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과메기집 좁다란 마룻바닥(맞나?)에 둘러앉아서 입이 미어터지게 쌈을 싸서 먹고 있겠지?
가고 싶지만 다음날을 위하야 몸을 만들겠노라 자리 보전하고 누웠는데
목이 간질간질한 이 기침땜에 잠은 안오고
누웠다가 생각나는게 있어 글로 써 보는데 진도가 안나가네.
그냥 나도 맛배기 하나 올립니다.
소눈처럼 좋은 시도 없고
이 웅덩이 하나 올려도 용서가 좀 될까나?
혹시나 읽고 열화와 같은 성화를 보내면 글빨이 좀 올라서 뒤가 좀 풀릴란지...
맛있게 잘 드시길 축원드리옵니다.
내가 먹어보니 상추, 배추 이런 거 빼고
그냥 김만 놓고 갖은 양념이랑 사서 먹어도 쫄깃쫄깃 맛있더구만.
<<웅덩이 하나>>
우리 집 장독간 아래로 사철 내내 마르지 않는 웅덩이가 하나 있었거든. 물이 많이 고이는 커다란 것이 아니고 그냥 바가지 하나 들어갈 만한 그쯤 되는 웅덩이야. 뭐어 거기 물이 가득 모여도 우리 얼굴 씻을 세수대야 하나를 겨우 채울 수나 있을까? 그래도 비가 흔할 때는 마당 한 옆으로 제법 물길을 내고 넘쳐 나기도 하고 그랬지. 날이 가물어 물이 잘 나지 않을 때는 거기 고인 물에서 징그러운 집게벌레도 기어 나오고 바알간 실지렁이 같은 것들도 오글오글거리고 장구벌레도 생기고 그랬어. 그래서 엄마는 웅덩이 물이 좀 고인다 싶으면 싹싹 긁어 퍼내서 마당에다 뿌려. 물이 맑아야 벌레가 안 끼인다고.
그렇지만 그 조그만 웅덩이 물도 제법 쓰이는 데가 많았어. 손걸레 하나쯤은 도랑에까지 들고 나가지 않아도 그 물 한 바가지 퍼내서 홀랑홀랑 흔들어 빨았거든. 마당을 쓸 때도 그 물을 한 바가지 휙 뿌리고 비질을 싹싹 하지. 하루종일 밭일하고 흙덩어리가 된 양말을 그냥 휙 집어던져 두면 엄마는 그 물을 한 바가지 퍼서 흔들흔들해서 다시 바가지에 담가 둬. 그래야 다음날 흙물이 잘 빠진다고. 애벌빨래를 해 두는 거지. 어디 그것 만 해? 흙 묻은 삽도 씻고 호미도 씻지. 아궁이에 불 때고 일어서다가도 '밤에 바람이 불라나?' 싶으면 또 그 물을 한 바가지 퍼와서 잿불 위에다 척척척 뿌리지. 할머니 요강을 비우고도 그 물을 퍼 담아서 흔들어 씻지. 그 웅덩이가 어린 우리들한테 가장 쓸모 있는 때는 말야. 고모가 부엌에서
"밥 묵구로 해라아."
그 반가운 말만 딱 하면, 우리는 가지고 놀던 살구도, 고무줄도 다 집어던지고 웅덩이 물을 찍어내어 손바닥에 손등에 척척 두드리고는 마루로 뛰어올라. 많이도 안 해. 딱 두 번이야. 고모가 보고는
"그래가 씻기나 좀 매매 씻지."
해도 우리는 두 손바닥을 좌악 펴 보이면서
"흙 없다 아이가, 됐재?" 하고 밥상에 달려들기가 바쁘지.
어떤 때는 식구들 숟가락을 쭈욱 놓는데 숟가락마다 땟물이 얼룩덜룩 한 거야. 고모가 볼세라 고모를 흘끔흘끔 돌아보면서 놓았던 숟가락을 도로 집어들고 내 옷에다 슥슥 문질러 놓고 그랬지.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바가지로 물을 퍼내다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동생하고 마당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놀았는데 어째 너무 조용하다 싶어 엄마를 보니 글쎄 한 손에 바가지를 든 채로 그 웅덩이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앉아 있어. 엄마 옆으로 살째기 가서 앉아도 엄마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아. 나도 그냥 웅덩이에 또 뭐라도 생겼나 하고 들여다보기만 하는데 엄마가 혼잣말처럼
"이 쪼매난 웅딩이 물도 찰름찰름하이 한 거 괴핐으니 이래 제북 한 바가지를 퍼내도 물이 그냥 안 있나."
"......."
"물이 괴필 새도 없이 나오기 무섭게 달달 긁어내 봐라, 퍼내는 사람 애는 애대로 타지 물은 지대로 모일 새나 있나 웅딩이 바닥만 까래비지."
"......."
"우리 살림이 이 짝이다. 좀 모아가민서 살머 또 한 살림 축 나게 생깄다 싶기 퍼내줘도 이래 만날 말리지는 안 할긴데."
"......."
나는 알아들을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기도 하고, 엄마가 내 들어라고 하는 말인지 그냥 혼자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암말 않고 앉아만 있었어. 그래도 그때는 일어서서는 안 될 것 같았어. 아무 대꾸는 못해도 바가지를 들고 있는 엄마 손만 보면서 그렇게 앉아만 있었지. 그래 혼자 말처럼 하던 엄마가 갑자기 내 얼굴을 보면서 그러셔.
"너거도 살림 살면 그래라. 야물기 살아서 단단하이 자리를 잡아야 된다. 실한 살림은 언간히 퍼내서 넘을 도와줘도 표가 안 나고, 언간히 에러븐 일이 있어 퍼내도 표 안 나기 살 수 있는 기다."
"......."
"하기사 어데 그기 내 맘대로 되는 일도 아이다 마는."
그렇게 앉아서 듣고 있으니 엄마 말뜻을 좀 알아들을 것 같기도 했어. 그렇지만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건지,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되는지 정말 몰라서 꼼짝도 않고 눈만 내려 뜨고 앉아있었어. 엄마는 내 대답 같은 건 기다리지도 않았다는 듯이 혼잣말을 해, 그냥.
"없는 살림에 에럽기 에럽기 사는데 돈 들어갈 일은 자꾸 생기나이 우예 허리 한 번 피고 살겠노? 뭘 하나 할라카다가도 사람만 자꾸 팍팍해지고 야박해지고 그런 기다."
"......"
"그래도 이래 마르는 날 없이 쨀잴쨀 나와 주는 기 고맙지. 고맙기 살아야지."
"......."
"이 웅딩이가 선생이다."
그러면서 바가지를 들고 일어나는 엄마를 보면서도 나는 따라 일어서질 못하고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 "이 웅딩이가 선생이다." 하는 말이 한숨같이 들리기도 하고, 눈물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뭔지도 잘 모르겠으면서 나도 막 눈물이 나는 거야. 한참을 애꿎은 웅덩이 둘레만 손가락으로 후비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