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 “한 달에 한 동네에 시집 와서 육십 년 넘기 잘 지냈는데.” 달빛도 없는 대보름날 밤, 나란히 누운 엄마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불 안으로 손을 넣어 엄마 손을 가만히 잡는다. “젊어 바깥양반 보내고 엄한 시집 사니라 고생도 많고 애도 마이 낄있구마는, 고마 핀히 했으이 됐다.” ..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7.10.07
국화꽃 당신 <국화꽃 참산댁이> 유월, 봄꽃들 다 지고 푸른 잎이 무성한 마당. 보름만에 온 친정, 참산댁이네 마당에는 아직도 볼 것이 많다. 어느 집에서 한 꼬투리 얻어와서 뿌렸다더니 어느새 양귀비가 보랏빛 꽃을 피웠다. 정말 꽃 중에 꽃 답다. 한 꼬투리를 얻어왔다더니, 꽃은 보랏빛 꽃도 ..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6.08.21
문 바르는 날 문 바르는 날 음력 팔월이 되면 도무지 식을 것 같지 않던 뜨거운 햇살도 누그러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거든.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도 무논에서 피를 뽑거나 밭에서 풀을 매면서 하루해를 보내던 어른들도 이렇게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는데..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6.08.21
감나무 한 그루 잎이 다 진 감나무. 마른 가지에 미처 다 따지 못한 감이 얼었다 녹았다 빨갛게 홍시가 되었어. 시리도록 새파란 겨울 하늘이 붉은 홍시 뒤로 더욱 푸르네. 마른 행주를 들고 동무가 따 주는 홍시를 닦아. 독에 모두 넣고 감식초를 담을 거야. 감식초 담글 때를 놓치긴 했지만, 아까운 감을 ..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5.01.07
이불 한 채 “엄마 엄마, 저기 노을 좀 보라니깐” 등 뒤에 하늘은 붉은 듯 푸른 듯 노을이 얼마나 고운데.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미영만 따고 있어. “엄마아 아으아아아” 허리 좀 펴고 한 번만 돌아보면 되겠구만. “노을이 홍시 색깔만 있는 게 아니고오, 보라색이 있는데, ..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4.10.07
사진 한 장 사진 한 장 해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서쪽 하늘가가 불그스름한가 싶더니 금세 어둠살이 좁은 마당 가득 내려앉았다. 엄마는 딸네가 들어서는 줄도 모르고 어스름한 마당가에 앉아 화분을 들여다보고 앉았다. “해도 저무는데 뭐 하십니꺼?” 화분마다 서너 대씩 실하게 자란 대국, 엄마..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3.10.07
태풍 볼라벤께 드리는 기도 <태풍 볼라벤께 드리는 기도> ... 아침 나절엔 햇빛도 빤하고 바람 한 점 없더니 두어 시간 전부터 바람이 살살 일어 제법 나뭇가지가 일렁이고 나뭇잎 차랑차랑 부딪는 소리도 접접 커집니다. 아파트 뒤 언덕배기엔 허리 구부정한 할매 할배들 벌써 서너 시간째 헌 장판을 가져다 덮고..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2.08.27
할매를 불러보세요 17 - 그림처럼 곁에만 있어도 좋아 그림처럼 곁에만 있어도 좋아 “야야, 해 넘어 가기 전에 어서 빨래 걷어야 되겠다.” “예에, 나갑니더.” 야야는 숙제를 하다가 얼른 달려 나갔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해가 있었는데 어느새 어두워졌다. “이쪽은 아직 덜 말랐어예. 내일 또 널어야 되겠어예.” 덜 마른 빨래를 골라 대충 개어 소쿠..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0.09.30
할매를 불러보세요 16 - 길동무 길동무 할매는 말을 하다가도 기운을 잃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 숨소리가 어찌나 가냘픈지 듣고만 있어도 가슴팍이 찌르르 저렸다. 할매는 홀로 앉지도 못했다. 밥을 먹을 때도 일으켜 앉혀서 누군가가 할매를 끌어안고 뒤에서 받치고 있어야 했다. 안고 있던 팔에 조금만 힘을 빼면 할매는 스..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0.09.30
할매를 불러보세요 15 - 세상을 놓아버리고 세상을 놓아버리고 ‘아아아, 미칠 것 같아. 이러다가 나도 병이 나고야 말거야. “할매예, 제발 나도 혼자 좀 조용히 있고 싶거든예. 사랑방에 있어도 좀 봐주면 안되예?” 야야는 할매한테 간절하게 부탁도 해 봤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5분도 못 되어서 “야야” “야야” 불러냈다. 날이 갈수록 할.. 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2010.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