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맛에 빠져서 이런저런 생각
오늘이 올 들어 가장 춥다고 해서 미리 겁먹고 겨울옷을 다 꺼냈다. 아침에 나설 때는 털 달린 옷에 발목 위로 오는 부츠까지 신었다. 웬 걸 햇살이 퍼지니까 이 차림으로 길에 다니기가 좀 민망하다. 옷 험덕시럽게 입었다고 누가 붙잡아 세워서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내 옷차림새가 내려다보인다. ‘아, 콧물도 자꾸 나오고 재채기도 못 참을만치 자꾸 나오고. 이러다가 고뿔이 딱 달라붙겠다 싶어서 야무지게 입었어요.’ 속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집으로 집으로 걷는다.
햇살이 퍼져 좀 풀렸다고는 해도 우리 집 들머리 좁은 골목길에는 해도 안 들고, 골바람도 제법 세다. 여기로 들어서니 험덕시럽은 옷차림이 조금 덜 무안하다. 좁은 뒷골목이라 원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날이 썰렁해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혼자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는데 채소 파는 할머니는 그 바람을 맞고 혼자 앉아있다. 끝물 수세미 몇 개가 귀퉁이 날아간 플라스틱 소쿠리에 예닐곱 개 담겨 있고, 빨간 바가지에 담긴 끝물 고추도 서너 옹큼은 되겠다. 삐뚤어진 가지도 여남은 개 놓였다. “올 가지는 이게 마지막이지 싶소.” 하시길래 어제 내가 다 사갔는데, 좀 더 달려있던 모양이다.
“할머니 추운데 들어갔다가 나오시지예. 저녁때가 돼야 사람들이 나올낀데.”
인사 대신 한마디 건네니까 눈을 내려 깔고 쌈배추를 만지작거리던 할머니가 반갑게 고개를 든다.
“밭에 올라가서 이넘 뽑아오니 시간이 이래 갔네. 들어갔다가 허리 좀 피보까 싶기도 하구마는 허리붙이고 누우면 못 일어날 것 겉애.”
손은 여전히 쌈배추를 만지작거린다.
“할머니 밭에 이것도 심었습니꺼? 안 심은 기 없네예.”
낼름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쌈배추를 만진다. 둘레에 소나무도 있었던지 납작하게 벌어진 배추 잎 사이사이에 마른 솔잎이 제법 박혀있다. 솔잎을 골라내는데 머릿속에는 ‘오늘 저녁에 이넘 갖다가 된장에 찍어먹으면 맛있겠다, 아니 멸치젓갈에 찍어먹어도 맛있겠다.’ 하면서 딴 생각을 한다.
“먼저 녹은 고춧대 뽑아내고 심었지. 올해는 오이줄도 빨리 말라서 그 자리도 이넘을 심었어.”
납작납작한 배추가 파르라니 참 맛있게도 보인다. 고소하고 달큼한 배추맛을 떠올리니 미리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나는 이래서 살이 빠질 수가 없다. 맛있는 걸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데, 이 식탐을 어짜겠노?
“할머니 이거 몇 포기 주이소. 쌈 싸 먹어도 맛있겠고 쫑쫑 썰어서 무시하고 무쳐먹어도 맛있겠다. 이 뽀독뽀독한 거 좀 봐라. 아 진짜 싱싱하다.”
내 말이 호들갑스러운지, 할머니는 좀 민망한 얼굴을 하면서
“이거 모종 사다가 심어놓고 버러지 약 한번 뿌맀구만. 옮기놓고 뿌리도 안 내리고 사름도 안 끝났는데 그넘으 버러지가 어찌나 찍어넘구는지. 할 수 없이 약 한번 칬대이. 그거 알고 먹어야 된다.”
“할머니 괜찮아예. 그때가 언젭니꺼? 벌써 비에 씻겨도 씻기 나가고, 저 바람에 다 날아갔겠네예.”
할머니가 시침 뚝 떼고 약 한 번도 안 치고 내 손으로 키운 거라고 했으면, 나는 또 적당히 조금만 믿으면서 사 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종 옮겨 놓고 벌레약 한번 친 것이 마음이 쓰여 미리 고백하는 할머니를 내가 오히려 다독이고 있다.
“내년에는 약 안쳐도 되게 그 벌레를 우리가 좀 잡을까나? 할머니 밭에 소나무도 있어예?”
배추 이파리 사이사이에 박힌 솔잎을 골라내며 쌈배추 다섯 포기를 주섬주섬 골라 봉지에 주워 담았다. 봉지를 들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머릿속에는 우리 집 오늘 저녁 밥상이 이리저리 그려진다.
‘두 포기는 씻어서 쌈 싸먹고, 두 포기는 쫑쫑 썰어서 무채랑 섞어서 매콤새콤하게 겉절이해서 먹고…. 아, 김 솔솔 나는 밥에 얹어서 쓱쓱 비벼 먹으면 맛있겠다. 두꺼운 겉잎하고 남은 한 포기는 된장 풀어서 배추국 끓이면 시원하겠네.’
진짜로 오늘 우리 집 저녁상은 배추로 끝을 내줬다. 먹다 남은 총각김치하고, 묵은 김장김치까지 꺼내 놓으니 밥상이 배추잔치 무잔치다. 그러면 좀 어떻노? 맛있으면 됐지.
아이들이 밥상에 앉으면서
“와아, 오늘은 이거 외할머니집 메뉴하고 똑같은데.” 한다.
“그래, 외할머니표 배추는 아니지만 할매표 배추는 맞다. 저기 채소 할머니가 심은 거.”
쌈장을 만들까, 멸치젓갈에 양념을 좀할까 하다가 엄마한테서 얻어온 생된장을 그대로 내놓았다. 된장 맛, 배추 맛이 그대로 고소하고 달큼하게 씹힌다. 야들야들 뽀득뽀득 씹히는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짭쪼름하지만 고소하고 덜큰한 생된장 맛도 그만이다. 된장국에 든 시원한 배추는 그렇게 순할 수가 없다. 밥 먹은 속까지 편안하게 해 준다. 몸에 좋다는 갖은 양념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요리법을 쓰지 않아도 아주 맛나게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싱싱한 배추 다섯 포기. 아주 작은 쌈배추 다섯 포기가 우리 소박한 저녁을 한껏 행복하게 해주었다.
남은 것들을 담아 놓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든든하게 먹은 한 끼가 자꾸 행복하고 고맙다. 우리 이웃에서 심어 가꾼 배추를 바로 뽑아다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 바로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 옛날에는 이렇게 살지 않았냐고. 저녁거리 앉혀놓고 난수밭에 나가서 상추 한 옹큼 뽑아다 겉절이하고, 오이 따다가 멧국 타서 말아먹고. 금방 따서 싱싱하니 제 맛이 살아있어 굳이 오만가지 양념을 쓰지 않아도 달고 구수한 맛이 그대로 씹혔지. 어쩌다 우리 밭에 없는 건 이웃집에 가서 한 웅큼 얻어오기도 하고, 농사 지어 파는 집 있으면 달려가서 조금 사 오면 그만이었다.
우리 동네 들머리 새실 할매집은 밭만 조금 있어서 이런저런 푸성귀들을 심어서 한 옹큼씩 팔았다. 새실 할매는 우리가 정구지를 사러 가면 밥 먹다가도 일어나서 낫 들고 정구지를 베러갔다. 미리 베어놓으면 시들어서 맛이 덜하다고 절대로 미리 베어다 놓는 법이 없었다.
가지도 그렇고 파도 그랬다. 뭐든 사러 가면 그 자리서 따 주고, 뽑아다 주었다. 그러니 제 맛을 제때 살려 먹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늘 하던 말이지만, 오늘 새삼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는다. 가까이서 농사지은 걸 사 먹고, 가까이서 만든 걸 사서 써야한다는 걸. 옛날 우리들 이웃이 농사지은 것을 사 먹을 때는 이렇게 마음 놓고 맛있게 먹지 않았냐 말이지. 싱싱하고 맛나는 것을. 그리고 우리 이웃이 먹을 거니까 눈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내가 먹는 것처럼 정성껏 가꾸지. 하긴 멀리 보낼 일도 없는데 벌레 안 먹는 약치고, 썩지 않는 약 치고 할 필요가 있었겠나.
산업화니 뭐니 수출이 어쩌구 하면서 많이 지어 많이 팔아야하고, 그래야 풍족하게 많이 쓰는 세상이 되고. 거기에 발맞추어 농공단지를 만들고, 이제 크게 벌여 놓았으니 대량으로 지어내야 수지타산이 맞을 것이고, 가공을 해서 저장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은 점점 눈도 멀고 마음도 다쳐서 사람이 먹는 것에도 몹쓸 짓을 하게 되지. 사 먹는 우리는 어떤가. 좀 잘 살아보겠다고 돈 좀 더 들여서 유기농산물을 찾아야하고, 대량으로 지어낸 싱거운 채소들을 사다가 온갖 갖은 양념을 칠갑해서 먹는 꼴이 된 것 아닐까? 한 철이 지나도록 저장고에 묵혀서 한물이 간 것들을 사서 제 맛 내어보려고 하니 음식에 또 온갖 저지레 아닌 저지레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지.
어디 농산물만 그럴까. 요즘은 어릴 때 학교에서 공부하고 배웠던 것들이 모두 우리를 속였다는 생각에 몸이 떨릴 때가 많다. ‘공업단지를 만들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한 곳에서 만들면 협업도 쉽고 분업해서 만들 것도 조립하기도 쉽고 산업에 능률이 오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도 중학교에 다닐 때도 배운 것을 요약하면 대충 이런 요지다. 그때 선생님이 예를 들어주면서 말한 것이 자동차다. 어느 공장에서는 차 몸통을 만들고, 어느 곳에서는 푹신한 의자를 만들고, 어디어디는 엔진을 만들고, 손잡이를 만들고, 나사와 부품을 만드는 공장도 다 따로 있다고. 그것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면 일일이 실어 나르는 시간이 줄어들어 더 많은 차를 만들고, 더 많은 차를 수출하여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고 했다. 어릴 때는 그래서 공업단지가 아주 훌륭한 일을 하는 곳이라 믿었다. 아직도 그런 개발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말이지. 그런데 그 공업단지가 모두 농사짓는 땅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 둘레에 남아있는 농사지을 땅을 죽이고 있지.
고속도로와 철도를 공부할 때는 그랬지. 일일생활권이 되어서 하루 동안에 서울 가서 볼 일 다 보고 저녁에 내려올 수 있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굳이 서울로 이사 가서 살지 않아도 지방으로 출퇴근 할 수 있고. 그러면 수도권에 인구가 모이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지. 지방을 골고루 발전시킬 수 있다고 그랬지. 어디 지금 그런가? 일터가 지방에 있어도 사람들은 굳이 서울로 서울로 몰리지 않는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한 교통을 믿고 서울로 몰리고 있지. 그래서 수도권 집값이야 부동산 값은 얼마나 시끄러우냐 말이지. 고속도로와 철도는 일일생활권으로 사람들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 생산된 것들을 서울로 더 빨리 더 많이 가져가는데 공이 참 크다. 그래서 더 많은 농촌이 죽어가고 더 많은 강이 죽어가면서 서울로 서울로 올라가는 수많은 것들을 생산해내느라 신음하고 있지. 온 나라를 헤집어놓은 ‘편리한 도로망’이 사실은 온 나라를 죽여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훤하게 뚫린 길에 획획 달려가는 수많은 차들을 볼 때마다.
아이구 설거지가 다 끝나도 이렇게 돌아가는 생각에 끝이 없다. 공업단지만 그러랴. 고속도로만 그러랴. 전기는 또 어떻고, 또 다른 것들은 어떤가. 대개는 저 멀리 수천 수만리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서 끌어다 쓰지 않는가. 그 모든 것들이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만든 것,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먹고 쓸 것’이 되어서 온갖 몹쓸 짓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느냐고. 아아, 이러면 또 딴 길로 샌다. 어쨌든 오늘 우리 동네 할머니가 가꾸어서 파는 쌈배추를 먹다가 다시 한 번 더 확실하게 굳힌 결심.
하나. 될 수 있는 대로 제철에 나는 것을 먹는다.
또 하나. 천연양념, 그러니까 소박한 양념과 소박한 조리법으로 채소의 제 맛을 살려 먹는다.
또또 하나. 멀리서 농사지은 것 보다 우리 둘레 가까이서 농사지은 걸 사 먹는다.
또또또 하나. 조금 사서 제때제때 다 먹어 치운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렇게 하기가 사실 쉽지는 않았다. 딱 먹고 싶을 때 없기도 하고, 한번 장보러 가면 다음에 언제 또 나올까 싶어서 좀더 사게 되고. 그러고 보 우리 동네 이 작은 골목을 지키고 앉아 배추 몇 포기, 가지 열댓 개, 고추 몇 옹큼씩 파는 그 할머니가 얼마나 고마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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