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날 개학을 해서 교실에 갔는데,
아이들이 억수로 조용해.
내가 까불고 재롱 떨면서 푼수처럼 한참 노니까 그제야 쓰윽 다가오데.
첫날이라 그렇겠거니, 그래도 일마들 한 학기를 같이 보냈는데 낯을 가리나 싶어 쪼매 섭하더라고.
어제, 월요일 아침.
역시 조용하이 내를 맞아줘.
또 내가 먼저 까불고 재롱을 떨었지.
이런 분위기가 얼마나 갈까, 일마들 진짜로 낯가리네 그라고 하루를 지났어.
오늘, 사흘째 아침.
드디어 층층대를 올라 교실로 오는데
우리반다운 소리가 들려.
왁자한 교실을 여니까 안냐세요? 안녕? 어, 오늘은 머리 묶었네요!
사흘만에 본색을 드러내는 일마들^^
인자 진짜로 우리반 얼라들 같구먼 했지.
세째시간 시작종이 울리고, 교실로 들어오는데
상욱이가 서럽게 서럽게 울고 있어.
달래는 아이들 하나 없이 모두들 상욱이만 뭐라하는 분위기라.
그 상욱이가 어떤 상욱이냐?
주먹도 세고,
사학년에 형님이 있어 빽도 든든하고,
무엇보다 깡다구가 있어.
그런 상욱이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를 올려다봐.
그 눈빛이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어.
"뭔 일인데? 상욱이가 와 이래 우는데?"
상욱이가 뭐라 할라는데, 기창이가 먼저 씩씩거리면서 나서는거야.
"상욱이가요오, 지렁이를 괴롭혔잖아요. 지렁이 마이 다쳤을걸요."
원래 목소리가 굵고 우렁찬 기창인데, 흥분하니 교실이 우렁우렁 울려.
"상욱이가 ~~~"
내가 뭔 말도 하기 전에 여기저기서 다 나온다.
"지렁이도 좋은 일 하는 동물이잖아요?"
"억수로 높은데서 떨어져서 지렁이 머리 깨졌을걸요."
"지렁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요."
와글와글 달려드는데 그 와중에 "지렁이는 머리 없거든."하는 녀석도 있다.
민석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득달같이 일어나니 상욱이는 더 크게 운다.
눈물에 콧물에,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픈지 머리까지 싸잡고 운다.
"그만, 그만" 겨우 진정시키고,
"그래도 상욱이 말 좀 들어보자. 상욱이가 왜 그랬는지.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
아직도 씩씩거리는 녀석들을 겨우겨우 앉히고, 상욱이를 불렀다.
앞으로 나오더니 또 서럽게 운다.
"저 아들 말이 맞나? 니가 지렁이 괴롭혔나?"
"나는요오오오오"
상욱이는 말을 못 잊는다.
"그래, 눈물 닦고. 너무 울면 머리 아푸대이.
상욱이 하는 말.
"아까 사남이 보러 갔는데요, 지렁이가 가고 있잖아요."
"그래? 비도 안 오는데 지렁이가 나왔던갑지?"
"쎄멘 바닥에 기어다니면 배 억수로 아프다말예요."
그래, 그랬지.
지난 일학기때, 개가 달려드는 바람에 바닥에 넘어져서
무릎, 배, 얼굴, 손바닥 다 갈아서 억수로 고생했거든. 상욱이가.
지가 쎄멘 바닥에 엎어져 미끌어지면서 얼마나 아팠으면.....
그래도 상욱이한테 말을 시켰지.
"지렁이들은 학교에 여기저기 시멘트 바닥에도 잘 다니던데. 마이 아팠을까?"
"아파요. 선생님은 쎄멘 바닥에 안 누워잖아요. 배가 얼마나 아픈데."
상욱이하고 이야기하는데 다른 아이들 시끌시끌하더니 이젠 조용해졌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흙있는데 데려다 줄라고 살살 잡았단 말이예요. 진짜 살살 잡았어요.
그런데?
기창이 지는 아묵것도 모르면서 지렁이 잡았다고 막 소리 지르잖아요. 안 그랬으면 지렁이 안 널쭈는데.
그래 지렁이를 널짰나?
깜짝 놀래서 지렁이를 널짰단 말이예요. 일부러 그랜 거 아니예요.
이 장면에서 상욱이는 소리를 막 지르면서 크게 엉엉 울어.
둘러섰던 아이들은 가만히 있더니 두어놈이 상욱이 등을 쓰다듬어 주네.
저거들도 미안했겠지.
더 말 안해도 될 것 같아서 아이들을 들어가 앉아라 했지.
좀 진정시키고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좀 나누게 할라고.
그런데 상욱이는 분이 안풀렸어.
막 소리 지르면서
내가 지렁이, 지렁이 괴롭힌 거 아니고, 진자로 배 아플까 싶어서 살살 잡았는데,
기창이 땜에 널짰는데, 전부다 내 보고 지렁이 죽었다고 머라카고,
나도 지렁이 머리 깨짔는가 싶어서 걱정 되서 죽겟는데, 내만 머라카고....
이 긴 말을 숨도 안 쉬고 왁왁 토해 내는거야.
아이들도 깜짝 놀라고, 나도 놀랬어.
상욱이는,
내가 아이들을 좀 머라카고, 지 말을 듣고 아이들한테 해명을 해주기를 바랬던 거야.
그런데 내가 아이들 다 들어가 앉아라고만 말하니까 얼마나 분했던지.
상욱이 들썩들썩 하는 등을 두드리는데, 등이 다 젖었어.
아아들 다시 불러서
상욱이가 지렁이 괴롭힌 거 아닌 거 인자 알았제?
예
상욱이 마음 알거 겉나?
예
아이들이 예예 해서
그라면 모두 상욱이 한테 우예야겠노?
하나둘 상욱이한테 가더니 미안하다, 내가 심했다, 용서해줘
한참 그러고 나니 상욱이도 자리로 가서 앉아.
아직도 어깨는 가라앉질 않아.
절마 머리 억수로 아플낀데.
쫌 가라앉혀서 공부할라는데 쉬는 시간 종이 친다.
사흘만에,
우리반 옛날 모습이 돌아왔다. 오늘의 이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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