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당신
<국화꽃 참산댁이>
유월, 봄꽃들 다 지고 푸른 잎이 무성한 마당.
보름만에 온 친정, 참산댁이네 마당에는 아직도 볼 것이 많다.
어느 집에서 한 꼬투리 얻어와서 뿌렸다더니 어느새 양귀비가 보랏빛 꽃을 피웠다.
정말 꽃 중에 꽃 답다.
한 꼬투리를 얻어왔다더니, 꽃은 보랏빛 꽃도 있고 자줏빛 꽃도 피었다.
한 꼬투리 속에서도 이렇게 다른 빛깔들을 품고 있었구나.
언젠가 절에 갔다 오면서 한 줄기 끊어 왔다는 담쟁이는 서너 해만에 담장 한편을 다 덮고서 초여름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학교 김 주사한테서 얻은 매발톱과 금낭화도 이젠 꽃잎이 떨어지고 씨꼬투리를 달고 있다.
내가 그렇게 목을 매던 산나리도 두 포기 나란히 서서 까만 씨를 총총총 매달고 간들거리고,
서너 포기쯤 올라온 엉겅퀴도 거름좋은 마당 한 옆에서 껑충하게 커서 보랏빛 꽃을 피우고 섰다.
벌레먹은 배추도 자라고 있고, 어디서 파 왔던지 둥굴레도 옹기종기 자라고 있다.
할미꽃 몇 포기, 유난히 하얀 치자꽃, 못 쓰는 약탕관을 주워다 심어놓은 춘란, 키 큰 가죽나무, 가시달린 엄나무 한참을 둘러보아도 지겹지 않은 마당이다.
뒤늦게 발갛게 핀 석류꽃 아래,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못 견디고 잎을 추욱 늘어뜨리고 있는 국화 모판이 눈에 들어온다.
딸네집 창가에서, 며느리네 거실 한켠에서 흐드러지게 필 국화를 생각하면서
올해도 어두워질 때까지 들일을 하고 들어와, 지친 몸을 끌고 어둑한 마당에 구부리고 앉아 줄기를 잘라 꽂아두었겠지.
"내가 또 이거를 하머 내가 국화다."
지난 가을, 국화 화분을 마루로 들여다 놓으면서 엄마는 또 섭섭한지 그렇게 내뱉었다.
"와예, 이래 좋은 거를. 집안이 다 환하구마는."
"팔십을 넘바다 보는 할마이가 뭔 청승으로 자꾸 해 쌀끼고? 반갑다고 하나썩 들고 갈라나 싶어 해 놓으면 날마다 이래 들놨다가 내놨다가, 이기 애물이다."
"그래 고생시럽어도 이래 이뿌기 키워놓으이 딸도 들고 가고 집도 환하고 좋기만 하구마는."
"니나 좋다카까, 언 넘이 치다 보기나 해야 말이제."
"마루가 환하이 집이 훨씬 따뜻해 보이고 좋네예. 아들이고 며느리고 주지 말고 다 여어 다 놔두이소.
한 개라도 빼내면 안 어불리겠구마는. 하나하나 놓은 기 딱 지 자리네. 아아 그래도 내꺼는 두어개 주이소.
나는 해마다 엄마가 키아주는 국화 갖다 놓을라꼬 자리 딱 비아놓고 기다린다 아입니꺼."
"됐다, 고마. 비위 안 마차 줘도 된다. 아아가 안 그렇더마는 나를 묵을수록 간살시럽노?"
"나이를 묵어 간살시러버 지는 기 아이고, 우리 엄마가 해 주는 거를 인자사 그 공을 아는 기지."
엄마는 피식 웃으면서 또 국화를 들여다보고 자잘하게 달라붙은 잔봉우리를 떼어내고 있다.
"이거는 올개 처음 핸 긴데. 꼬불꼬불하이 참하제? 학교 김주사가 들고 나오길래 한 가지 뚝 뿔라다가 살맀는데 이래 장하기 컸다. 장골이 주먹 두 개도 되겠제?" (2004.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