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네가 사는 이야기

함께 늙어간다는 것

야야선미 2016. 4. 3. 11:43

오랜만에 엄마한테 갔더니 할 얘기가 많다.

학교에서 한글 모르는 할마이 글 가르친다꼬 오라 캐서 거어 안 나가나.”

학교 안 비아 놓고 그래 라도 쓰네예.”

아이들이 줄어 폐교하고 텅 빈 채 있던 학교에 이젠 얼굴에 거뭇거뭇 까막딱지가 앉은 할매들이 채우는구나 싶으니 뭉클한가 싶다가 어느새 눈물까지 핑 돈다.

세종고등학교 영어 선생했다카던데, 육십 서이라카든가

정년하고 오시는 갑지예?”

노는 것도 장 놀던 사람이나 하지예. 쫌 놀아보이 안 되겠습디더. 교육 쫌 받고 안 왔슴미꺼. 그래도 차 기름값은 나옵니더 카민서 사람이 이바구도 잘 하고 하는 기 귀염상이라.”

시에서 지원을 좀 해주는 갑다. 우리 엄마 재미있겠네. 잘 됐다아아.”

, 시에서 공책도 사주고 학용품은 다 대주고 우리는 몸만 가면 된다. 요앞새는 밀양에 벚꽃이 피면 진해는 저리가라칸다꼬 강변에 꽃구경 가자카더라.”

일주일에 몇 번이나 갑니꺼? 노인당에만 가는 거 보다 덜 심심하고 좋겠다.”

지난번에 언젠가 그러셨다.

인자 노인당에서 내 나이가 젤로 많아, 젊은 사람들한테 짐스럽나 싶어서 나갈 때마다 마음이 찌인다.”

하긴 젊은 사람들이라는 이들이 모두 칠순을 훌쩍 넘긴 아지매들이다.

아이고오 그 아지매들 고맙네. 젤로 나이 많이 무운 우리 엄마 모시고 놀아줘서.”

정말로 나는 그 아지매들이 고마웠다. 자식들 많다 해도 다들 멀리 떨어져 있지. 날이면 날마다 노인당에 어울려 밥이든 국수든 해서 나눠먹는 아지매들이 있으니 우리가 이래 걱정없이 떨어져 살지.

엄마, 내일 노인당 가서 아지매들한테 맛있는 거 한번 사이소.”

지갑 열어 얼마 없는 돈 몇 장 꺼내 쥐어드리니 사양 않고 받으신다.

그래, 이거는 우리 딸이 줬다하고 내놓으께.”

이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명절이나 생신날 같은 때 말고 우리가 얼마라도 쥐어 드릴라면 펄쩍 뛰시던 양반이다. 아직까지는 손 안 벌리도 된다꼬.

그 뒤로는 가끔 생각나면 마음이 짠하고 무거웠다. 엄마가 동네서 젤 나이 많은 할매가 되었구나, 할매들 사랑방에서 뒷전에 앉아 젊은 할매들 노는 거 구경만 하시는 거 아닌가 쓸데없는 걱정이 되기도 했더랬다.

신문에 나오는 이바구도 해주고 제법 유식한 말도 해 준다. 노인당에 화투만 치는 거보다 재미난다.”

할머이들 지금 이거 비안다꼬 윽시기 마이 알겠슴미꺼? 고마 이래 읽어주는 것도 듣고 세상 돌아가는 소리도 듣고, 글자 공부는 쪼매이쓱 하고예. 이카면 치매도 안 온담미더. 사람이 웃낀데이. 조불조불 캐싸도 밉지가 않아.”

엄마는 그 한글교실이 재미있나 보다. 한글교실 이야기가 끝이 안 난다.

그런데.

챙피시럽구로 가지마라카이 자꾸 간다 아이가.”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툭 내뱉으신다.

챙피시럽기는. 일자무식 할마이하고 살았는 기 챙피시럽소? 박선생 할마이가 이 나이꺼정 한글도 모르고 살았다카는기 그래 챙피스럽는가베?”

하악! 엄마가 우리 앞에서 아버지한테 정색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아아들 핀지는 안 읽나? 쪽지도 쓸 줄은 알고. 그카면 됐지. 더 할라카머 내가 가르쳐주께.”

아이고, 됐구메. 내 혼자 읽고 말지. 일자무식 할망구한테 장개 들어서 아직도 후회스럽겠네.”

엄마가 우리 앞에서 이렇게 길게 타박하고 화내는 것도 드물지.

후회는 안 한다. 이 날꺼정 이래 잘 맞차 살고, 아아들 다 잘 키아놨제. 회회는 안 해 봤다.”

으와아아. 이건 정말 드물다 못해 희귀한 일이다. 아버지가 엄마 말에 단번에 이렇게 순순히 끝을 내시다니.

겨우내 찬바람 들라 비닐까지 창문에 덮씌워 바람 한 점 드나들지 못한 방에, 퀴퀴한 할매할배 냄새가 나는 이 방에 앉아 두 분을 보고 있자니 ,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