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할매를 불러보세요 15 - 세상을 놓아버리고

야야선미 2010. 9. 30. 17:22

세상을 놓아버리고

‘아아아, 미칠 것 같아. 이러다가 나도 병이 나고야 말거야.

“할매예, 제발 나도 혼자 좀 조용히 있고 싶거든예. 사랑방에 있어도 좀 봐주면 안되예?”

야야는 할매한테 간절하게 부탁도 해 봤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5분도 못 되어서 “야야” “야야” 불러냈다. 날이 갈수록 할매는 혼자 있는 것을 싫어했다. 식구들이 다 있을 때는 낮잠도 잘 자고 염주를 굴리면서 혼자 잘 앉아 있었다. 엄마가 들일을 나가고 아버지도 나가고 나면 할매는 외롭고 쓸쓸해지는 건지. 그때부터 야야를 불러대기 시작해서 해가 넘어갈 때까지 입을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할매가 그러면 그럴수록 야야는 쉬고 싶다가 혼자 있고 싶다가 나중에는 멀리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면 도망을 가고 싶었다. 마음이야 굴뚝같아도 그러지는 못하고 야야는 할매한테 점점 못되게 굴었다.

처음 할매가 아팠을 때는 힘겨워하는 걸 할매가 눈치라도 챌까봐 조심하고 혹시라도 할매 마음 불편할까봐 애써 낯빛을 감추었다. 할매도 그랬다. 처음에는 야야가 힘들까봐 두 번 부를 걸 참았다가 한 번만 부르려고 애썼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야야는 할매한테 점점 함부로 굴고, 할매도 야야를 쉴 새 없이 불렀다. 눈앞에서 안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 불러내어 바로 앞에 앉아 있도록 만들었다. 마치 할매하고 전쟁을 하는 것 같다. 야야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겹고 무서운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 가니 날이 제법 쌀쌀해져서 할매는 마루에 나와 있는 날이 점점 줄고 방에 앉아 문을 열어 놓았다. 방문 두 짝을 활짝 열어젖혔다가 선득해지면 한쪽 문만 열어두기도 했다. 날이 점점 더 서늘해지면서 할매는 한 며칠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야야를 불러대고 콩이야 팥이야 참견하던 할매가 갑자기 조용히 있으니까 야야는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했다.

‘내가 할매한테 너무 못되게 굴었나?’

‘아아, 할매가 제발 좀 그냥 내버려두면 좋겠다 싶더만 할매가 가만 놔두니까 더 이상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편안했다. 할매가 이제 아픈 걸 받아들이고 참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바람이 별로 차지도 않은데 방문이 두 짝 모두 닫혀있다.

“할매예.”

할매가 큰방 문을 여는 대신 엄마가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나왔다.

‘인자 진짜 밭에 안 나가도 되나? 가실이 다 끝났는가베.’

엄마가 큰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버지가 할매를 들여다보고 앉아있다.

‘아버지 퇴근 할 시간은 아닌데. 할매가 더 아프신가?’

야야를 보고도 아무 말 안하는 엄마나, 이렇게 일찍 집에 와 있는 아버지나 모두 걱정스럽다. 무거운 기운이 집안에 감도는 것 같아 야야도 아무 말도 못하고 큰방으로 들어섰다. 할매가 눈을 꼭 감고 누웠는데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다. ‘하르릉 하르륵' 숨소리가 들릴 듯 말듯 가느다랗게 새어나왔다.

“할매예, 할매 많이 아픈 겁니꺼?”

할매 옆으로 다가앉으니까 엄마가 야야 어깨를 잡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인자 괜찮으실 거다. 한 사나흘 되면 일어나실끼다. 괜찮다, 괜찮다, 그래 괜찮다.”

엄마는 자꾸 괜찮다 괜찮다 말하면서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꼼짝도 않고 그대로 앉아만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할매 손목에 주사바늘이 꽂혔고 벽에는 커다란 링거병도 매달려있다.

‘할매가 다시 심해졌구나.’

야야는 별안간 겁이 났다. 그동안 할매한테 짜증내고 화내던 게 한꺼번에 다 살아나면서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엄마가 들고 들어온 쟁반에는 묽게 끓인 미음도 있고 물도 있었지만 눈을 꼭 감고 움직임도 하나 없는 할매한테 드시란 말도 못하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도 엄마도 아버지도 큰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엄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밥 챙겨서 막내이 하고 먹어라.”

엄마는 안 먹느냐고 아버지 진지는 어쩌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야야는 부엌으로 나왔다. 그런 걸 물어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동생을 불러내어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저녁을 먹였다. 밥상을 들고 다니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동생도 무거운 집안 공기를 느끼는지 말없이 밥을 먹고 작은방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야야는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상을 치우고 작은방으로 갔다. 어른들 앞에서 왔다갔다 수선떨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숨 막히고 갑갑한 기운에 짓눌려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떻게 잠이 들었던지 눈을 뜨니 벌써 아침이다.

엄마는 벌써 일어나 부엌에 있고 아버지는 여전히 할매 옆에 앉아 있었다. 지난밤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학교에 가 있는 동안도 마음은 집에 가있다.

‘도대체 왜 갑자기 더 안 좋아지셨지? 처음 아플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이던데.’

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집으로 내달렸다. 어떻게 달려서 어떻게 집에 닿았는지 모른다. 봄에 왔던 인산의원 의사가 큰방에서 나왔다.

할매 손에 꽂힌 링거병이 새 것으로 바뀌었다. 어제하고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움직이는 엄마와 꼼짝도 않고 할매 옆에 앉은 아버지. 그 옆에 식어가는 미음과 물. ‘하르릉 하르륵’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할매 숨소리. 그렇게 또 하루 해가 넘어갔다. 불그스름하게 넘어가는 노을빛이 문을 비춰 붉은색 불을 켠 것 같더니 이내 어두워졌다.

“할매예.”

일어나서 불을 켜는데 할매가 눈을 떴다.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것처럼 꼭 감겼던 눈이 뜨인 것이다. 아버지가 할매 가까이 바짝 붙어 앉으면서 손을 꼭 쥐었다. 엄마가 큰숨을 내쉬었다. 할매는 고개도 못 움직였다. 눈만 몇 번 꺼무룩꺼무룩 하시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와 엄마는 한참 더 그렇게 앉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동생을 재우고 야야도 작은방에 누웠다. 할매가 조금 나아졌구나 싶어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고개도 못 가누고 온몸이 물에 젖은 한지처럼 바닥에 착 달라붙은 듯 까라진 모습이 어찌나 눈에 밟히는지 밤이 늦도록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잠을 청하느라 모로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방문을 보고 누웠다가 반듯이 누워 천정 그림을 맞춰보다가 설핏 잠이 들려고 하는데 큰방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할매가 이제 말도 하시나?’

큰방 문을 열려다가 야야는 얼음처럼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어머이예. 어머이가 그리 힘들고 마음이 아플 때도 소같이 일만하고 살았네예. 먼저 가시겠다고 숨 끊을 생각까지 하시는 줄도 모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할매가 숨을 끓으려고 하셨다니.’

엄마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어머이예. 제가 소같이 일만 할 줄 알았지 어머이한테 살갑게 재불재불 말벗도 못 해드리고 주변머리도 없고. 천성이 그렇다 하고 있었더니 그기 어머이 마음에 돌덩이를 안겨줄 줄 몰랐습니더.”

“어머이 앞에 속엣말도 하고 어머이 말씀도 들어드리고, 그랬으면 어머이가 마음편히 수발 받으실낀데. 제가 그리 미련했습니더.”

엄마가 울먹울먹 띄엄띄엄 말하고 있었다. 엄마가 누구 앞에서 저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야야도 처음 보는 것 같다.

“저희들한테 짐 된다 생각마이소. 저희들 짐을 어머이가 이때까지 지고 살았다 아입니꺼. 저 철없는 것을 공부시킨다고 낯선 객지생활 하시고 인자 좀 편히 모실라캤는데예. 이래 일찍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더.”

“하아아아아” 할매 우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리고 엄마는 혼자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토해내었다.

“이날 이때꺼정 그 어려운 일도 다아 어머이 믿고 살아냈는데예. 어머이 떠나시면 저도 못 삽니더, 아범은 또 우예 하늘 이고 살겠습니꺼.”

엄마는 평생 안하고 아껴둔 말을 지금 다 토해내는 것 같다. 그 말이 그 말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더니 결국에는 엄마도 운다.

“제가 부족하고 미련해서 어머이 아픈 속을 모르고. 죽어라 일만하고 나댕깄습니더. 어머이, 제발 마음 편히 아들 수발 며느리 수발 받으이소. ”

문밖에 앉아 엄마가 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모든 말을 야야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야야가 그렇게 못 됐게 굴었지만 에미인 저를 나무라시고 용서해주세요.’ 하는 것처럼 들렸다.

할매 앞에서 심통 부리고, 요강 위에 털썩 놓아버리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뾰로통해서 툴툴거리고, 사랑방에 꼭꼭 숨어 나오지 않던 못된 짓들이 스쳐지나갔다.

‘아, 할매는 그러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닫았구나. 얼마나 스스로 짐이라고 생각했을까?’

엄마 말을 들으면서 생각하니 아무래도 할매가 세상을 놓아버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야야 때문이다. 불쑥 불쑥 얼마나 그만 놓아버리고 싶었을까. 가끔씩 ‘내가 죽어야 우리 강생이 고생을 안 시킬낀데’ 하시더만 그래서 먼저 가실 생각을 했구나. 그저 야야 마음 아프게 하려고 그렇게 어거지를 쓰는 거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부끄럽다.

야야는 문 밖이 파랗게 샐 때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할매를 귀찮아하고 짜증내고 화내고. 그럴 때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모든 걸 자식들 손에 맡겨야했던 할매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오죽하면 어린 강생이한테 짐 되지 않으려고 목숨 끊을 생각을 했을까.

“어머이예, 일하다가 저물어 들어오다가 저 문 앞에 떡 앉아계시면 그것만 해도 마음이 턱 놓이는데예. 어머이 그늘이 그리 큽니더. 아범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어머이 그늘 믿고 사는데예. 제발 마음 편하게 저희들 거둬주이소.”

엄마가 하던 말들이 머리에 뱅뱅 돌면서 야야는 할매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