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천국이면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보리/박선미)>애서
내일은 쉬는 토요일이라!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마음이 가배얍다.
“어이구우 우리 강생이들, 잘 잤쪄?"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꽃봉오리가 잔뜩 맺힌 자스민나무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려본다. 수줍은 듯 올라오는 아기둥굴레도 한번 보고 며칠 전에 뿌려놓은 돈나물 뿌리도 한번 둘러본다. 아직 숨지 못한 민달팽이도 한 마리 찾았다. “저기 너른 세상에서 자알 살아래이.” 살살 집어서 창밖으로 내 보낸다.
집을 나설 때도 엘리베이트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발걸음도 토통통 리듬을 탄다. 학교 올라가는 걸음도 한결 가볍다. 몇 걸음 앞에 기훈이가 올라간다.
“기이 훈아아아”
내 기분이 전해졌나? 기훈이도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좌악 벌리고 돌아서 안긴다. 일학년 담임하는 맛이 이런 거다. 조금만 더 커봐라, 이렇게 포옥 안겨 드는가.
“니이 손이 와 이래 차갑노?”
내 말엔 대답도 않고 “저기 정민이 오는 데요.” 한다.
정민이 손까지 잡고 셋이 나란히 교문을 들어서는데 연희도, 홍대도 어디서 봤는지 달려온다.
“선생님, 오늘 청바지 입었네요.”
“아가씨 같아요.”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교실로 들어가는 기분도 참 좋다. 나들간에서 신발을 벗는데 대경이 어머니가 나오신다.
“대경이는예?”
“교실에 있어예. 아이들하고 노는 것 보고 나왔어예.”
교실에 들어서다가 내가 있는 것을 보고서야 엄마 손을 겨우 놓던 대경이가 오늘은 내가 없는 데도 엄마를 보냈단 말이지.
“아이구 우리 대경이 인자 다 컸다. 지 혼자 떨어져있고.”
“다아 선생님 덕분입니더.”
“아, 아니예요. 대경이가 빨리 마음을 열어줘서 그렇지예.”
“선생님이 이뻐해 주는 거를 지가 알아서 그렇지예.”
“아입니더. 우리반 아이들이 더 대경이를 이뻐합니더. 이기 다아 아이들 힘입니더.”
“예에, 아아들도 고맙고예. 선생님 마음이 아이들한테도 마음이 통하는 갑습니더.”
이렇게 주고받는 인사도 그저 고맙고 따뜻하다. 저만치 교실이 보이자 홍대가 먼저 내닫는다.
‘저 녀석, 뛰지 말고 걸어서 다니자 했는데……’
그렇지만 오늘은 소리쳐 나무라지 않는다.
“선생님 온대이.”
먼저 달려간 홍대는 교실 문을 열면서 크게 외친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온다.
역시나 일학년이다. 이학년만 되어도 ‘선생님이닷!’ 소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을 펴고 자리에 먼저 앉을 텐데. 누가 이렇게 달려 나와 나를 이리도 반갑게 맞아줄까. 오늘은 이렇게 요란하게 우르르 달려 나오는 이 일학년들이 새삼 사랑스럽다.
“어, 선생님! 오늘 예쁘네요?”
이 말은 언제 들어도, 누구한테 들어도 기분이 좋다. 나도 콧소리를 잔뜩 섞어서
“그래요옹? 고마워용. 윤지도 아주 예쁘네요옹.”
“선생님, 청바지 입으니까 날씬하네요. 한 스물 몇 살쯤 되는 거 같아요.”
“어머나, 하은아 고맙다야. 내가 그래 젊어 보인단 말이지.”
“자아, 우리 예쁜이들 이제 자리에 앉아 봅시다.”
가방을 여기저기 동댕이쳐 놓고 있다가 이제야 가방을 끌고 자리로 돌아간다. 귀현이는 가방이 거꾸로 된 줄도 모르고 필통도 흘리고 크레파스도 다 흘리고 나중에는 빈 가방만 끌고 간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벗어던졌는지 웃저고리도 벌써 서넛이 여기저기 바닥에 널렸다.
“자아, 이 옷도 가져다 걸고. 다아 밟겠다.”
학급문고 앞바닥에는 벌써 이야기 짜 맞추기 그림판이 한데 섞여서 어지럽게 널렸다. 다 떨어진 그림책을 잘라 놀이판으로 만든 거다. 가지고 놀 때는 참 좋은데, 서른 가지나 되는 걸 이렇게 다 섞어놓으면 하나씩 찾아 담을 때는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이걸 어쩌나?’
“4반! 우리 색깔 놀이하자.”
색깔 놀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자아, 보라색 1번!”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순이 어디 가니> 퍼즐 한 장이 모아졌다.
“다음에느으은 하늘색 2번”
<흥부와 놀부> 그림이 금방 다 모아졌다. 그냥 색깔만 찾자니 좀 심심하다.
“자아, 인자는 색깔마다 약속을 정하는 거다. 빨간색을 찾으면 엉덩이 흔들기, 노랑은 엉덩이 흔들면서 머리도 흔들기, 파랑은 엉덩이 흔들고 머리 흔들고 팔도 흔들기, 보라색은 머리 흔들면서 오른발 굴리기, 하늘색은 머리 흔들고 오른발 굴리면서 왼발도 굴리기.”
“시작한다아, 파랑색 1번”
온 교실이 난리가 났다. 엉덩이 흔들고 머리 흔들고 팔도 흔들고. 저거들끼리 부딪혀 자빠지고, 책상에 부딪혀 넘어지고. 그래도 우는 아이는 없다.
“선생님, 어지러워요.”
“하지말까?”
“아니요, 또 해요.”
춤추고 놀면서 이야기 그림 서른 장을 다 모으는데 십 분 걸렸다. 기분이 좋아지면 머리도 좋아지는 거야. 이런 재미난 생각이 곧바로 떠오르다니. 내 머리에서 말이지.
“오늘 첫 시간 공부는 국어 말하기듣기입니다. 요렇게 생긴 책 꺼내 보세요.”
칠판 앞에 말하기 듣기 책을 세워 놓는다. 글자를 모르는 정민이랑 지훈이는 책을 하나씩 꺼내서 그림하고 맞춰보느라 한참이 걸린다.
책 찾기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을 살펴보는데 지원이가 한쪽 다리를 책상 밖으로 내어 놓고 쭉 뻗치고 앉아 있다.
“지원아, 다리는 책상 안으로 넣고 바르게 앉아야지.”
다리를 한번 움찔하더니 그대로 쭈욱 뻗친 채로다. 귀현이가 학급문고에 책을 꽂고 달려 들어오다 지원이 다리에 걸렸다. 다행이 다치진 않았다.
“지원아, 거 봐라 다리를 그러고 있으니 귀현이가 걸려서 넘어지잖아.”
조금 있다 다시 봐도 지원이는 다리를 아직도 뻗친 채 그대로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지를 무릎 위로 걷어 올려붙였다. 가만히 보니 무릎에 손바닥만한 파스를 붙였다.
‘아하, 이거였구나.’
지원이 옆에 앉으며 무릎을 쓸어주고 아는 척을 한다.
“우리 지원이 다리 아픈가 보네. 어쩌다가 그랬쪄? 마이 아팠쪄?”
지원이는 그제서야 다리를 쭈욱 끌어당긴다.
“어제 밤에 많이 아팠는데요오, 인제 괜찮아요.”
“그랬쪄? 그래도 잘 참았쪄요?”
“나는 일학년이니까 울지는 않았어요.”
“많이 아팠을 텐데 안 울고 참았다고? 우리 지원이 대단하다아!”
“이거요오. 성장통이예요. 많이 큰다고 아픈 거래요.”
“와아, 그러면 우리 지원이 많이 크겠네. 참기도 잘 참고.”
어깨를 툭툭 쳐주고 내 자리로 와서 돌아보니 지원이는 벌써 다리를 책상 안에 가지런히 놓고 바르게 앉았다. 바지도 끌어내렸다. 눈도 반짝이면서 나를 본다. 고개도 끄덕여가며 잘도 듣는다. 내가 칠판 앞으로 가면 칠판 앞으로, 책상 앞으로 가면 책상 앞으로 고개를 잘도 돌려가며 나를 보아 준다. 이제 지원이하고 나는 한 몸이 된 듯하다.
국어 말하기 듣기 시간.
이번 시간에는 ‘동무들 앞에서 또렷하게 말하고, 들을 때는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듣는’ 공부를 한다. 나는 자라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동무들한테 이야기 해주고, 다른 사람은 동무들의 꿈이 무엇인지 잘 들어보기로 한다.
경찰관이 되고 싶은 아이, 간호사가 되고 싶은 아이, 선생님이 되고 싶은 아이가 많다. 언젠가 119 구조대를 다루는 TV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던 무렵에는 119 구조대원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아주 많더니, 올해는 얼마 전에 있었던 야구대회 때문인지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아이도 제법 있고,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아이도 여럿 있다.
윤지는 책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신혁이가 나왔다.
“예, 저는 사탕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탕 먹으면 이빨 썩는데.”
신혁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앞에 앉은 석우가 한마디 한다.
“그래, 맞다.”
“사탕은 먹으면 안 되는데”
다른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나선다. 신혁이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섰다.
‘아아. 이 일을 우짜노?’
신혁이는 사탕 공장집 손자다. 할아버지가 사탕공장 사장님이시다. 그래서 신혁이도 사탕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지.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짧은 시간에 나는 어떤 말을 해 줄까, 생각만 많은데
“이빨 안 썩는 사탕 만들면 되지.”
지원이다.
“예, 저는 이빨은 안 썩고 맛은 좋은 사탕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원이 말을 듣고 신혁이가 환해진 얼굴로 크게 말한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손뼉을 친다. 나는 아주아주 크게 손뼉을 친다. 지원이가 고맙고, 신혁이도 예쁘고. 손뼉을 치는 이 아이들이 모두 꽃처럼 예쁘다. 내 마음이 천국인 날은 아이들도 모두 천사가 된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