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태풍 볼라벤께 드리는 기도

야야선미 2012. 8. 27. 17:06

<태풍 볼라벤께 드리는 기도>

...

아침 나절엔 햇빛도 빤하고 바람 한 점 없더니
두어 시간 전부터 바람이 살살 일어
제법 나뭇가지가 일렁이고 나뭇잎 차랑차랑 부딪는 소리도 접접 커집니다.

아파트 뒤 언덕배기엔
허리 구부정한 할매 할배들
벌써 서너 시간째 헌 장판을 가져다 덮고
노끈을 주워다 소나무에 꽁꽁 묶습니다.

팔월 한가위 대목에
우리 아파트앞 골목에 내놓을
열무며 애호박이며 하얀 박이며
아직 몇 번 따내지도 못한 고추며
한됫박 털까말까한 깨며
그 기세가 만만찮다는 태풍앞에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헌 비닐 장판 가져다 바람막이로 세우고
분리수거함에서 주워낸 비닐노끈 마디마디 이어서
이쪽 저쪽 소나무랑 묶느라 애가 터집니다.

이 불안한 폭풍전야에
가만히 눈만 뜨고 있을 수가 없어서
애만 태우고 앉았을 수만 없어서.

오전에 편집부 동무들한테 문자 보내길
'쎈 놈이 다가온다고 하니 탈없이 잘 지내시고...' 어쩌구
시간이 갈수록,
베란다 창문 덜컹이는 조금씩 들릴 때마다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쎈 분이 오신다"고 할 걸.

옛날 어른들은
된 병에도 궂은 날씨에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조심스레 공대하던데.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 분,
볼라벤께 부탁드립니다.

힘 쎄~신 줄 아니까,
뻗치는 힘 조금만 누그럽게
살살 지나가 주시이소.

아직도 한뎃잠 자면서 힘들게 싸우는 많은 사람들
노심초사 과실나무 가지 붙잡고 하늘 올려다보실 시골 어르신들
아직 여물지도 않은 나락 들여다보았다가
점점 검어지는 하늘 올려다보았다가 안절부절하실 우리 부모님들....
온 여름 찌는 더위 속에서 농사지어
이제 막 익어가는 깨밭이며 고추밭이며....
이 밭 저 골 동동거리실 고향의 어르신들,
어머니 등짝만한 지붕이며 얼굴 하나쯤 나올 만한 창문이며
고작 그것 하나 손 볼 여력 없어
늘 덜컹거리는 우리 이웃집
저기 아파트 뒷산에 주인없는 언덕배기 일구어
좁은 골목에 조막만한 좌판 펴놓고 하루하루 사는 우리 동네 할매들
부디 그런 이들 삶터를 지날 때 만이라도 좀 살살해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확 밀어버리고 싶은 곳 있더라도, 조금만 힘 빼시고
낮고 힘없고 아픈 곳 많은 연약한 우리 이웃,
부디
그 이들은 굽어살펴주이소.

지난 번 매미가 찾아왔을 때
세 얼마 주고 농사짓던 밭이며 비닐하우스에 차린 살림집이
한꺼번에 쓸려가버려서
하루아침에 몸 누일 곳 없어진 저 언덕배기 아저씨 아주머니는
어디 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이번에 그런 분들 없도록,
아주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