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랑 서인이랑

군대 가는 영우를 보며

야야선미 2005. 2. 26. 09:22

이 녀석, 군대 가기 전에 쫌 이라도 같이 있자고 해도 기숙사에서 끝까지 눌러붙어 있다가 며칠 전에야 겨우 집으로 들어왔어요.
그렇게 집에 온들 어디 집에서 우리랑 같이 지낼 시간도 없어요.
낮에는 내가 학교 가야지, 해질 때 되면 지가 나가서 우리 다 자는 한밤중에 들어와 한낮이 될 때까지 자지.
군대 가기 전에 잘 먹이고 잘 해 주라는데 언제 한 밥상에 앉아 밥이라도 같이 먹을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요.
그저께는 학교 가서 아이들 이름표 만들어 붙이고 교실 정리하고 저녁 때야 돼서야 들어오니 지가 쓰던 컴퓨터를 뜯어놓고 들여다 보고 있어요.
"머 하는데? 고장났나?"
"아니요. 뭐어 쓸 만한 거 하나 뜯어낼 끼 있어요."
그러더니 납작한 걸 하나 뜯어내서 통에다 넣고 움직이지 않게 종이를 구겨서 채우고 싸고 그래요.
군에 갔다 올 동안 잘 보관해놔야 되는 갑다 싶었는데
"이거 민이 줄라꼬요. 지 컴퓨터 바까야된다는데 요새 글마가 행핀이 좀 그래요."
"그라면 이거는 몬 쓴다 아이가."
"어차피 이년이나 묵혀놔야 될낀데 하나 빼 주지요, 뭐."
"민이는 요새 와?"
"글마 집에 안좋은 일이 좀 있는 거 같더라고요. 대신동에 방 하나 얻어가꼬 저거 하나하고 둘이서만 산다네요."
"하나는 중학교 이학년 아이가? 그래 둘이만 산단 말이가?"
"예. 민이는 학교 좀 쉬고 취직했어요. 성규하고 민이 밥 한 끼 묵자고 저녁에 오라캤는데. 괜찮지요?"
"임마, 아아들을 불렀으면 미리 말을 해야지. 반찬거리 하나 없는데."
"민이 퇴근하고 오면 시간 좀 있으니까 대강 해 주세요."
"너거들 돼지 고기 잘 묵나? 돼지갈비찜 해 주까? 그기 젤 빠른데. 그런데 내 힘이 없어서 못 나가겠다. 니가 좀 사 온나"
한참 있으니 돼지 갈비를 이만원어치라면서 사 왔어요.
밥을 앉히고 갈비 익혀서 양념해서 졸이느라 갑자기 바쁜데 옆에 와서 자꾸 말을 시켜요.
"어머니! 민이 오면  집에 안부 묻고 그라지 마세요. 그라고 하나도 오라카까요? 모처럼 갈비 좀 묵구로"
"하나가 올라카겠나? 올란지 전화는 해 보래미."
두어 군데 전화를 거는 것 같더니, 또 
"내 옷 중에 좀 골라서 민이 줄라카는데 모른 척 하이소."
"니이 그래 주고 나면 니는 우얄라꼬?"
"군대 갔다 올 때까지는 어차피 못 입을 낀데요. 휴가 나올 때 입을 거만 놔 두면 되지요."
옷 하나 살 때마다 내한테 온갖 욕을 다 들어묵고 산 것들인데 그래도 지 동무 생각해서 챙겨 주는 거 보니까 좀 대견스럽네요.
저것이 유명 메이커 청바지 하나 살끼라꼬 새벽부터 나가서 공사판에서 모래지고 벽돌 지던 놈 맞나 싶더라고요.
늘 얼라겉은 놈이라 기숙사 보내 놓고도 마음이 안 놓여서 전화 자주 안한다고 잔소리를 해 대던 놈인데 어느새 저래 컸나 싶어요.
다른 아이들은 군대 가기 싫어하고, 빠질 궁리를 한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이놈은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실실거리니 오히려
'아이구 저 철없는 것. 뭘 알아야 겁도 나지.' 싶어 더 마음이 놓이질 않았거든요.
밥을 먹고 나더니
"야아, 괘기 묵고 그냥 있으면 안 되지. 괘기값 하구로 우리 어머니 숙원사업을 해야된다."
오래 전부터 벼르기만 하고 엄두를 못내던 일을 해 주고 가고 싶었나봐요.
아이들을 끌고 이 방 저 방 다니더니 그 무거운 책장이며 서인이 고물 피아노, 침대랑 옷장들을 다 옮겨다 놓는 거에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키도 해서 졸졸 따라 다니면서
"야아들아 다칠라 살살"
"발 찡길라. 발톱 다치면 오래 고생한대이 살살"
"하이고오, 싸모님이 먼저 다치겠어요. 싸모님은 절로 가세요. 고마!"
방을 이래저래 바꾸고 싶어도 일손이 없어서 한 해가 넘도록 벼르고만 있었던 일을 순식간에 번적번쩍 들어서 다 옮겨 버리는거라요.
짐 옮긴 걸 바로 놓고 빗자루로 여기저기 쓸어내면서
'저것이 언제 저래 컸노?' 싶자 눈물이 주루룩 쏟아져요.
군대를 보내는 것이 마음 아파서가 아니라, 저 녀석이 저래 건강하게 크는 걸 내가 몰라도 참 모르고 있었던 것이 미안했어요.
사람들이 저거 아아들 좋은 대학 간 이야기 하면
"아아들을 우예 그래 잘 키았노?" 하면서 은근히 부러워 했던 것이 부끄럽고요,
"너거 아아도 대학갔제? 어느 대학 갔노?" 물으면
"우리 아아? 고마 아무데나 갔다."
하고 당당하이 말 못했던 것도 이 녀석한테 참 부끄럽네요.
초등학교 때 부터 중학교 때까지 담임 선생님들 만날 때 마다
"영우 어머니, 영우는 성격이 너무 좋아요" 하는 말만 해서
"김영우! 나는 너거 선생님들이 영우는 뭘 잘해요 하는 말 한 번이라도 듣고 싶다."
"아아 우리 샘, 안 되겠네. 내가 개기는 거 하나는 억수로 잘 하는데, 와 그걸 말 안 해주고. 우리 어머니 소원 좀 들어주지."
그러면서 실실거려서 진지한 구석도 하나 없는 넘이라고 혼자서 속상해 했던 놈이예요.
오늘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한테 인사드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가서 엎드려 절을 하는데 등판이 넓적한 것이 인자 아아가 아니라요.
절한다고 엎드린 놈을 내려다 보면서 나는 참 부끄러운 엄마구나 싶어서 멀리 하늘만 올려다 보고 섰어요.
낼 아침이면 같이 군대 가는 놈 서넛이 어울려서 시외버스 타고 "춘천 102 보충대"로 간다는데,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동무들하고 찐하게 놀러 나간 놈을 기다리다가 기분이 이상해져서 우리 아들 자랑 좀 했어요.
아아,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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