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권정생 선생님

『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1974) 』

야야선미 2008. 5. 12. 16:12

 『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1974) 』

 

▷작가의 말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 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 버린 끝에, 참다 못 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
  하기야, 세상 사람치고 거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있다면 "나 여기 있소." 하고 한 번 나서 보실까요?  아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좀 편하게 앉아서 얻어먹는 상등 거지는 있을지라도 역시 거지는 거지이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문 밖에서 얻어먹던 거지 나사로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은, 분명히 자기는 가장 불쌍한 거지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입고 살던 부자는, 오만스럽게도 자신이 거지임을 깨달을 줄 몰랐기 때문에 영원한 불구덩이 속에서 괴로운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먹을 것을 주시고, 입을 것을 주시고, 밝고 고운 시와 노래, 재미있는 장난감까지 주신 주인이 엄연히 계신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겠다 외면해 버리고 제 잘난 척 떵떵 큰소리치는 세상입니다.
  한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들판에 아주 멋진 거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몸에는 약대 털가죽을 걸치고, 메뚜기와 산꿀을 먹으며, 바람처럼 시원하게 살았습니다. 여리고로 가는 길엔 날강도들이 떼를 지어 길 가는 나그네를 칼로 찔러 쓰러뜨리고 가진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나그네는 피를 흘리며 살려 달라고 소리질렀지만, 제사장도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예루살렘 궁전에서는 임금이 가난한 백성들의 피 같은 돈을 거둬다가 진탕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들거지는 그들 제사장과 임금 앞에서 겁을 조금도 안 내고 외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이여, 마음을 깨끗하게 씻으시오!"
   화가 난 임금은 거지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가 목을 잘라 죽였습니다.  어리석고 못된 임금이었습니다.
  양의 가죽만 쓴, 이리 같은 가짜 제사장과 재판관과 임금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엔 없어야만 될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썼기 때문에 서툴고 흠집투성이 글입니다.  어린이들에겐 지나치게 어려운 동화일지 모릅니다.  나 역시 더러운 생각을 가진 어른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내 동화를 기르시느라 가혹하리만큼 채찍질하셨던 유영희 장로님, 수백 리 산길을 타고 찾아오신 이오덕 선생님께서 쓰레기처럼 버려질 뻔한 원고들을 간추려, 책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애를 써 주셨습니다.
  너무도 불쌍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님께, 맨 먼저 이 책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