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이들이 힘이다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보리/박선미)>에서
그림책 보고 있어라 하고 복사를 하고 오는데 교실 앞에 우리 아이들이 대여섯 나와 있다.
가까이 가면서 보니 대경이는 울상을 하고 엉거주춤 서 있고 선하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홍대도 대경이 손을 잡고 어쩌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왜 나와 있어? 대경이가 왜?”
“아아니요. 조금만 울었어요. 근데요오”
“응. 근데 무슨 일 있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아이들 앞에서 대경이 한테만 자꾸 마음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그런데도 나는 자꾸 대경이가 또 어쨌냐고 걱정을 먼저 한다.
“그게 아니고요오…… 나는 응가는 못 도와주겠는데……”
“아아아하. 대경이 응가한대?”
그래, 너거들이 아무리 잘 도와주어도 너거도 이제 겨우 일학년인데 어떻게 똥 누는 것까지 도와 주겠노? 화장실에 들어서자 대경이는 여전히 단추도 열지 않고 지퍼를 내리지도 않고 바지를 끌어내린다고 끙끙거린다.
“아아니, 대경아 이거 단추 먼저 열고, 또 이 지퍼 내리고. 인자 됐다. 인자 바지 내리고, 샤악! 잘 내려가지?”
“학교 참 좋다.”
“응, 학교 참 좋지?”
“친구 참 좋다.”
“맞제? 친구들이 참 좋지? 나도 우리 사반 동무들이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
“응. 나도 대경이가 참 좋다.”
변기에 터억 걸터앉아 똥 눌 생각은 않고 목소리도 낭랑하다. 이럴 때는 하나도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 같지 않다. 저어기서 아이들 떠들어대는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이제는 교실에 있는 스물다섯 아이들한테 마음이 쓰인다.
“대경이 응가 다 했다.”
“대경아, 봐라. 화장지 요렇게 한번 접고, 다시 한 번 더 접었지?”
“어. 나도 그거 할 수 있는데.”
“자아 똥꼬 한 번 닦고. 한 번 접어서 또 닦고. 다 닦았으면 요렇게 똥 닦은 거 안보이게 접어서 휴지통에 넣고.”
“어. 나도 그거 할 수 있는데.”
“그래. 내일은 대경이가 한 번 해 보자.”
똥을 시원하게 누고 나니 기분까지 좋아졌는지 내 손도 잡지 않고 혼자 교실로 간다. 우리 교실을 찾나 하고 뒤따라가는데, 이런 내 꿈이 아직도 이른가? 우리 교실 못 가 앞에 있는 삼반 교실로 쑥 들어간다.
뒤따라가서 대경이 손을 잡고 우리 교실로 들어서는데 북새통도 그런 북새통이 없다. 하긴 그림책 한 권 보는데 오 분이면 끝날 일학년 아닌가. 교무실 내려가 복사하고, 대경이 데리고 화장실 갔다 와, 지금까지 복도로 뛰쳐나오지 않고 그나마 교실 안에서 이렇게 뛰어노는 게 다행이지. 어디 부딪혀 넘어져 우는 아이가 없는 게 고맙다.
교실로 들어서던 대경이가 겁을 먹었다. 걸음을 멈칫 하더니 나한테 잡힌 손이 잔뜩 옹그라든다. 대경이는 시끄러운 소리에 겁을 잘 먹는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싸우거나, 넘어져 울기만 해도 같이 겁을 먹고 울먹거리기 일쑤다.
“대경아, 괜찮아. 동무들끼리 재미있게 논다고 그러는 거거든.”
“어이 사반, 예쁜이들. 대경이가 또 너거들 싸우는 줄 알고 겁낸다.”
그러는 사이 대경이 짝지 가은이는 대경이를 자리에 앉히더니 대경이 가방을 열어 오늘 준비물인 사진을 꺼내준다. ‘우리들은 일학년’ 책도 꺼내주고 색연필도 꺼내서 가지런히 챙겨주고 있다. 앞에 앉은 지훈이는 몸을 뒤로 돌려서 가방을 받아서 책상 옆 고리에 걸어준다. 저 아이들이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된 일학년들 맞나 싶다.
우리 대경이는 정신지체장애 2급이다. 나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세 살이 많다. 제때에 입학하기가 어려워 삼 년씩이나 입학을 미루었다가 올해 입학을 한 것이다.
처음 일학년 신입생 자료를 모아서 반 편성을 하던 날. 일학년 담임이 될 네 사람이 신입생 환경조사서를 대충 한 묶음씩 나눠 들고 주소대로, 생년월일대로 나누는데, 그때 마침 대경이 자료가 내 손에 쥐어졌다.
특수교육에 대해 아는 것도 정말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힘들 것 뻔히 알면서 남한테 미루는 것 같은 얄팍한 양심 때문에 그냥 우리 반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겁이 났다.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입학을 하고, 며칠을 지내면서 보니 대경이는 아주 작은 일까지 하나하나 날마다 되풀이해서 함께 해 줘야 했다. 책을 꺼내고, 가방을 챙기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실내화를 꺼내서 갈아 신는 것도 날마다 함께 해줘야 한다. 밖에서 놀다가 우리 교실을 찾아오는 것, 계단을 내려갈 때 손을 잡고 한 칸씩 아주 처언천히 내려가야 하는 것, 노래하고 춤을 출 때도 대경이는 특별히 손을 잡고 천천히 해 줘야 한다. 노랫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내 입을 보라 해서 아주 천천히 따라 불러보게 해서 노랫말도 익혀야한다.
아침에 엄마하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나랑 손을 잡고 대경이가 엄마 생각을 잊어버릴 때까지 교무실이든, 운동장이든 학교 뒤뜰이든 여기저기 한 십 분 가까이 돌아다녀 줘야 하는 것도 다른 아이하고는 다르다.
대경이를 달래며 학교 여기저기를 다니노라면 온갖 생각이 일어 머리가 복잡하다.
‘일학년이라도 장애가 심한 아이는 특수학급으로 보낼 수 있는데 정말 보내야하나?’
‘이 정도면 아주 힘든 것도 아닌데 우리 반에서 다른 아이들하고 어울리면서 함께 지내는 게 옳지. 그것도 못 참고 특수학급으로 보낼려고 하냐?’
‘다른 스물다섯 아이한테 소홀해지니까 그렇지. 아침 시간에 이래 교실을 비우면 다른 아이들은 우야노?’
‘박선미, 니가 맡겠다고 했으면 더 슬기로운 방법을 찾아야지 벌써 발 뺄 생각을 하나?’
‘그래도 대경이는 공부에 방해도 안 되고 얼마나 이쁘노? 잔손이 많이 가야하긴 하지만.’
제 손을 잡고 다니면서 별별 생각을 다하는데 그것도 모르는 대경이는 교무실에 가면
“대경이 여기 오고 싶었는데.”
초록색 부직포를 깔아 유리판을 덮어놓은 커다란 책상을 보면
“대경이 이거 좋다.”
노란 꽃이 핀 화분을 보면
“대경이 노란 꽃 좋다.”
한다. 대경이는 유난히 노란색을 좋아한다. 그렇게 엄마 생각을 잊으면 교실로 올라간다.
입학한 지 며칠쯤 되었나?
“선생님은 대경이가 제일 좋아요?”
내 책상 바로 앞에 앉은 선하다. 뜨끔하다.
“으응? 아아니 대경이가 제일 좋은 게 아니고. 대경이는 아직 좀 어려서 너거들 보다 더 많이 보살펴 줘야 하거든.”
말이 나온 김에 일학년 어린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한테 말을 하자 싶다.
“여러분, 지금 몇 살이지요?”
“일곱살요”
“여덟살요”
“혼자서 똥도 잘 누고, 양치질도 잘 해요?”
“예.”
“어렸을 때는 어떻게 했어요?”
“엄마가 도와줬어요.”
“혼자서 하지 왜 엄마한테 해 달라고 해요?”
“어리니까요.”
“그럼 우리 반에 좀 어린 동무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누군데요?”
“대경이.”
“엄마가 도와줘야 해요.”
“학교에는 엄마가 없는데 누가 해 줘요?”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없으면? 선생님이 많이 바쁘면?”
“형님이요.”
“우리 반에도 형님이나 누나 같은 동무가 많은데?”
“우리도 도와줄 수 있어요.”
“근데 대경이는 왜 좀 어려요?”
“우리 반에 하은이가 키가 제일 크지요? 또 키가 제일 작은 동무도 있지요?”
“내가 제일 작은데.”
앞에 앉은 정민이가 씨익 웃으며 말한다.
“다 같은 일학년이라도 키가 빨리 크는 사람, 키가 좀 천천히 나중에 크는 사람이 있거든. 마음도 그래요. 마음이 빨리 자라서 먼저 어른스럽게 의젓해지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천천히 자라서 어린 마음이 좀 오래가는 사람도 있어.”
“대경이가 그래요?”
“그런 것 같아. 대경이가 여러분처럼 빨리 일학년 마음까지 자라서 혼자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 하지?”
“도와줄게요.”
“내가 대경이를 좀 더 많이 도와줘도 되겠어요?”
“에에!”
어쩌면 저리도 시원시원한지.
그러고 나더니 우리 사반 아이들은 모두 대경이 보모라도 된 듯이 너도나도 대경이 손을 잡아준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시간에는 늘 대경이 옆에 서넛이 붙어서 손을 잡아준다. 누가 저 아이들을 보고 금방 입학해서 손길이 많이 가는 일학년 꼬맹이라고 말하겠는가.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발발 떠는 대경이지만 그렇게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아이들이 있어 대경이도, 나도 힘이 난다. 특수아를 맡아 어떻게 하냐고 미리 겁부터 집어먹은 나에게 우리 이 아이들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