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에 서면 / 박노해 아이 앞에 서면/ 박노해 아이 앞에 서면 막막한 사막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당신은 제게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전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네요 대숲을 흔드는 바람이 불고 은하수가 흐르는 밤이 오면 오래된 꿈과 전설과 사람의 도리와 유장한 강물 같은 이야기가 .. 시 한 편 2012.08.29
시 / 곽재구 시 / 곽재구 눈 오시네 와온 달천 우명 거차 쇠리 상봉 노월 궁항 봉전 율리 파람바구 선학 창산 장척 가정 반월 쟁동 계당 당두 착한 바닷가 마을들 등불 켜고 고요히 기다리네 청국장에 밥 한 술 들고 눈 펄펄 오시네 서로 뒤엉킨 두 마리 용이 빚은 순금빛 따스한 알 하나가 툭 얼어붙은 .. 시 한 편 2012.08.27
옥수수, 엉겅퀴 / 임길택 옥수수 / 임길택 옥수수를 땄는데 옥수수가 따뜻했다. 금세 햇살들이 옥수수 속에 숨어들었다. <<산골아이>>(2010, 보리) 엉겅퀴 꽃봉오리 아니어도 좋아요. 꽃술이 아니어도 좋아요. 잎 끄트머리 가시 하나 흙에 묻혀든 실뿌리 하나 그 어느 것으로라도 내가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 시 한 편 2012.08.27
꽃의 학교 / 타고르 꽃의 학교 / 타고르 어머니, 꽃은 땅속의 학교에 다니지요. 꽃은 문을 닫고 수업을 받는 거지요. 아직 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놀러 나가려면 선생님이 한쪽 구석에 세워두는 거지요. 비가 오면 쉬는 거예요. 숲 속에서 나뭇가지가 부딪치고 잎은 심한 바람에 솨아 솨아 소리지르.. 시 한 편 2012.08.26
절망 / 김수영 절망 /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 시 한 편 2012.08.25
북쪽 동무들 / 권태응 북쪽 동무들 / 권태응 북쪽 동무들아 어찌 지내니? 겨울도 한 발 먼저 찾아왔겠지. 먹고 입는 걱정들은 하지 않니? 즐겁게 공부하고 잘들 노니? 너희들도 우리가 궁금할 테지. 삼팔선 그놈 땜에 갑갑하구나. (1948년) 『감자꽃』(권태응/창비1994) 시 한 편 2012.08.23
빈집 / 이상교 빈집 / 이상교 할머니, 아기, 장롱, 항아리 강아지 집 다 데리고, 가지고 이사를 가면서 집은 그냥 두고 가더란다. 오막살이여도 내 집이어서 제일 좋은 우리 집이라고 자랑삼을 땐 언제이고, 다락, 툇마루, 문지방 댓돌이 울더란다. 미닫이문이야 속으로 울었겠지. 이사 가는 걸 끝까지 지.. 시 한 편 2012.08.18
시인 2 / 함민복 시인 2 / 함민복 암자에서 종이 운다 종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는 것은 종이 속으로 울기 때문이라네 외부의 충격에 겉으로 맞서는 소리라면 그것은 종소리가 아닌 쇳소리일 뿐 종은 문득 가슴으로 깨어나 내부로 향하는 소리로 가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로 다시 가슴을 쳐 울음을 낸다네 .. 시 한 편 2012.08.16
밤 눈, 노인들 / 기형도 밤 눈 / 기형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 시 한 편 2012.08.01
초저녁 / 임길택 초저녁 / 임길택 별이 뜬다 별들이 뜬다 탄바람에 하나도 날리지 않고 탄더미에 하나도 묻히지 않고 저탄장 산마루에 폐석 더미 위에 초저녁 별이 뜬다 꿈처럼 뜬다 *<<탄광마을 아이들>> (실천문학사, 1990) 시 한 편 2012.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