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할매를 불러보세요 16 - 길동무

야야선미 2010. 9. 30. 17:23

길동무

할매는 말을 하다가도 기운을 잃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 숨소리가 어찌나 가냘픈지 듣고만 있어도 가슴팍이 찌르르 저렸다. 할매는 홀로 앉지도 못했다. 밥을 먹을 때도 일으켜 앉혀서 누군가가 할매를 끌어안고 뒤에서 받치고 있어야 했다. 안고 있던 팔에 조금만 힘을 빼면 할매는 스르르 옆으로 넘어졌다. 그렇게 일으켜 앉혀 뒤에서 안고 있을 동안 엄마는 할매 입에 미음을 흘려 넣었다. 야야는 엄마가 미음을 드릴 동안 할매를 쓰러지지 않게 받치고 앉아서 자꾸자꾸 울먹였다. 모든 것이 맨 처음에 할매가 쓰러졌을 때처럼 돌아가 버렸다. 아니 그때보다 더 심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할매가 내를 얼마나 이뻐했는데.’

‘그렇게 이뻐하던 강생이를 고생시킨다 싶으니 할매가 그런 마음을 먹은 거야.’

야야는 짜증내고 귀찮아하던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할매는 다 알았을 거다. 아니 나중에는 숨기려고 애도 쓰지 않고 대놓고 귀찮아했지.

할매 손을 닦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요강만 보아도 눈물이 났다. 할매한테 한참 짜증이 날 땐 분풀이라도 요강을 팽개치다시피 놓고 획 들어가 버리곤 했지. 할매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을 많이도 한 것 같아 정말 괴로웠다.

“할매예, 제가 자꾸 짜증내서 그랬습니꺼?”

“할매예, 제가 잘못했습니더. 할매를 진짜 싫어하는 것 아닙니더.” 그래도 할매는 야야가 울먹이면 기운하나 없는 손을 꼼지락거려 야야를 다독거렸다. 눈을 껌벅거리면서 울지 말라고 달랬다.

다행이 할매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물에 젖은 한지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누웠던 할매가 차츰차츰 일어났다. 붙잡아 안아 드리지 않아도 물 마실 동안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담뱃대로 걸레를 끌어다 상 앞에 흘린 밥알을 훔칠 수도 있게 되었다. 미음을 드시다가 죽을 드시고, 다시 밥으로 바꾸었다. 이젠 제법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마루에 좀 나가자.”

마루 끝에서라도 바깥 구경을 하시고 싶겠지. 딱 보름이 걸렸다.

“바람이 선들한데예. 괜찮겠습니꺼?”

아직 힘이 오르지 않은 팔을 내저으면 자꾸 나가자고 조른다. 할매 혼자 엉덩이를 밀면서 문턱을 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할매를 안아 올렸다. 야야는 할매가 기운을 차렸다고 기분 좋게 할매를 안았다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다. 할매는 너무나 가벼웠다. 따듯하고 포근하던 젖가슴도 손에 만져지지 않는다. 언젠가 짜부라진 연밥 꼬투리를 보고 ‘저 것이 내 꼴하고 똑같제.’하시던 말이 떠올라 더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할매 속을 다 파먹고 할매는 이렇게 껍데기만 남아 짜부라졌구나 싶어서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다.

“안장실 할매 놀러 오라 캐라.”

할매가 안장실 할매를 다시 찾았다. 야야는 나는 듯이 대문을 나섰다. 안장실 할매를 모시러 가면서 이렇게 신바람 나게 달려간 적이 있었을까.

“아이구, 할마씨 인자 다 컸네. 혼자 앉아서 기다리고.”

“이 몹쓸 양반아, 우째 혼자만 갈라고 나섰더노?”

안장실 할매가 들어오자 “하아아악 하아아” 할매는 울음을 토해냈다. 안장실 할매는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마구마구 토해냈다. 할매는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연신 꼼지락거리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안장실 할매가 더듬더듬 두 손을 내밀어 두 할매가 손을 맞잡았다.

“둘이 의지하고 살다가 혼자 가버리면 나는 우예 하라꼬. 내사 앞도 못 보는데 동무를 우예 찾아가라고.”

안장실 할매 말을 들으면서 할매는 숨이 넘어갈 듯 울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우리 질 날 얼마 안 남았다고, 그때 길동무해서 같이 나서자고 말해놓고.”

야야는 오랜만에 “하아아 하아아‘ 우는 할매를 보니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고, 까딱하면 할매를 영영 볼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자 죽을죄를 지은 것 같아 곁에 서 있을 수가 없다. 부엌으로 달려가 부뚜막에 앉아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었다. 두 할매도 손을 맞잡고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와 이래 조용하지?’

혹시 울다가 할매 숨이라도 넘어간 건 아닌가 왈칵 불안하다. 다행이 할매들은 손을 잡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할매는 눈이 반쯤 풀린 채 마당을 내다보고, 안장실 할매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울었으니 기운이 다 빠진 건가? 다 쏟아내고 나니 속이 후련한 건가.

“동서, 좀 나았다 카더마는 일어나 앉았네.”

작은집 은산 할매가 오지 않았다면 두 할매는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 은산 할매는 마루 끝에 앉아 담배부터 찾았다. 신발도 벗지 않았다. 안장실 할매가 옆에 놓인 담뱃대를 더듬더듬 찾아 건넸다. 봉지담배를 끌어다가 담뱃대에 꼭꼭 눌러 채우더니 길게 빨아들였다. 은산 할매는 볼 때마다 그렇게 아주 길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야야 할매가 뻑뻑 몇 번 뻐끔거리는 것 하고는 아주 달랐다.

“두 빙신 할마이들끼리 잘 있네. 어쩌고 있노 싶어서 왔더마는.”

야야는 눈물이 퍽 쏟아졌다. 어찌 할 틈도 없이 그대로 퍽 쏟아져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 할매를 그렇게 봤을까?’

야야는 봄에 할매가 쓰러지고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안장실 할매를 모셔 같이 지내면서도 그런 말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야야는 당황해서 할매를 봤다가 안장실 할매를 봤다가 어쩔 줄 몰랐다. 두 할매는 그 말에 들은 척도 않고 낯빛도 바뀌지 않았다.

“나와 앉은 것 보이 다 나았는가베.”

담뱃대를 입에 물고 쭈욱 빨았다.

“자식 농사 잘 지은 거야 알았지마는.”

은산 할매는 담배를 또 한 번 쭈욱 빨아들였다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동서가 큰며느리는 잘 봤다. 그런 며느리 없었으면 죽었지러, 벌써.”

은산 할매는 재떨이를 끌어다 담뱃대를 탕탕 두드려 재를 털고 일어섰다.

“도도한 참산 질부가 속은 너른 갑다. 빙신 할마이들 붙여놓고 사는 거 보이.”

야야는 두 눈까지 뒤집히는 줄 알았다. 어떻게 저렇게 말 할 수가 있을까.

“빙신은 빙신들끼리 잘 노소. 나는 갈라구메.”

말 끌마다 그런다. 야야는 입에도 올리지 못할 말이다.

‘치이, 아우가 반년 넘게 앓아누웠는데 겨우 서너 번 찾아와 보면서. 참 말뽄새도 있으셔.’

야야는 은산 할매가 저만치 나가는데도 못 본 척 하고 속으로 빈정댔다. 엄마가 알았으면 또 한참 잔소리를 들었겠지만.

“할매, 좀 선들한데예. 방에 들어가시지예?”

할매를 안아서 문턱을 넘으면서 야야는 속으로 자꾸자꾸 말한다.

‘할매, 우리 할매. 옛날처럼 곱지 않아도 되고예, 저를 자꾸자꾸 불러다 시켜도 되고예, 하루에 수십 번 오줌 뉘어 달라 캐도 됩니더. 제가 다 할게예.’

‘안장실 할매도 제가 다 해 드릴게예. 손도 잡아 드리고예, 변소도 모시고 가고예.’

야야는 두 할매가 ‘길동무, 길동무’ 할 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오늘 보니 두 할매가 정말 좋은 길동무구나 싶다. 할매랑 육십평생 한 식구로 의지하고 살아온 형님, 은산 할매가 아니라 앞뒷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안장실 할매가 진짜 길동무였다. 문득 할매 하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나 내나 쪼매마 더 살다가 자는 숨에 지면 좋으련만. 당신은 내 다리 되어주고, 내는 당신 눈이 되어서 항꾼에 길동무해서 나서면 좋으련만.’

그때는 귀찮은 듯 흘려들었던 말이다. 힘들고 쓸쓸할 때마다 할매는 어떻게 이겨내었을까? 그리고 도저히 이겨낼 엄두가 나지 않아 자는 숨에 지고 싶다던 그 바람도 버리고 스스로 세상을 버릴 생각을 하셨겠지. 야야는 두 할매를 내려다보았다. 할매들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이 잔하면서 또 잔잔하고 편안한 마음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