤한테 전화 해 볼까?”

“부산에 가마골 소극장 가면 그 샘들 공연한다는데, 한 번 더 갈까?”

“아, 보고 싶어. 가자, 가자아”

흐음, 함께 뮤지컬 했던 선생님들한테 푹 빠진 게지. 요즘 아이들 아이돌 가수나 멋진 배우들한테나 홀려 사는 줄 알았더니. 저렇게 함께 작업했던 선생님한테 빠져서 들뜨고 설레는 모습이 신선하기까지 하다.

“아, 서인이 좋겠다. 가마골 소극장도 가깝고”

한 녀석이 탄식인지 뭔지 볼멘소리를 한다. 지난 여름방학 때 밀양연극축제에 다녀와선 밀양연극촌이 가까이 있어서 부럽다더니……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밥상에 수저를 놓으면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이들 노래는 끝이 없다. 아직도 아이들은 뮤지컬 무대 위에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자신이 연기했던 <한여름 밤의 꿈> 중에 한 대사를 한다. 욕실에서 아직 세수하고 있던 아이가 욕실 문을 빼꼼 열고 노래를 받아 부른다. 거실에서 무언가 열심히 읽고 있던 다른 녀석이 그다음 대사를 받는다. 노래를 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추는 녀석까지. 우리 집 전체가 뮤지컬 무대가 된다. 워크숍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 있지만 여전히 뮤지컬 무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저 아이들. 얼마나 싱싱하고 파릇파릇 어여쁘노?

제각각 다른 색깔과 재주를 가지고 타고 났을 아이들. 그러나 세상이 만들어 놓은 똑같은 틀에 갇혀 제가 가진 고운 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과 다른 장점이 분명 있는데 그걸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기가 죽어가는 아이들.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 교과시험만으로 줄 세워서 비교되는 세상이다 보니 아이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주눅이 들고 기가 죽는다. 거기다 더 보태서 부모나 선생님이 닦달을 한다면 더욱 짓눌리겠지.

“우리 여름방학 때도 꼭 하자.”

“방학 때마다 하자.”

“그래 그래, 진짜 좋지?”

지난 여름방학 때부터 하고 싶어 하다가 워크숍 회비에, 왔다갔다 차비에, 이것저것 겹치는 일정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다고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벼르고 미루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번엔 저렇게들 다짐을 한다. 아이들 속에 잠자고 있던 ‘아이들 모습’을 제대로 긁어준 셈이다.

노래를 하다가, 연기를 해 보다가 아직 서툰 모습에 스스로 민망해하면서 까르륵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자꾸 저 무리에 끼어들고 싶다. 그러나 꾹 참는다. 잘못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되지.

노래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들썩, 엉덩이 허리가 돌아가던 때가 내게도 있었지. 소죽을 끓이다가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려 장단을 치면서 노래를 따라하던 그런 때가 있었지.

“가스나가 깝신깝신 그기 뭐꼬?”

늘 단정하고 조신하게 자랄 걸 주문하던 엄마 덕분에 어깨춤 한 번, 노래 한 가락 마음껏 풀어보지 못한 그 시절. 그래서 난 지금도 누구 앞에서 자신 있게 노래 한 번 못 한다. 이젠 누구 앞에서 노래라도 할라치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숨이 턱턱 막히고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예 지병이 되어버렸다.

좀 부끄럽고 어색해서 잠깐 동안 머뭇거리긴 하지만 자리가 깔리면 금방 젖어들어 노래하고 춤도 곧잘 추고, 연기도 하는 저 당당하고 의젓한 아이들.

아, 참 좋다.

아름답다.

저 청춘이 빛나고, 저 끼가 반짝반짝 어여쁘다.

우리 집 구석구석 흐르는 저 노랫가락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래서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은 잊혀지지 않을 또 하나의 뮤지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