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네가 사는 이야기

우리동네, 우리동네 사람들

야야선미 2009. 2. 10. 09:31

이 집에 이사 올 때만 해도 참 갑갑했지. 남들은 공기 좋은 동네로 이사 간다는데, 우리는 남들이 빠져나가는 공단언저리로 들어왔으니 말이지. 그것도 돈이 없어 돈에 맞는 집 찾아 오다보니 더욱 마음이 싸아 했지. 그래도 ‘한 오년만 여기서 살자.’ ‘오년쯤 살면 다른 데로 이사 갈 수 있겠지.’ 하면서 정을 붙이고 살려고 애썼어. 그른데 세월이 후딱 흘러 벌써 칠 년째 접어든다는 거야. 살다보니 정이 든 것인지 오년 만 오년 만 하는 것도 잊고 언제 오년이 지났는지도 모른다는 거야. 정이든 건지, 살기 바빠 그런 건지. 아마 살다 바빠 그런 게 더 맞겠지. 그러구러 살아보니 공기 나쁘고 교통이 불편한 거 빼고는 별로 나무랄 데가 없어 그냥 살아진 건지도 몰라. 집 값 헐어서 넓은 집에 살지. 이 돈으로 어데 가서 이래 넓은 집 살 수 있겠냐고. 청소할 힘도 없고 게을러터진 내가 굳이 넓은 집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그래도 이 집 판 돈으로는 스무평 남짓한 아파트 전세값도 안 된다데.

집값이 좋아서 좋은 것도 있지만, 내같은 촌년이 살기에 딱 좋다는 거야. 그 가운데 젤 마음에 드는 거는 아파트 꽃밭이고 뭣이고 간에 빈 땅만 있으면 살살 파 엎어서 고추도 심고 상추도 심고 하는 동네라는 거. 그리고 그거를 잘 나눠 준다는 거.

재작년인가 그 앞 해인가 언제 한번은 집에 들어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풋고추를 따서 씻고 계시는 거라. 점심 드실 모양이야. “인자 점심 드실라고예? 점심이 마이 늦었네예. 거참 고추농사 잘 지었네예. 아삭아삭 맛있겠다.” 그러고 들어왔어. 집에 들어오니까 바로 며칠 전에 촌에서 얻어온 된장이 생각나는 거라. 생된장에 고추를 찍어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그 생각만 해도 침이 고여. 조그만 통에다가 떠서 얼른 가지고 내려갔지. 도시락을 펼쳐놓고 막 드실 참이라. “이 된장에 한번 찍어 드셔보이소. 친정에서 얻어온 건데 쌈장보다 훨씬 맛있던데예.” 돌아서 오는데 잘 먹겠다고 잘 먹겠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셔. 뭘 된장 조금 가지고, 나도 얻어온 건데. 그래 싶으니까 민망하데.

다음날 일요일 날 누워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오셨어. “된장이 우찌 맛있던지. 우리 클 때 먹던 된장 맛 그대로데예. 우리 클 때는 물에 보리밥 말아가 된장 한 덩어리 퍼다 놓으면 한 끼 뚝딱했는데..” 그러면서 먹어보라고 풋고추를 한 웅큼 주시는 거라. 경비실 옆 잴쪽한 빈 자리에 고추 여남은 포기 심은 거 다 아는데 그걸 한 웅큼이나 딸 게 어데 있다고. 그래도 그 마음이 어찌나 고맙던지 받아서 아주 달게 달게 먹었어.

그 다음해 봄에 아저씨가 또 땅을 살살 파 일구고 계셔. 마침 과일 가게에 고추 모종을 팔길래 몇 포기 사다 드렸지.  아뿔싸 그런데 일이 커져 버린 거 있재. 그 해는 고추를 볓 번이나 따다 주시는 거야. 괜히 아저씨 일만 더 시키는 거 같아 민망하고 고맙고 그래도 그렇게 오고가면서 주고 받을 게 있어서 고마웠지. 작년에는 아저씨 힘들게 하지 말자 싶어서 그냥 지나갔거든. 우리 열 줄 아줌마 한 분이 방울 토마토 모종하고 아삭고추 모종을 사다 드렸다는 거라. 그래 작년에는 풋고추에다가 방울 토마토까지 한 줌씩 얻어먹었어.

퇴근해서 집에 들어갈 때 마다, “서인이 방금 들어갔습니더”. “서인이 학원 가던데예.” “서인이가 얼매나 싹싹한지.” 꼭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주는 우리 아저씨. 김서인 아빠는 그기 고마워서 자기 마실라고 술 사오는 날은 아저씨 소주도 꼭 한 병 사고, 마른 안주도 하나씩 챙긴다니까. 긴긴밤에 잠 안 자고 앉았을라면 얼매나 지겹고 힘들겠냐면서. 근무 시간에 술 드시게 하는 거 안 좋은 거라고 해도 김수철은 그란다. “그 술은 술이 아이고 약이다, 약” 이래 어불려서 살다 보이 그래 고마 이 동네는 우리 동네가 다 됐는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