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우리 엄마 감밭

야야선미 2009. 11. 21. 17:36

우리 엄마 감밭

엄마한테 갔다 온다. 노랗게 익은 모과를 한 상자 따서 실었더니 차안에 모과향이 그득히 퍼진다. 산모롱이를 돌아오다 우리엄마 감밭을 내다본다. 며칠 전 첫추위에 얼었던지 감나무 잎이 단풍도 들지 못하고 시들하게 말라붙은 그대로다. 푸릇한 이파리가 시든 채로 우중충하게 붙어 있는 감밭은 참 을씨년스럽다. 나무꼭대기 쪽으로 따고 남은 감이 드문드문 달려있어 그나마 감밭이구나 싶게 한다. 감밭이 을씨년스럽든 말든 붉은 감이 몇 개 남았든 말든 차는 무심하게 달린다. 감밭이 저만치 멀찍이 보이다가 조금씩 멀어진다. 몸을 돌려 감밭을 보다가 창을 내리고 아예 고개를 쭈욱 빼고 본다. 몸이 더 돌아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창밖에 붙은 뒷거울로 비춰 본다. 거울 속에서도 감밭은 점점 멀어지더니 차츰 스러진다.

오불고불 굽은 길을 따라 더 달리다보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감밭이 보인다. 감밭은 이제 흐릿하게 스러지고 들머리에 가져다놓은 컨테이너만 눈에 들어온다. 저 낡은 컨테이너도 엄마 손때가 묻은 것이다. 낫이며 호미며 물을 끌어다 댈 고무호스며, 추울 때 덮어 입을 옷가지며, 일하다 한 잔 타 마실 커피까지. 저 낡은 컨테이너가 엄마 발걸음을 많이 덜어주었지. 웬만한 건 집까지 가지 않아도 저 안에 있는 것들로 해결할 수 있으니. 그리고 이제 그 컨테이너도 눈 밖으로 아주 사라졌다.

감밭은 멀어져 보이지 않는데,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면서 한 마디 한 마디 토해내던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자꾸 따라온다.

“익은 감을 한 거 따가 밭고랑에 부려놨는데, 감나무 밑에 고랑이 벌겋도록 쏟아놨는데, 그걸 선별한다고 신랑각시 앉아서 만지고 있는데, 그걸 보이 고마 눈물이 퍽 쏟아지는 기라.”

“할배 진지상은 속여도 가을 밭고랑은 못 기신다 안 카더나. 봄여름에는 그렇거니 하고 지나댕겼는데, 그 넘이 익어놓으께 또 다른 기라. 벌건 감이 산더미겉은데 억장이 무너지는 기라.”

“상품 안 되는 거는 좀 갖다 먹으라카더마는 근처도 못 가겠더라.”

“오라캐도 안 갔더마는 짜잘한 거 두 상자 보내 주더라. 그거라도 쫌 갖다 묵던동.”

떨리는 엄마 목소리가 아직도 쟁쟁하게 귓전을 울린다. 어찌할 틈도 없이 와락 눈물이 쏟아진다. 엄마 말처럼 ‘퍽 쏟아진다.’ 는 그 말이 딱 맞구나. 손수건이고 손바닥이고 갖다 댈 새도 없이 쏟아지는 걸. 뒤늦게 손수건을 꺼내 눈두덩을 꾹꾹 누르는데 손도 떨린다. 콧물까지 나와서 눈 닦은 수건으로 코도 팽 푼다. 귀까지 멍멍해진다. “모과향이 너무 세나?” 말수 적은 서방님은 모른 척 모과 탓을 한다.


엄마는 지난해에 감밭을 팔았다. 그 감밭을 팔기까지 애를 참 많이도 피웠다. 공항이 들어오느니 마느니, 보상을 받으면 그냥 파는 것 보다 나을 거니 아닐 거니, 공항이 들어와 봐야 알지 믿을 수도 없다느니. 철 지날 때마다 보이지도 않는 공항이 온 동네를 들었다 놨다 하기를 벌써 여러 해 째. 그럴 때마다 안 팔고 머뭇거리다가 얼마를 손해 보게 생겼다느니, 팔지 않길 잘했다느니 입을 대는 사람도 많았다. 갈 때마다 엄마는 속 태운 얘기를 했다.

“좀 숙지막하더마는 또 끓었다가 식었다가 온 동네가 들썩거렸다. 진짜로 오기는 오는 긴지.”

“농사 지어 평생 요 장단이 요 장단인데, 갖고 있으면 얼매가 오른다니, 얼매가 손해라니 카는데. 우리겉은 농꾼이 그 돈을 평생에 만져 보기나 했나? 그렇기 큰돈이 왔다간다 해쌓는데 간이 오그라져서 함부래 팔지도 몬한다.”

“눅지근하이 있을라 캐도 하도 들었다 놨다 쑤셔쌓으니 속이 시끄러버서, 고마 딴 데 가서 귀 딱 막고 있으마 싶을 때도 많다.”

사실 말이지 엄마 속을 끓이는 건 땅금이 오르는지 내리는지 하는 따위 하고는 거리가 좀 멀었다. 평생을 그 밭 한 뙤기에 엎드려 살았지 않은가. 하늘이 희끔해오면 밭으로 나가서 해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엎드려 파먹던 밭 한 뙤기. 그 밭을 이제 팔아야할지 더 붙들고 있어야할지, 하루라도 빨리 팔아 이래저래 쪼들린다는 자슥들한테 줘야할지 그것들이 더 속 타게 한 것이다. 하나 둘도 아닌 아들들, 다니러 올 때마다 하나같이 어렵다는 말은 해쌓지. 이거 팔아 보태면 허리 좀 펼 수 있을란지, 하나 둘도 아니고 어느 밑에다 갖다 넣어야 넣은 표라도 좀 날런지. 엄마는 그걸로 더 애를 태웠다.

거기다가 동네가 한 번씩 들썩일 때마다 한 가지 근심이 더 보태지곤 했던 거다. 좀 더 오래 갖고 있으면 지금보다 더 불려서 물려줄 수 있을라나? 금 좋다고 덜렁 팔았다가 나중에 시세 더 올라가면 원망이라도 듣지 않을라나? 붙들고 있다가 정작 내놓았을 때 임자가 안 나서면 그 일은 또 우짜겠노? 옆에서 보기만 해도 엄마는 하루도 그 속이 편칠 않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내게로 화살을 돌렸다.

“하나있는 니라도 좀 피이게 살지. 어째 그래 사는 기 똑같은지.”

“하나라도 피이면 따라서 조금씩 피일낀데. 우째 그래 똑같이 어렵다카는지.”

그러다가 지난 해 봄 어느 날. 함께 점심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불쑥, 아니 토하듯이 아주 간단히 말했다. 등 뒤에서, 혼자 멀찌감치 앉아서.

“감밭 팔맀다.”

짧게, 아무 감정도 섞지 않은 듯 아주 메마른 듯한 말이지만 나는 느꼈다. 떨리는 목소리를 얼마나 애써서 참고 있는지. 하고 싶은 말도 얼마나 많은데, 그걸 꾹꾹 눌러 참고 또 다잡고 있는지. 그 숱한 섭섭함과 밀려오는 허망스러움을 감추려고 얼마나 용을 쓰고 있는지. 그릇을 씻는데 들고 있는 그릇이 자꾸 미끄러져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설거지를 마치고 마루로 나가니 엄마는 빛 드는 마루 끝에 앉아있다.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엄마, 감밭 팔아서 속 시원하겠다. 감 솎아낸다고 목이 떨어지도록 아플 일도 없고,  감 따러 온나, 냉해 입겠다, 거름 넣어야 되겠다, 가지 쳐야 된다, 그래 애 안 피워도 되고. 후련하지요?”

엄마 손이 바르르 떨렸다. 윤기 하나 없이 까슬까슬한 손, 여기저기 검은꽃이 핀 메마른 손, 평생 농사일에 거칠어지고 투박한 우리엄마손. 그 손이 소짓종이보다 더 가냘프게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도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데 엄마가 먼저 말했다. 내 손에 잡힌 그 손을 빼서 도로 내 손을 꼭 잡고.

“아이구, 야야. 니가 학교를 그만 두었을 때, 니 맘이 이랬지 싶어서. 니 맘을 내가 인자 알았다. 에미라 카는 기 니 속을 그렇기 몰랐다.”

엄마 목소리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똑 떨어졌다. 엄마 앞에서 우는 것이 뭐 대단한 흉이라고, 나는 엄마 앞에서는 울지 않겠다했지. 그런데 눈물이 그만 똑 떨어져버렸다.

“몇 십 년을 자고새고 엎어져 살았구마는. 그 밭 사서 얼매나 좋았던지. 그 밭이 인자 넘으 밭이 됐다 싶으니 어째 이래 허망시러운지. 속이 이래 녹아내린다. 이십년 넘게 댕기던 직장을 그만 뒀는데 니 속은 우쨌겠노. 내가 니 맘을 그렇기 몰랐대이.”

엄마는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마당을 내려다보다가 그래도 눈가로 눈물이 번지자 내 손을 놓고 눈을 닦았다. 아, 나는 그럴 때 정말 내가 싫었다. 엄마를 어떻게 위로하고 어떻게 힘이 되어줄지, 도대체 아무 생각도 나질 않으니.

“감밭 팔고 나면 우리 엄마 편하게 됐다고 좋다캤더마는. 할마씨, 아직도 농사에 미련이 있습니꺼. 인자 고마 좀 쉴 때도 됐지 뭐. 나는 인자 괘안습니더.”

뭔 말이라도 한다는 것이 고작 그 말밖에 나오질 않는다. 눈물을 참으려니 목소리가 겉잡을 수 없이 떨린다. 더 말도 못하겠고 마당을 좀 내려다본다. 마당에 상추가 야릿야릿 곱게 자라고 있다. 씨 뿌려 싹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저 길쭉한 남새밭도 마당에 심어 놓은 잔디를 반쯤 파내고 엄마가 밭으로 만들어 버린 거다. 덕분에 우리는 밥 안쳐놓고 나가서 상추 뽑아다 씻고, 된장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풋고추 따와서 썰어 넣기도 한다.

“그런데 우예 그래 빨리 팔았습니꺼. 임자는 어데 있어도 따로 있다카더마는, 팔릴라 카이 그래 쉽게 팔리네.”

“그렇기. 너거 아버지가 어데 홀맀던 기라. 이래 재고 저래 따지고 그렇기나 약게 뒤를 재어 쌓더마는 팔라카이 하룻저녁에 계약서 쓰고 왔능기라.”

“내가 딴 기 섭섭한 기 아이라, 내 평생에 그 밭에 엎드려 산 세월이 얼만데, 한마디 말도 안하고 혼자 계약하고 와서, 감밭 팔았대이 카는 기라.”

“억장이 무너져서.”

“노망이 온 것도 아이고. 홀맀던지 씌었던지. 너거 아버지가 사단이라카이.”

언제고 팔 감밭이었다. 제 금만 받으면 팔겠다고 여기저기 여러 곳에 손을 넣어 두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하룻밤새 아버지 혼자 팔아버렸다고, 그게 야속하다고 아버지를 탓한다. 자슥한테 줘서 허리 조금 펴라고 팔기로 한 밭이다. 그러면서도 동네 사람들한테는 그 속내도 다 얘기하지 못했다. 그저 인자 농사 그만 짓고 좀 편하게 살고싶다고 말해야 했다. 그래, 남들한테 말 못하는 그 애틋하고 아까운 마음을 어째 달랠까. 육십년 다 되도록 한 이불 덮고 산 영감한테 만만한 탓을 돌리는 수밖에. 괜히 영감 탓을 하는 엄마 손을 잡고 겨우 울먹이던 가슴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엄마, 엄마 나이에 그래 일 많이 하는 사람도 없습니더. 인자 고마 쉬고예.”

“몇 년 더 갖고 있을 걸 빨리 팔아 섭섭하다 생각지 말고, 아들 몇 년 더 빨리 자리 잡는다고 생각하이소. 몇 년 뒤에 땅금 더 오를지 몰라도, 그 사이에 엄마 아들 허리가 몇 년 더 빨리 안 피이겠어요.”

그래도 엄마는 한 마디 더 한다.

“내가 머라 카나 어데, 너거 아버지가 밉어서 카지. 사람이 나섰으면 나섰다고 말이나 하지. 아침에 밥 묵으면서 감밭 팔았대이 카더라. 그기 야속시럽은 기지.”

“아버지가 잘못 하긴 했네 뭐. 그 감밭이 엄마밭이지 아버지꺼가?”

진짜다. 오로지 엄마 밭이었다. 수십년을 그 밭에서 자고새고 엎어져 살았던 단 한 사람 우리 엄마. 엄마 밭이지.


그러구러 해가 바뀌고, 지난봄이었다. “엄마”하고 들어섰는데 집에 아무도 안 계셨다. 또 밭에 나가셨구나 하고 감밭으로 갔는데 있어야할 엄마는 안 보이고 낯선 사람 둘이 일하고 있었다. 그때야 ‘아, 감밭을 팔았지, 참.’ 싶었다. 부부인지 젊은 남자와 여자는 갈쿠리로 감나무 밑에 쌓인 가랑잎을 싹싹 긁어모으고 있었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풀들도 갈쿠리에 뽑혀 나갔다. 어디서 신나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나무 밑에 커다란 카셋트를 가져다 크게 틀어놓았다. 덥던지 웃옷은 벗어 감나무에 걸어놓고 속옷 바람이다. 참 뜬금없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런닝구를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이다. 새하얀 런닝구, 그러니까 도시 사람. 그것 때문이었을까. 우리엄마 감밭을 인자 저 사람들이 접수했구나 싶어서 그랬을까.

한동안 멍멍하게 바라보고 섰다가 뒤돌아섰다. 이제 엄마가 여기서 손을 놓았구나, 그래 이제 우리엄마 감밭이 아니지. 속이 쓰리고 아린다. 지난해에 감밭 팔렸다고 했지만 그래도 실감하지 못했던 거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이리로 오면 엄마는 늘 여기, 이 밭에 있었다. 뒤돌아오는데 제법 멀리까지 노랫소리가 들린다. 카세트 노래 소리는 그 들판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그날 알았다.

집에 와서 한참 앉았으니 엄마가 큰 자루를 들고 들어선다. 마당에 자루를 거꾸로 들고 터는데 돈냉이가 쏟아진다. 돌미나리도 나온다. 우리 아이들이 잘 먹는 것들이다.

“너거 온다 캐서 이거 캐로 갔다 아이가.”

“아이구야, 이기 이래 많이 컸습디꺼?”

엄마만 아는 데가 있다. 돈냉이가 깨끗하게 자라는 곳. 엄마 감밭 바로 위쪽으로 밭도 논도 멀어서 농약도 안 날아가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물도 깨끗한 곳. 그래서 엄마는 늘 거기를 찾아가서 돈냉이도 걷어오고 돌미나리도 베어온다.

“엄마가 안 계시길래 감밭에 갔더마는. 다른 사람들이 일하고 있어서 바로 왔지. 그 우로도 한번 살피 볼 걸.”

“그리 와도 못 만났을 거로. 내 거기로 안 갔다.”

이 말만 들었지만, 엄마 속을 알 것 같다. 감밭에 다른 사람이 일하고 있는 걸 본 내 속도 그렇게 아린데 엄마 속은 어떨까.

“아, 딴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니까 인자 진짜로 넘으 밭이 됐구나 싶대예. 기분 진짜 꿀꿀하더라.”

너스레를 떠는데 엄마가 담담하게 아니 아주 감정하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그쪽을 아직도 못 쳐다본다. 감밭 근처에서는 고개도 그 짝으로 못 돌리겠다.”

그래, 엄마는 나보다 더 가슴이 저리겠지. 엄마 저린 가슴을 생각하니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잠자코 돈냉이를 다듬고 돌미나리나 가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인자 아이들한테 ‘할매표 돈냉이 비빔밥’은 그만 찾으라고 해야지 마음먹었다. 감밭 쪽으로 고개도 못 돌리겠다는 우리엄마. 손자 준다고 감밭 바로 위에 있는 돈냉이를 걷으러 가게 할 수는 없지.


제법 시간이 흘러 벌써 가을. 이래서 자식 키워놓아야 아무 소용도 없다고 했는가. 나도 잠깐 까먹고 있었다. 엄마가 감이 벌겋게 익어가는 것 보니 속이 타더라는 말을 하기까지. 모과를 따서 상자에 주워 담으면서 엄마가 그랬다.

“그래도 큰 기 좀 낫더라. 너거 큰 오래비가 전화했더라.”

“감이 익어서 넘들 감 따는 거 보이께 엄마 속이 아프지요, 낼모레 가서 맛있는 밥이나 한 그릇 사 드리께 카더라.”

아, 나는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 딸이라카는 기 좀 곰살스럽게 챙기고 해야 하는데. 오빠는 역시 오빠다. 어째 그런 마음을 먼저 먹고 전화를 했을까. 그래서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구나. 혼자서 미안하고 죄스럽기만 하다.

“아이고 나는 그 생각을 못했네. 역시 아들이 낫네.”

그렇게 눙치고 넘어가려는데 엄마가 그랬다.

“그렇기는 그렇다. 감이 푸를 때는 또 잘 모르겠더마는, 익은 감을 한 거 따가 밭고랑에 부려놨는데, 감나무 밑에 고랑이 벌겋도록 쏟아놨는데, 그걸 선별한다고 신랑각시 앉아서 만지고 있는데, 그걸 보이 고마 눈물이 퍽 쏟아지는 기라.”

“할배 진지상은 속여도 가을 밭고랑은 못 기신다 안 카더나. 봄여름에는 그렇거니 하고 지나댕겼는데, 그 넘이 익어놓으께 또 다른 기라. 벌건 감이 산더미겉은데 억장이 무너지는 기라.”

“상품 안 되는 거는 좀 갖다 먹으라카더마는 근처도 못 가겠더라.”

엄마가 한 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모과를 든 손이 자꾸 떨렸다. 눈앞이 흐려져서 겨우겨우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아아, 우리엄마 감밭.

“엄마, 내 돈 좀 벌면 그 감밭 도로 사 주께. 쫌만 기다려 보이소.”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을 때 같으면 그렇게 허풍이라도 한 번 칠 텐데. (2009.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